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기의 후기 성도들이 바라는 것 중 하나는 그저 평화로운 가운데 그들의 종 교에 따라 생활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어느 곳으로 이주해 가든, 평화는 그들을 피해 갔다. 미주리 주에 집합 장소가 헌납된 지 꼭 2년이 되던 1833년에, 폭 도들은 성도들을 미주리 주 잭슨 군에서 강제로 내몰았다. 교회 회 원들은 미주리 주 클레이 군에서 일시적으로 피난처를 찾았으며, 그 후 1836 년에 북부 미주리로 이주하기 시작했다. 그들 대부분은 성도들을 수용하기 위해 주 입법부에서 새로 조직한 클레이 군에 정착했다. 군 소재지였던 파웨스트는 곧 번성하는 후기 성도 정착지가 되었다.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오하이오 주 커틀랜드에서 계속 살았지만, 1838년 1 월에 그는 생명에 위협을 느껴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다. 그는 가족과 함께 파 웨스트까지 1,448킬로미터를 여행하여 그곳에 있는 성도들과 합세했다. 1838 년 후반에는 대부분의 커틀랜드 성도들이 집을 팔거나 집에서 추방당했으며, 선 지자를 따라 미주리 주로 왔다. 그 지역으로 밀려들어오는 교회 회원들을 수용 하기 위해, 선지자는 파웨스트 근처에 성도들이 정착할 수 있는 지역을 몇 군데 지정했다. 1838년 7월에는 파웨스트에 성전을 위한 초석이 헌납되었고 그로 인해 성도들은 번영과 평화를 누릴 수 있는 영원한 정착지를 세울 수 있으리라 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클레이 군에서 경험한 것과 비슷한 긴장감으로 인해 그들은 곧 그 지역 주민들과 대립하게 되었으며, 1838년 가 을에는 폭도와 군대가 다시 한 번 후기 성도들을 괴롭히고 공격하기 시작했다. 하루는 선지자가 파웨스트에 있는 부모의 집을 방문하는 중이었는데, 무장한 민병대가 들이닥쳐 그가 범죄를 저질렀다고 주장하면서 그를 죽이러 왔다고 했 다. 선지자의 모친인 루시 맥 스미스는 조셉의 화평케 하는 은사를 이렇게 묘사 했다. “조셉은 매우 상냥한 미소로 그들을 바라보면서 그들에게 다가가, 그가 범죄 자나 부끄러운 위선자도 아니라는 것을 확신시켜 주는 태도로 그들과 일일이 악 수를 나누었다. 그들은 마치 유령이 그들 앞을 지나가기라도 한 듯 멈추어 바라 보았다. “조셉은 자리에 앉아 그들과 대화를 나누었으며 몰몬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가 진 견해와 생각, 그리고 그들이 어떤 길을 걸어 왔으며, 교회를 처음 조직한 이 래로 적들로부터 어떤 대우를 받아 왔는지에 대해 설명했다. 그는 그들에게 몰 몬들이 미주리 주에 들어온 이래로 악의와 비난이 그친 적이 없으나 자신이 아 는 한 몰몬들은 결코 법을 어긴 적이 없는 사람들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만일 법 을 어겼다면 그들은 법에 의해 재판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다고 했다. “이러한 대화를 나눈 후에 그가 일어서서 말했다. ‘어머니, 전 이제 집에 가 야겠어요. 에머가 기다리고 있으니까요.’그러자 두 사람이 벌떡 일어서서 말했 다. ‘혼자 가셔서는 안 됩니다. 너무 위험해요. 우리가 동행하면서 보호해 드리 겠습니다.’조셉은 감사를 표하고 함께 나갔다. “나는 그들이 나간 뒤에 문가에 서 있던 나머지 장교들이 다음과 같은 대화 를 나누는 것을 들었다. “첫째 장교: ‘스미스가 자네 손을 잡았을 때 이상한 느낌 안 들었나? 난 그 런 느낌은 생전 처음이었네.’ “둘째 장교: ‘난 꿈쩍도 할 수 없었다네. 온 세상을 준다 해도 그 사람의 머 리카락 하나 해치고 싶지 않네.’ “셋째 장교: ‘다시는 조셉 스미스나 몰몬들을 죽이자고 나를 데리러 오지 말 게 ’ “나의 아들과 함께 간 사람들은 가서 그들 휘하에 있는 군대를 해산시켜 집 으로 보내겠다고 약속하고, 조셉이 그들을 필요로 할 경우 돌아와서 어디든 그 를 따라가겠다고 했다.” 진리에 대해 온화하고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서, 조셉 스미스는 편견과 적의 를 극복하고 자신의 적이었던 많은 사람들과 평화로운 관계를 이루었다 (조셉 스미스의 생애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