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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궁금한 이야기

입다는 어떻게 해서 자기 딸을 제물로 바쳤는가?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2. 1.

사사기 11:29~40
많은 사람이 입다가 그의 딸을 인간 제물로 바쳤으며 경전을
읽어 보면 그런 견해를 뒷받침해 준다고 생각해 왔다. 그러나 만
약 그것이 사실이라면 몇 가지 어려운 문제가 제기된다. 입다는
이스라엘의 위대한 영웅이며 구조자로 생각되었다. 사사기의 저
자는 그가 딸을 제물로 바친 것도 추천할 만한 행위로 여기고 있
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히브리서 11장 32~35절에서는 입다를
위대한 신앙의 본보기로 인용하고 있다. 만약 그가 고대 이스라
엘에서 가장 큰 악행으로 여겨지던 인간 제물을 바쳤다면 이런
것이 사실일 수 있겠는가? 왜 입다의 딸은 생명을 잃게 됨을 슬
퍼하지 않고“처녀로 … 인하여 애곡”(사사기 11:37)하였는가?
입다가 그의 딸을 제물로 바치겠다는 맹세를 성취한 후에 본문
에는“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39절)다고 되어 있다. 성경학자
들은 이 질문에 적절한 답이 되는 설명을 했다.
“입다는 그의 맹세로 인하여 딸을 평생 처녀로 여호와에게 바
쳐야 했다. … 딸의 간청에 의하여 그녀가 산에서 두 달 동안 친
구들과 함께 자신의 처녀를 슬퍼하도록 해 준 것은 그녀가 제물
로 죽게 되어 있었다는 설명과 일치하지 않는다. 처녀를 슬퍼한
다는 것은 처녀로 죽는 것을 슬퍼한다는 의미가 아니고 처녀로
살아야 함을 슬퍼한다는 의미이다. 그러나 처녀를 슬퍼하는 것이
젊음을 슬퍼하는 것과 같다고 여기더라도 …‘왜 그것이 산에서
이루어져야 하는지는 이해할 수 없다. 곧 죽어야 하는 자녀가 아
버지를 버려두고 일시적인 휴식 기간을 갖는다는 것은 인간의 본
능에 반대되는 일이었다. 죽기 전에 두 달 동안 인생을 즐기도록
허락해 달라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유일한 자녀를 잃
게 되는 제물로서의 죽음이 다가오는데 그녀가 자신의 처녀성을
슬퍼할 것만 생각한다는 것은 인간의 마음의 정상적인 감정과는
모순되는 것이다. 그러나 역사에서 그녀가 자신의 처녀성을 슬퍼
하는 것을 특히 강조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것은 맹세의 본질과
특정한 연관이 있음에 틀림없다.’(피 카셀, 473쪽) 그녀가“산
위에서”처녀를 슬퍼한다는 표현을 보면 이것이 더욱 확실해진다.
‘만약 생명이 문제라면, 집에서도 똑같이 눈물을 흘릴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의 슬픔은 처녀성에 대한 것이었으며 이런
슬픔은 남자들의 면전에서 또한 마을에서 이야기할 순 없는 것
이었다. 정숙하기 위해서는 이런 것을 이야기할 외딴 산이 필요
했다. … ’(피 카셀, 476쪽) 또한 맹세의 성취에 관한 기사에서
나오는‘딸이 남자를 알지 못하였던’이라는 구절은 제물로서 죽
는다는 생각과 일치하지 않는다. 그녀가 처녀였다는 것은 이미
알려져 있었으므로 이 구절은 이 설명에 대하여 아무런 보탬도
되지 않는다. 이 말은 우리가 그것을‘그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
하니’라는 앞의 절과 연결지어 딸이 맹세를 실행하여 행한 것에
대한 설명으로 이해하면 제대로 뜻이 통한다. 아버지는 그녀에
대한 맹세를 성취하였고 그녀는 남자를 알지 못했다. 다시 말해
서, 그는 그녀가 남자를 알지 못하고 영적 번제물인 처녀로 주님
께 평생을 바쳤다는 사실을 통하여 그 맹세를 성취했다. … 또한
영적인 제물의 개념은 말씀에 의해서만 뒷받침되는 것이 아니다.
역사가가 그 맹세가 성취된 것을 그가‘그 서원한 대로 딸에게
행하니’라는 말로 묘사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영적인 희생 제물
의 개념을 가장 확실하게 뒷받침해 준다. 이 말투는 이 역사가가
그 행위 자체를 칭찬할 만하고 선한 것으로 생각했다는 결론을
이끌어 낸다. 그러나 선지자였던 역사가들은 결코 인간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것을 인정한 적이 없다.”(케일과 델릿츠, 주해서,
2:1:392~393)
입다의 서원(30~31절)의 말과 한나의 서원(사무엘상 1:11 참
조)의 말을 비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