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시여, 우리는 당신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당신에게 비옵나니, 이 떡을 취하는 모든 사람의 영혼을 위하여 이 떡을 축복하시며 성결하게 하시옵소서. 그리하여 저희가 당신 아들의 몸을 기억하여 먹게 하시옵고, 오 하나님, 영원하신 아버지시여, 또한 저희가 기꺼이 당신 아들의 이름을 받들며, 항상 그를 기억하고 그가 저희에게 주신 계명을 지키고자 함을 당신에게 증거하게 하시오며, 그리하여 저희가 항상 그의 영과 함께 하도록 하시옵소서. 아멘.(교성20:77) "비록 어린이 까지도 성신을 동반하기 위해 무엇을 해야 하는지 알고 있습니다. 성찬 축복 기도는 우리에게 그것을 말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매주 성찬식 모임에서 그것을 듣습니다. 이 성스러운 순간에 침례 시에 맺은 성약을 새롭게 합니다. 그리고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성신을 받아들일 수 있도록 우리가 교회의 회원으로 확인 받을 때 받았던 약속을 상기시켜 줍니다. 그 성찬 기도문은 이러합니다. "또한 저희가 기꺼이 당신 아들의 이름을 받들며, 항상 그를 기억하고 그가 저희에게 주신 계명을 지키고자 함을 당신에게 증거하게 하시오며, 그리하여 저희가 항상 그의 영과 함께 하도록 하시옵소서." (교성20:77)
"우리는 그 성약을 지킴으로써 성령과 함께 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우리는 그분의 이름을 받을 것을 약속합니다. 그것은 그분과 같이 우리 자신을 돌봐야 함을 뜻합니다. 우리는 그분을 우리의 삶에서 첫 번째로 두어야 하며 우리가 원하는 것이나 세상이 우리들에게 원할 것을 가르친 것보다는 그분이 원하시는 것을 원해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의 것을 먼저 사랑하기만 하면 우리 안에서 화평이 사라질 것입니다. 가족이나 국가가 세상적인 물질을 통해 위안을 얻으려고 한다면 결국 그들은 분열될 것입니다. (해롤드 비 리, 너희는 거룩한 곳에 서라, 97쪽 참조) 주께서 우리들에게 행하기를 원하시는 것과 주님의 이름을 받들겠다는 이상을 가질 때 우리는 지상에서 천국을 맛보는 그러한 영적인 수준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그분을 항상 기억할 것을 약속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때마다 그렇게 약속합니다. 특히 우리가 용서를 구할 때, 우리가 자주 그렇게 해야 하듯이, 그분을 기억합니다. 그 순간에 우리는 회개와 용서를 가능케 해 준 그분의 희생을 기억합니다. 우리가 간구할 때 우리는 아버지와 함께 계시는 우리의 변호인으로서 그분을 기억합니다. 용서와 화평의 느낌이 올 때, 우리는 인내와 그분의 끝없는 사랑을 기억합니다. 그와 같은 기억은 사랑으로 우리의 마음을 채워줍니다. "우리는 또한 가족으로서 함께 기도하고 경전을 읽을 때 그분을 기억하겠다는 약속을 지키는 것입니다. 아침 식탁에 가족이 둘러 앉아 기도할 때, 어떤 자녀는 다른 자녀를 위해 그 날 있을 시험이나 어떤 일을 성취함에 있어, 모든 것이 잘 되어 가도록 기도할 것입니다. 축복이 주어질 때 축복 받은 그 자녀는 그분의 이름으로 기도 드렸던, 변호인이신 그분의 사랑과 친절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마음들이 사랑 가운데 하나로 묶여질 것입니다. "우리가 가족과 함께 경전을 읽을 때마다 그분을 기억하겠다는 성약을 지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증거해 줍니다. 왜냐하면 경전은 언제나 선지자들로부터 나온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자녀들이 말씀을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그들은 그 책의 주인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할 것입니다. "셋째로, 성찬을 취할 때 우리는 그분의 계명을 지킬 것을 약속합니다. 제이 르우벤 클라크 이세 회장님이 한 연차 대회에서 단합을 호소하면서 우리에게 무엇을 순종할 것인지 선택해서는 안된다고 하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주님께서는 쓸모없고 불필요한 계명을 주신 적이 없습니다. 경전에는 우리가 구원을 얻기 위해 해야 할 일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 우리가 그분의 이름을 받들고 그분을 항상 기억하고 그분의 모든 계명에 따르겠다는 성약을 지킬 때, 성령이 우리와 늘 함께 하게 됩니다. 그것은 우리의 마음을 부드럽게 해 주며 우리를 단합시킵니다." (헨리 비 아이어링, 하나가 되기 위하여, 성도의 벗 1998년 7월호 67-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