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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호세아는 창녀와 결혼하라는 명을 받았는가?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27.

호세아 1:2~3

여호와께서 처음 호세아에게 말씀하실 때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이르시되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 하시니 
이에 그가 가서 디블라임의 딸 고멜을 맞이하였더니 고멜

임신하여 아들을 낳으매

 

이 구절은 특히 후기 성도들에게는 어려운 문제를 제기한다.
여호와는 자기 자신과 이스라엘 사이의 관계를 상징하기 위해서
그의 종에게 부정한 여인을 아내로 취하게 하셨을까? 그렇지
않으면 이 명령은 오직 상징적인 면으로서만 해석되는 것인가?
이것은 다섯 가지 해석을 내릴 수 있다.
1. 호세아는 실제로 하나님에게서 창녀와 결혼하라는 명을
받았다
. 이와 같은 견해를 주장하는 학자들은 그러한 결혼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그들의 육욕적인 상태에 그 관심을 돌리기 위한
실물 공과로 사용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스페리는“여호와의
거룩하신 본질과 일치하지 않는 명을 하나님의 탓으로 돌리고
있다.”라고 말하여 후기 성도가 이 주장을 거부함을 밝혔다.
(이스라엘 선지자의 음성, 281쪽)
2. 그 경험은 꿈이나 시현으로 호세아에게 임한 것이다.
거기에는 창녀나 결혼 같은 것은 없었으나, 호세아는 부도덕한
이스라엘(고멜)에 대하여 선지자(남편)가 되는 부담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그럴듯하기는 하지만, 대부분의 학자들은 호세아가
비유적 표현에 깊이 개입되었을 것이므로 이것을 거부한다.
3. 호세아는 선하고 충실한 여성과 결혼했지만, 후에 그녀는
이웃 가나안인들의 다산 의식에 참여하고자 남편 곁을 떠나 부정한
아내, 곧 창기가 되었다
. 여기서 호세아의 생활이“비유화”
되었으며, “음란한 여자”(호세아 1:2)라는 말은 고멜이 어떤
여자가 되었는가를 말해 준다. 다시 말해서 호세아는 고멜과
결혼했으나, 그 당시에 그녀는 창기가 아니었다. 그러나 그 당시의
다른 사람들처럼 그녀는 창기가 되었다. 이러한 주장을 내세우는
학자들은 호세아가 후대에 들어서 자신의 경험과 자신이 고통 받은
모든 것을 돌이켜 보고, 자신이 일상생활에서 겪었던 사건 중에서
자신의 가르침을 나타내는 데 도움이 되는 것을 기록했다고
주장한다. 이 해석에서 이해하기 힘든 것은 주께서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2절)를 취하라고 명한 것이다. 고멜이 결혼
생활에서 충실하고 참되었다면 이 구절은 그녀를 좀 더 특별한
방법으로 설명했을 것이다.
4. 3번의 해석이 변형된 것으로 고멜은 실제로 창기가 아니라
바알의 숭배자였다는 것이다
. 그러므로 그녀는 영적으로 간음을 한
것이다. 그렇더라도, 여호와께서 선지자에게 믿지 않는 아내와
결혼하도록 명하신 것이 특이하다.
5. 2번의 앞의 해석에 밀접하게 연관되는 것으로, 그 말들은
이스라엘의 불신앙의 영적인 결과를 가르치기 위해 꾸며 낸 비유를
나타내는 말들이라는 이론이다
. 호세아는 실제로 그러한 결혼
계약을 맺은 적이 없다고 스페리는 말했다. 그는 그의 견해를
다음과 같이 주장하는데 그것이 후기 성도가 신뢰할 만한 것으로
보인다
. “여호와께서 호세아에게 음란한 여자를 취하라는 부름은
성역 곧 배도하고 성약을 깨뜨린 백성들에 대해 성역을 베푸는
선지자의 부름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 분명한 결함에서 나온
음란한 자식들은 이스라엘에게 내려진 주님의 심판의 도래, 즉
선지자들이 백성들에게 주는 경고를 나타낸다. 음란한 아내와
자식의 비유는 호세아 자신의 아내로 생각되지 않거나, 그 자신이
결혼하지 않았다 해도 당시 히브리인들에 의해서 쉽게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이스라엘 선지자의 음성, 281쪽)
시 에프 케일과 에프 델릿츠도 문자그대로의 해석은 하나님을
모순된 존재로 만들게 된다고 주장했다. “단순히 상징적인 것과
실제적인 것 사이에는 본질적인 차이가 있다. 백성들에게 죄의
가증스러운 점과 그에 따르는 형벌을 마음 속 깊이 새겨 주기 위한
목적으로 선지자에게 상징적 형태로라도 죄를 규정하라는 지시는
하나님의 거룩하신 성품과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죄를
지으라고 명하는 것은 모순되는 것이다. 거룩하신 분이신 여호와가
스스로 모순되거나, 자신의 본질을 부인하면서까지 도덕 법규를
폐지하거나 실제로 부도덕한 어떤 것을 명할 수 없다
.

스페리는 문자 그대로의 해석에서 제기되는 다른 문제점을
지적했다. “더구나, 호세아가 과거가 의심스러운 여인과
결혼한다면 그는 그의 백성들에게 설교하거나 성적인 퇴폐 행위를
꾸짖을 수가 없을 것이다. 그들은 그에게 조소의 손가락질을 하며,
‘당신이나 우리나 죄짓기는 마찬가지요, 우리에게 설교하지
마시오’하고 말할 것이다.”(이스라엘 선지자의 음성, 281쪽)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든 각 견해에 대하여 타당한 논리를
세울 수 있으나, 비유적 표현의 의미는 분명하며, 그것이 호세아가
쓴 기록을 이해하는 토대가 된다. 스페리의 글이 다시 한 번
도움이 된다.
“호세아의 결혼에 대한 저자의 해석이나 다른 어떤 사람의
해석을 받아들인다 해도 1~3장의 종교적인 의미는 매우
분명하다. 호세아의 아내들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여호와는
이스라엘이 음란한 행위를 버리지 않는다면, 큰 벌을 받게
되리라는 것을 명백히 하신다. 이스라엘의 큰 죄로 그들은 크게
꾸지람과 벌을 받게 되어, 이스라엘이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
남편이 더 큰 의미가 있다는 것은 중대한 경험과 시련을 통해 알게
된다.[호세아 2:6~7]”
“이스라엘이 오랜 세월에 걸쳐 방황했음에도 불구하고 변함없이
주어지는 애정은 다시 이스라엘에게 구애하는 여호와의 시도에서
잘 나타난다.[호세아 2:14]”
“여호와의 부드러운 구애로 이스라엘은 결국 우리 속으로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2장에서 자주 언급된 사악한
가나안의 퇴폐 행위에 다시는 빠져 들지 않게 될 것이다.[호세아
2:16~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