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말씀·경전

솔로몬은 다윗이 택한 자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29.

열왕기상 1장
왕위 계승 관습에 따르면 아도니야는 다윗의 왕위를 상속받을
수 있었다. 아도니야는 다윗의 넷째 아들이었다.(사무엘하 3:4
참조) 그의 형들 가운데 두 명, 곧 암몬과 압살롬은 이미
죽었으며, 셋째인 길레압은 그의 탄생 기록 이외는 언급되어 있지
않다.
다윗의 노령과 쇠약으로(열왕기상 1:1~4 참조) 아도니야는
자신이 후계자가 될 것임을 백성들에게 보일 때가 이르렀다고
확신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백성들에게 그의 권세를
확신시키고 그의 위치를 공고히 하기 위한 대중의 지원 바탕을
구축하기 위한 처신을 하게 되었다. 그는 왕의 행렬을
세웠으며(5절 참조), 군대 장관 요압과 제사장 아비아달과 궁전의
왕자와 다윗의 개인 참모(7, 9절 참조)를 포함해서 중요한 자들의
지원을 구했고 큰 잔치를 준비했다.(9절 참조) 그는 일부러
후계자인 솔로몬에게 충실한 사독과 다른 중요한 제사장, 군대
장관인 브나야(요압의 제2의 지휘관), 다윗의 호위병인
“용사들”(8절 참조)과 선지자 나단을 제외시켰다.
그러나 나단이 아도니야가 모의하는 일을 듣고 그것을 솔로몬의
모친 밧세바에게 고함으로써, 아도니야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다.
그녀의 생명과 솔로몬의 생명이 위험에 처해 있다고 그가
경고(12절 참조)한 것은 정부의 군주 정치에 대한 문제점을 잘
나타내 준다. 왕가에서 흔히 발생하는 그러한 다툼 때문에 새로운
왕은 그의 모든 형제들과 그의 통치에 위험이 된다고 생각되는
다른 상속자들을 살해하는 일이 있었다.
밧세바와 나단은 신속하게 아도니야의 계교를 다윗왕에게
알렸다.(11절 참조) 아도니야가 왕좌를 노렸다는 것을 안 다윗은
곧 솔로몬을 공동 섭정자로 임명했다. 그들은 다윗이 사망할
때까지 함께 통치했다.
솔로몬은 불과 20세밖에 안되었지만, 다윗과 사울과 같이
의로운 제사장과 선지자에 의하여 왕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다.(34, 39절 참조) 솔로몬은 다윗이 택한 자요 여호와께서
택하신 자라는 것을 백성들에게 나타내기 위해 다윗은 그의 공동
섭정자의 대관식을 즉시 거행하도록 명했다. 그는 솔로몬을 그의
노새에 태우고 전통적으로 왕의 승리의 입성의 길로 들어서 그
행렬이 기흔까지 갔다. (제이 알 덤멜로우, 성경 주해서, 693쪽
참조; 마태복음 21장 1~11절에 기록된 예수님의 예루살렘
승리의 입성과 비교한다.) 백성들은 솔로몬을 그들의 새로운
왕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열왕기상 1:39~40 참조)

이와 같이 해서 다윗은 신속하고 단호한 조치를 취하여 왕위를
찬탈하려는 아도니야의 시도를 꺾고 솔로몬을 왕으로 세웠다.
우리는 아도니야가 베푼 잔치에 참석했던 자들이 겁에 질려 급히
도망쳤을 모습을 쉽게 상상할 수 있다. 그들은 새 왕에 대한
반역죄로 구속되었고 그들은 아도니야와의 관계를 끊기를
갈망했다.
이제 아도니야의 생명은 위험에 처해 있었다. 그는 그 왕좌에
오를 유력한 경쟁자였을 뿐만 아니라 솔로몬의 권리를 가로채려
했음이 분명했던 것이다. 그래서 아도니야는 솔로몬이 즉위했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집으로 가지 않고 곧장 다윗성 위의 모리아
산으로 도망쳤다. 여기에는 다윗이 쌓았던 번제단이 있었다.
번제단의 뿔은 자신의 죄에 대한 진상이 조사되고 심리될 때까지
매달릴 수 있는 성소라고 여겨졌다.(출애굽기 21:13~14 참조)
그곳에서 아도니야는 솔로몬이 그에게 자비를 베풀기를 기다렸다.
(열왕기상 1:50~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