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 열 지파가 포로로 잡혀 간지 얼마 후에, 앗수르는 자국의 백성들을 전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살던 지역으로 이주시켰다. 새 주민들이 번성하지 못하자 앗수르 왕은 이스라엘의 제사장을 그 지역으로 보내 여호와를 숭배하라고 그 백성들을 가르치게 했다. 그렇지만 여호와 숭배는 앗수르의 우상 숭배와 자유롭게 혼합되었다.(28~29절) 그들이 사마리아와 그 주위에서 살게 되자 그 땅의 새로운 주민들인 이들은 사마리안인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결국 포로로 살아남은 패잔병(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죽임을 당한 것은 아님)들과 앗수르 주민들과의 결혼으로 사마리아인들도 이스라엘 백성들의 성약의 축복을 주장하게 되었다. 수년 후에 사마리아인이 이방인의 혈통을 지녔으며 종교적으로 이교도적인 경향이 있다고 하여, 유대인들은 이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거절로 유대인과 사마리아인들 사이의 적대감은 더욱 커졌으며 이 적대감은 예수의 시대에도 뚜렷하게 나타났다.(에스라 4~5장 주해 참조) 유대인들은 이웃 사마리아인들과의 교제를 거절하였던 것이다.(요한복음 4:9 참조) (열왕기하 17:14~41.참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