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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용서·금식·부활

금식하는 올바른 방법이 있는가?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25.

진심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자들은 금식과 기도로써 그들의 죄를
이기고 주님께 좀 더 가까이 나아가고자 노력한다. 이사야 58장
1~7절은 고대의 이스라엘에게 해당되는 것인지, 현대의
이스라엘에게 해당되는 것인지, 아니면 모두에게 해당되는
것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금식하며 하나님과 친교하는 합당한
방법이 있다는 것은 분명하다. 이 구절에서 묘사하는 죄지은
이스라엘인들은 그들의 금식으로 혼란된 것 같고 하나님도 주의를
기울이지 않으시는 것 같다. 그들의 영혼은 괴로웠으며 하나님은
그들의 고통에 관심을 두지 않으셨다.(3절 참조) 그러나 주님은
그들이 부적당한 이유로 금식했다고 설명하셨다. 그들은 음식과
세상적인 활동을 삼가는 대신에 일을 하고 오락을 계속 즐겼다.
(3절 참조) “
보라 너희가 금식하면서 논쟁하며 다투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4절) 그것은 주님이 권고하셨던 그러한 금식이
아니다. 주님은 그들에게 그들이 하는 금식이“나의 기뻐하는”
(5절) 금식이라 한다면 대답하라고 말씀하셨다. 바꾸어 말하면
그것이 그를 기쁘게 하는 합당한 금식인가? 하나님께 진정한
겸손과 믿음을 나타내는가? 
금식은 진정한 영적인 목적이 있다.
그것은 사슬을 끊고 영적으로 억압당하는 자들을 자유롭게 해주며
굶주린 자에게 빵을 제공하고 헐벗은 자를 입히는 것이다
.(6~7절
참조) 존 에이치 반덴버그 감독은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이사야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에 관해 말한 것은 이기적으로 자신만을
생각하고, 허영심과 자만에 차 있으며, 세상적인 것에 마음을 두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두 가지의 큰 계명을 완전히
잊어버린 사악한 사람들에 관하여 언급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원리는 금식의 참된 목적과
일치됩니다.”
분명히 주님께서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라고 말씀하신 의미를 이해하는 것은 어렵지
않습니다.”
“그분은 가난한 자를 돌보는 것 이외에도 우리가 자신의 친족을
돌봐야 하며 아버지, 어머니, 형제, 자매가 필요할 때 책임을 져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은 교회가 공동으로 금식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서 함께
참여할 수 있도록 금식과 기도의 날로 이 날을 제정하셨다는 것을
말씀드립니다
.”(Conference Report, 1963년 4월, 28쪽)

(이사야 58:1~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