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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회개·신권·구원

실패했을 때, 낙심하기보다는 회개하고, 더 잘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힘을 구해야 한다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27.

우리는 사도 요한으로부터 이런 말씀을 듣습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될지는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나시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참모습 그대로 볼 것이기 때문이니 주를 향하여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의 깨끗하심과 같이 자기를 깨끗하게 하느니라”[요한1서 3:2~3] 후기 성도들은 이런 온전한 상태에 이르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처럼 되고 그분 면전에 거하기에 적합하고 합당한 자녀가 되기를 기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 나타나실 때 육신이 새롭고 영화롭게 되어 “우리의 낮은 몸을 [그분]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기를]”[빌립보서 3:21] 기대합니다.
우리는 이러한 기대를 품고 있습니다. 이제 모든 분은 이렇게 자문해 보십시오. 우리의 기대는 타당한 바탕 위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까? 달리 말씀드려, 우리는 순결해지려고 노력합니까? 후기 성도가 하나님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순결하고자 힘쓰지도 않고, 일상에서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 항상 양심에 거리낌이 없도록 노력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자신이 올바르다고 여길 수 있겠습니까? 틀림없이 우리 중 많은 이들은 매일, 매주, 매달 하나님 앞에서 책망받을 행동을 하지 않고 올바르게 처신하여 하나님의 영이 매일의 삶을 주관하시기를 참을성 있게 간절히 구합니다. 하지만 살다 보면 엄청난 시험이 닥치거나 어려움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때도 있습니다. 그렇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힘과 결의를 배가하여 목적을 이루기 위한 노력을 다시 시작해야 합니다.
주님은 지상에 사는 그분의 자녀들에게 관대함을 보이고 싶어 하십니다. 그러나 그분은 자녀들이 범법하거나 의무를 이행하지 않았을 때에는 참된 회개를 요구하십니다. 주님은 그들이 순종하고 모든 죄를 버리려 애쓰며 스스로를 깨끗하게 하여 그분의 진정한 백성이자 성도가 되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로써 자녀들은 그분 면전으로 나아갈 준비를 갖추고 모든 면에서 그분처럼 되어 영광 가운데서 그분과 함께 통치하게 됩니다. 이를 이루려면 더욱 빛을 발하는 더 나은 삶을 살고, 신앙과 그리스도의 참된 사랑인 자애로 가득하며, 복음 안에서 모든 의무를 충실히 수행함으로써 협착하고 좁은 길을 걸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나 다른 위대하고 거룩한 분들의 삶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의로워지려고 노력했더라도 늘 성공을 거둔 것만은 아님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한때 약해졌더라도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도리어 실수나 잘못을 곧바로 회개하고 가능한 한 빨리 고치며, 그런 다음 계속 더 나은 행동을 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새로운 힘을 구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부친의 집을 떠날 때 하나님 앞에서 매일같이 온전하게 처신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목자가 조카인 롯의 목자와 다툴 때 문제 해결을 위한 제안 과정에서 뛰어나고 잘 단련된 심성을 보여 주었습니다.[창세기 13:1~9 참조] 그러나 아브라함의 인생에서 몹시 힘든 시기가 닥쳤으니, 사실상 이보다 더 혹독한 시련은 거의 생각해 볼 수가 없습니다. 바로, 주님으로부터 사랑하는 외아들을 번제로 바치라는 요구를 받았을 때였습니다. 주께서 자신에게 주신 위대한 약속을 성취할 것으로 기대했던 바로 그 아들을 바치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올바른 성품을 나타내 보임으로써 시험을 이겨내고 자신의 신앙과 하나님에 대한 진실성을 입증했습니다.[창세기 22:1~14 참조] 아브라함이 그런 심성을 우상을 섬긴 부모로부터 물려받았다고 생각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와 마찬가지로 육신과 싸우면서 육신에 굴복 당할 때도 틀림없이 있었겠으나, 그런 다음에 그처럼 혹독한 시험을 견딜 수 있을 정도로 육신을 극복한 뒤에야 하나님의 축복을 받아 그런 마음의 상태를 얻었다고 믿는 것이 일관성이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빌립보서 2:5~6]라고 말합니다. 이제 그분 앞에서 이런 목표를 따
르는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순결하신 것처럼 자신을 순결하게 하고 그분 앞에서 온전하게 행하기를 힘씁니다. 우리는 다소 어리석은 행동을 하고 나약합니다만, 되도록 빨리 이를 극복하도록 힘써야 하며, 자신을 순결하고 온전히 지키려는 마음을 자녀들에게 심어 줘야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아주 어릴 때부터 자녀들은 하나님에 대한 외경심을 가질 수 있고 어떤 상황에 처하더라도 그분 앞에서 올바르게 처신하는 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남편이 아내와 다투지 않고, 또는 어떤 식으로든 다른 사람에게 불친절하거나 하나님의 영을 슬퍼하게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낼 수 있다면, 지금까지는 잘 한 것이며, 온전하게 행동한 것입니다. 그런 후 다음 날도 똑같이 해 봅니다. 그러나다음날 실패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셋째 날에도 성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후기 성도들은 앞 시대에 사도들이 분명히 제시한 이 대망을 꾸준히 키워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모든 사람들 앞에서 양심에 거리낄 것이 없도록 행하고자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돕기 위한 방편, 즉 “성도를 온전하게 하[기 위해]”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등[에베소서 4:11~12 참조]을 두셨습니다. 또한 확실한 안내자인 성령을 주셨는데, 이는 하나님의 천사로서 우리 곁에 서서 우리에게 해야 할 일을 알려 주며, 우리가 가는 길에 역경이 닥칠 때 힘과 도움을 줍니다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깨달을 때 낙심해서는 안 됩니다. 고대나 현대 선지자들이 확립한 모든 영예로운 본보기 가운데에는 악한 자의 원대로 낙심한 사례를 전혀 찾아볼 수 없습니다. 도리어 약함을 이겨 내고 상을 타기 위해 끊임없이 힘썼으며, 그리하여 충만한 영광을 받을 준비를 갖추었습니다.9 [104쪽 제언 4 참조]-로렌조 스노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