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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我聲高處

마을은 온통 아카시아 향기로 가득하였습니다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24.

6.25가 지나간 내 고향 강원도의 시골 산은 어디를 가나 벌건 민둥산이었고 비라도 심하게 내리면 산사태가 나고 물은 온통 흙탕물 이었습니다.지금이냐 산들이 울울창창하여 조상들의 산소를 찾아가기도 쉽지 않게 되었고 이전에 다니던 길들은 이미 잡목으로 뒤덮여서 더 이상 길로서의 역할을 못한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60년대 제가 국민학생 시절에는 식목일을 전후하여 인근의 산들에 도시락을 싸서 아버지는 갱이를 메고 어머니는 돌이나 흙을 나르기 위하여 대야와 같은 것을 머리에 이고 사방공사를 나가시던 어른들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국민학교에 다니던 저와 같은 학생들은 숙제로 내준 아카시아 씨앗 1되 모으기와 산과 들에서 맺는 이름없는 풀 씨앗 1홉 모으기와 같은 숙제를 하기 위하여 방과후에 들과 야산을 돌아 다니던 일들이 생생히 생각납니다.
또한 멀지 않은 곳에는 어린 저희들도 식목하러 가고 또 식목한 묘목이나 흙을 덮은 각종 씨앗에 물을 주던 기억이 있습니다. 거의 40여 년 전의 일입니다. 당시에는 수종을 고른다기보다는 우선 민둥산을 피하고 산사태를 방지하는 것이 우선이었기에 그러한 척박한 조건의 토양에서도 활착이 잘 되고 빨리 자라는 아카시아 나무를 선호 하였습니다.이렇게 빨리 자란 아카시아 나무가 산 사태를 막았고 그 잎이 땅에 떨어져서 거름이 되고 산을 비옥하게 하였고 적절한 때에 다른 경제 수종으로 바꿀 수 있는 계기를 마련 하였습니다.
그러나 한때는 아카시아나무가 마치 자연을 망치는 원흉이라도 되는 듯 소란을 피운 적이 있습니다. 심지어는 일제가 우리나라 산림을 훼손하기 위하여 의도적으로 심었고, 생각 없는 군사정권이 그 뒤를 이어 우리 산야를 망쳐 놓았다는 이야기도 있었으며, 전국의 아카시아 나무를 베어 없애고 경제수종으로 바꿔야 된다는 주장도 있었습니다.어쨌든 제가 살던 고향의 하천가에는 정말 온통 아카시아 밭이었습니다.
5-6월쯤이면 탐스러운 아카시아꽃이 지천이었고 마을은 온통 아카시아 향기로 가득하였습니다.먹을 것이 없었던 그 시절 봄에 따먹던 진달래꽃과 더불어 초여름의 아카시아꽃은 훌륭한 어린이의 간식거리였으며, 장난감이 없었던 시절 가위바위보를 하며 아카시아 잎을 하나씩 떼어내는 놀이는 어린이들의 재미있는 놀이었습니다.그리고 밀가루를 묻혀서 쪄먹던 아카시아꽃은 훌륭한 춘궁기의 구황식물 이었습니다.또한 아카시아는 심은지 3-4년이 되면 자라서 무성한 꽃을 피우는데 ,아카시아 꽃은 꿀을 생산하는데 아주 좋은 꽃입니다. 또한 꽃은 술을 담그거나 각종 떡과 전의 재료로도 훌륭하게 쓰였습니다. 요즘에는 아카시아 꽃의 추출물을 이용한 각종 약품과 기능성 식품의 연구개발이 활발하여져서 좋은 건강식품으로도 개발이 되어 나오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