물의 침례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중 한 부분으로서, 고대 주님의 종들은 그 의식을 매우 각별하게 집행했음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 이제 침례를 집행하는 방식에 대한 올바른 견해를 확립하기 위해 잠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이 의식이 집행된 방법, 혹은 방식은 한 가지밖에 없었다는 것이 매우 분명한데, 그 방식은 사도들에게 밝혀졌으며 그들은 모든 의식을 집행할 때마다 엄격하게 그 방식을 지켰습니다. 이 주제에 관해 올바른 개념을 파악하려면 침례가 집행된 상황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침례] 요한은 애논에서 침례를 주었는데, 그 까닭은 거기 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요한복음 3:23 참조] 그런데 그 방식이 물을 뿌리는 것이었다면 물이 많은 애논까지 가야만 했다고 생각하기는 힘듭니다. 정말 아주 적은 물만 필요했다면 애논까지 여행하지 않고도 유대 땅 어디에서든 뿌릴 수 있었을 것입니다. 또한 우리는 요한이 요단 강에서 침례를 주었으며, 우리 구주에게 그 의식을 베푼 후, 물에서 올라왔다고 배웠습니다. 이는 그가 올바른 방법으로 의식을 베풀기 위해 물속으로 들어갔음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마태복음 3:16 참조] 또한 에디오피아 내시도 빌립과 함께 물에 내려갔다가 물에서 올라왔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사도행전 8:26~38 참조] 이제 머리 위에 물을 몇 방울 뿌리는 것으로 그 목적을 달성했다고 한사코 주장하는 사람들과, 이 의식을 받으려고 물속에 들어간 적이 없는 사람들은 이 사실을 반드시 알아야 합니다. 바울은 성도들에게 보낸 글에서 침수를 뒷받침해 주는 간증을 단순하게 전했습니다. …… 이 사도는 성도들이 침례를 받음으로써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되었다고 말했습니다.[로마서 6:4; 골로새서 2:12 참조] 물속에 완전히 잠기거나 물로 뒤덮이지 않고서는 침례를 받음으로써 물속에 장사되었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 자명한 이치입니다. 어떤 물체가 한 부분이라도 덮이지 않고 남아 있다면 그것은 묻혔다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온몸이 물속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침례를 받았다고 해서 장사되었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침례 방식에 관한 이 사도의 설명은 “사람이 물로 나지 아니하면 ……”이라고 구주께서 하신 말씀과도 일치합니다. 어떤 사물로 난다는 말은 그 사물 안에 들어 있다가 모습을 나타내거나 거기에서 나온다는 것을 뜻합니다. 물로 난다는 말도 물이라는 모태 안에 들어 있다가 다시 나오는 모습을 나타내야 합니다.
합리적으로 생각하고 편견을 갖고 있지 않는 사람이라면 순수하고 충만한 복음이 전파된 기독교 초창기에는 침수가 바로 침례 의식을 집행하는 방식이었다는 사실을 이미 충분하게 납득하셨으리라 믿습니다. 그러므로 이 점에 관해 제가 살펴본 바는 이것으로 마치겠습니다. 우리는 히브리서 6장에서 안수례가 복음 원리에 포함되어 있었다는 사실을 배웁니다. 오늘날 기독교 교회에서 이 의식을 죄 사함을 위해 침수로 받는 침례와 더불어 상당히 도외시하고 있다는 것은 누구나 다 아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이 주제에 관해 몇 가지 언급해 드리는 것이 유익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병자에게 안수하여 병을 고쳐 주신 몇 가지 예를 알고 있습니다. 또한 마가복음 마지막 장을 보면 그분께서는 사도들을 보내시며, 믿는 자에게는 이런 표적이 따르리니 곧 병든 자에게 손을 얹은즉 나으리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나니아가 사울에게 손을 얻고 이 의식을 집행하자 사울은 즉시 시력을 찾았습니다.[사도행전 9:17~18 참조] 바울은 배가 난파되어 멜리데 섬에 상륙했을 때, 섬의 통치자인 보블리오의 부친에게 안수하여 열병을 고쳤습니다.[사도행전 28:8 참조] 이런 몇 가지 사례들은 안수례가 하늘의 축복을 받게 해 주는, 하나님께서 정하신 한 [방법]임을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병 고침이 이 의식과 연관되어 있기는 하나 이 주제를 깊이 연구해 보면 더 큰 축복이 이 의식과 결부되어 있음을 알게 됩니다. 우리는 사마리아 성에서 빌립에게 침례를 받은 사람들이 침례를 받은 일로 서로 크게 기뻐했다는 것을 배웁니다. 그들은 아마 신앙과 회개, 침례를 통해 죄 사함을 얻고, 죄를 사함 받음으로써 선한 양심을 얻게 되자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하나님의 성령을 얼마간이나마 받게 되어 기뻐했을 것입니다. 그들은 새로 받은 이 성령을 통해 하나님의 왕국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 일은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신 구주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어지는 구절에서 구주께서는 사람이 두 번 더 태어나지 아니하면 그곳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먼저는 물로, 그 다음에는 영으로 말입니다.[요한복음 3:3~5 참조] 이제 사마리아에 있는 그 사람들은 물로 태어났으므로 첫 번째 탄생이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하나님의 왕국을 보고, 신앙의 눈으로 하나님 왕국의 여러 축복과 특혜, 영광을 주시할 수 있는 상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두 번째로, 즉 영으로 태어나지는 못했으므로 하나님 왕국에 들어가지는 못했습니다. 즉, 복음이 주는 특혜를 충만하게 얻지는 못한 것입니다. 예루살렘에 있는 사도들은 빌립이 이룬 결실에 대해 듣자 안수례를 집행하도록 베드로와 요한을 사마리아에 보냈습니다. 이에 따라 두 사도는 사마리아에 도착하여 침례를 받은 이들에게 손을 얹고 성신을 받게 했습니다.[사도행전 8:5~8, 12, 14~17 참조]5 [57쪽 제언 3 참조] (로렌조 스노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