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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선지자

사람들이 즐겨하지 않는 메세지를 전파하는 예레미야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24.

레위인인 예레미야는 베냐민 지파의 영토인 예루살렘
북동쪽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제사장의 마을인 아나돗
출신이었다. 그는 적어도 유다의 네 왕 곧, 요시야, 여호아하스,
여호야긴, 시드기야의 치세에 선지자로서의 그의 부름을
수행하였다. 그는 약 주전 627년에 어린 시절부터 일을
시작하였으며 하박국, 스바냐, 리하이 및 다른 사람들과
함께(니파이전서 1:4 참조) 예루살렘에서 지도자적인 선지자로
일했다. 예레미야의 두루마리와 예언이 놋쇠판에 기록되어
있었으므로 리하이와 니파이가 그것을 참고하였다고 가정하는
것이 안전하다.(니파이전서 5:14 참조)
“요시야를 제외하고는 예레미야의 성역 시기 동안 유대를
치리하던 왕들은 모두 나라를 심한 고통으로 몰아 넣은 합당치
못한 자들이었다. 그 이전의 왕인 사악한 므낫세의 통치 중에도
바알 숭상이 유대인 사이에서 다시 일기 시작하였으며,
앗수르-바벨론의 종교에 따라 하늘의 유성을 예배하는 신앙이
도입되었다. 예레미야는 그의 백성 가운데 우상 숭배와 이교도적인
종교가 만연했음을 발견하였다. 이교도의 우상이 성전에
세워졌고[예레미야 32:34], 어린 아이들이 바알신에게 제물로
바쳐졌으며(7:31; 19:5; 32:35), 바알이 이교도의 신으로
특별히 두각되었다. ‘하늘 황후’에 대한 숭배도 또한 언급되어야
한다.(7:18; 44:19) 국가의 종교의 부패에는 물론, 온갖 종류의
부도덕과 불의가 수반되며, 이에 대하여 선지자는 끊임없이
증거하였다. 가난한 자들은 잊혀졌다. 예레미야는 사면에 거의
완전한 배도로 둘러 쌓였다. 그러나 그곳에도 전문적인 선지자들이
많았다. 에이치 엘 윌렛 박사는 이렇게 말했다.”
“‘그의 주위에는 많은 선지자들이 있었으나 그들은 모두 양심을
일깨우는 말을 하지 않고, 백성들에게 나라가 하나님의 보호를
받아 안전하다고 안심시켜 주는 감언이설의 안이하고 대중의
인기를 얻는 전문적인 설교자들이었다. 이사야 시대에는 그것이
사실이었다. 그러나 그 시대는 이미 먼 과거였고, 이제 예루살렘은
포로가 될 운명이었다. 그리하여 예레미야는 사람들이 즐겨하지
않은 메시지를 전파하는 운명을 받았고
, 거짓 선지자들은
사람들에게 그가 비애국자이며 영감을 받지 않은 비관론자라고
설득시켰다.(14:13, 14)’”(시드니 비 스페리, 이스라엘
선지자들의 음성, 15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