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00여 년 동안 모세에게서 나온 경전은 일상에서 읽는 책이 아니라 안식일과 같은 특별한 경우에 사용되었다. 때때로 경전이 분실되어 일반 대중 지식에서 사라지기도 하였다.(열왕기하 22:8~13 참조) 경전으로 아는 지식만이 사람을 좋고 곧은 길에 서게 하는 것은 아니지만 하나님의 말씀(쇠막대) 없이는 절대적으로 바른 길에 설 수 있는 소망을 갖지 못한다는 것은 사실이다. 이 교훈은 유대인들이 포로 생활을 하면서 절실하게 느꼈던 것이었다. 그들의 지도자들은 유대인이 다시는 주님의 성약과 율법에 무지하지 않게 하기로 결심하였다. 위대한 선지자이며 서기관인 에스라는 율법을 공부하는 전통과 행위를 세우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느헤미야 8:1~12 참조) 에스라의 위대한 사업은 바른 경전의 사본을 집대성하여 완성시키는 데 큰 공헌을 하였다는 점이다. 이에 대하여 기독교인이나 유대인이 모두 그를 치하한다. 특별히 고대 선조들이 유대인들보다 그의 업적에 더 큰 감사를 표하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그들은 모든 경전이 바벨론 포로 생활에서 분실되거나 파기된 것으로 여겼으며, 에스라가 이를 다시 하나님의 계시로써 회복시켰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여기에서 에스라가 행한 일이란 그가 모을 수 있는 거룩한 기록을 모두 모아서, 그 기록 가운데서 정확한 판만을 모아 편집한 것이었다. 그는 당시 경전에 포함되어 있던 모든 기록서를 함께 모으고, 그것을 올바르게 순서대로 배열하여 그 당시의 경전의 정경을 수립하였다. 이 기록서를 그는 1. 율법서 2. 예언서 3. 세두법 또는 하기오그함, 다시 말해서 거룩한 기록 등의 세 부분으로 나누었는데, 구주께서는 이 같은 분류를 친히 누가복음 24장 44절에서 언급하셨다. ‘내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바 곧 모세의 율법과 선지자의 글과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 한 말이 이것이니라”(프리도, 구약전서와 신약전서의 연관된 역사, 아담 클라크, 성경 주해 및 주석, 2:722~723) 경전을 갖고 있다는 것만으로 충분한 것은 아니었다. 경전은 모든 사람들에게 읽혀지고 들려져야 했다. 그래서 에스라와 다른 서기관들은 모든 사람들이 경전을 배울 수 있도록 필요한 단계를 취하였다. 그러나 바벨론의 유대인들은 갈대아의 언어와 문화를 도입하기 시작하였기 때문에 특별한 문제에 부딪치게 되었다. 다시 말하면 서기관들이 경전을 히브리어로 읽고, 그것을 다시 갈대아어나 다른 지역의 언어로 번역하거나 설명해 주어야 했다. 이 같은 행위로 서기관들은 종교적인 면에서 필요한 인물이 되었으며, 결과적으로 유대인들 사이에서 사회적 및 종교적인 특권을 얻게 되었다. 여러 해가 지나면서 각 종교 그룹-서기관, 바리새인, 사두개인 등등-은 문서화된 말씀을 참고하고 이를 인용하여 여기에 말을 붙이고, 해석하고, 다시 말하면 그들의 조상이 이룩한 것을 덧붙였다. 주해, 설명, 해석, 참고가 구전의 전통이 되었다. 얼마 안가서 이러한 전통이 기록이나 구전으로 유대인의 예배에 주요 주제가 되었다. 살아 있는 선지자의 끊임없는 계시가 없었으므로, 유대인의 이해력은 그들을 더 주님께 가까이 가도록 돕기 위하여 세워졌었던 전통에 의하여 오히려 점차 어두워져 갔다. 구주께서는 이러한 전통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저 사악한 자는 와서 사람의 자녀들에게서 불순종을 통하여 그리고 그들 조상의 전통으로 말미암아 빚과 진리를 빼앗아 가느니라.”(교리와 성약 93:39) 그들의 전통은 유대 민족을 배도의 길로 인도하여 메시야가 그들에게 오셨을 때 그를 알아보지 못하게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