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으로부터 오는 계시, 즉 가르치는 사람, 배움을 갈구하는 사람 등 교회의 모든 회원에게 오는 영적 계시에 적용될 몇 가지 원리를 살펴보고 싶습니다. 먼저, 주님께서는 그분의 시간에 그분의 방법으로, 영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이라는 점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 원리를 깨닫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준비될 때 자신의 편의에 맞추어 주님을 부를 수 있고, 심지어는 자신이 정한 방법대로 주님이 곧바로 응답해 주시리라고 믿습니다. 계시는 그런 방법으로 오지 않습니다. 계시를 받기 위한 준비 계시를 받으려는 모든 노력에 따르는 기본 사항은 자신의 노력과 판단으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하겠다는 의지입니다. 이것은 우리가 봉사하고 일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봉사하고 일하면서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 계시를 받기 위해 준비하는 중요한 방법입니다. 저는 경전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의 자녀에게 오는 대부분의 계시는 그들이 가장 먼저 해야 할 바를 주님이 말해 주시기를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때가 아니라 그들이 행동하고 있을 때 온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어, “이스라엘 진영에 관한 주의 말씀과 뜻”(교리와 성약 136:1)으로 알려진 계시는 1844년에 선지자가 순교한 이후 비탄에 잠긴 십이사도 정원회가 나부에서 탈출할 계획을 세우던 시기에 주어지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계시는 성도들이 나부에서 서쪽으로 아이오와를 건너 미주리 강에 있는 임시 진영까지 이동하는 시련의 나날을 보낸 후에 네브래스카 윈터쿼터스에서 주어졌습니다. 성도들을 평원 너머로 이동시키라는 그 계시는 1847년 1월 14일에 왔는데, 그때는 성도들이 산맥의 골짜기로 가는 길을 이미 약 1/3가량 온 상태였습니다. 우리가 온 힘을 다했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할 일에 대한 지침을 간구하며, 그늘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밖에서 내리쬐는 햇볕 아래서 일하고 있을 때, 영의 속삭임을 받게 될 것입니다. 계시는 하나님의 자녀들이 움직이고 있을 때 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할 수 있는 일을 다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서 주님의 계시를 기다려야 합니다. 그분께는 그분의 시간표가 있으십니다.
시기와 유형 약 35년 전, 제가 브리검 영 대학교 총장으로 있을 당시, 우리 대학교에서는 미국 대통령을 초청하여 연설을 들으려는 계획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때 우리는 우리 편의에 맞는 특정 시간과, 대통령이 방문해서 연설해 주었으면 하는 몇 가지 주제를 염두에 두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모두 미국의 최고 통치권자에게 브리검 영 대학교에까지 와서 2만 6천 명의 학생들에게 연설을 해 달라고 요청하면서 조건을 내걸 처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분을 초대할 때 “언제 오시건 몇 시에 오셔서 무슨 말씀, 무슨 일을 하시건 대환영입니다. 모든 것을 방문 일정에 맞춰 조정하겠습니다.”라고 말해야 한다는 것 또한 알고 있었습니다. 만일 그것이 2만 6천 명으로 이루어진 공동체에서 한 국가의 최고 통치권자에게 취해야 할 접근법이라면, 중요한 위치에 있는 한 인간에게 그렇게 해야 한다면, 우리가 우주의 최고 통치권자인 하나님의 방문 또는 의사소통에 대해 조건을 내걸거나, 개인적 편의에 맞춰 시간을 정할 처지에 있지 않다는 것은 그리 놀랄 일이 아닐 것입니다. 진실로 이것이 교리와 성약 88편에 나오는 위대한 계시를 통해 주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가르치신 원리입니다.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게 가까이 오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가까이 가리라. 나를 부지런히 찾으라. 그리하면 나를 찾으리라. 구하라 그리하면 받게 될 것이요,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리리라.”(63절) 그런 후에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영광만을 전념하여 구하면 우리 온몸이 빛으로 충만하게 되어 모든 것을 깨닫게 된다고 선언하셨습니다. 그분의 가르침은 다음과 같은 약속을 가지고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자신을 성결하게 하여 너희 생각을 오로지 하나님께로만 향하게 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그를 볼 날이 이르리니, 이는 그가 너희에게 자기 얼굴을 드러낼 것임이라. 그리고 이 일은 그가 정한 때에 그가 원하는 방법으로 또 그 자신의 뜻에 따라 이루어지리라.”(68절) 이 계시에서 언급된 다음 원리는 우리 하나님 아버지과 우리 사이의 모든 교통에 적용됩니다. 우리는 영적인 것을 강압할 수 없습니다. 대개, “그분이 원하는 방법”은 천둥소리나 눈 부신 빛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경전에서 일컫는 것처럼 “고요하고 세미한 음성”(열왕기상 19:12; 니파이전서 17:45; 교리와 성약 85:6)으로 옵니다. 이 원리를 오해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래서 오로지 경전에 기록된 위대한 현시만을 바라며 그들에게 주어지는 “고요하고 세미한 음성”을 인식하지 못합니다. 이것은 마치 소리치는 선생에게만 배우기로 마음먹고 가장 현명한 가르침이 속삭임으로 올 때는 듣기를 거부하는 것과 같습니다. 주님께서는 큰 소리로 말씀하시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분의 메시지는 거의 속삭임으로 옵니다.
깨달음과 평안으로서 오는 계시 영이 우리를 가르치는 방법에 대한 가장 훌륭한 설명 중 하나는 1829년 4월에 펜실베이니아 하모니에서 올리버카우드리에게 주어진 계시입니다. 이 계시에서 주님은 올리버 카우드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러하도다. 보라, 나는 네게 임하여 네 마음에 거할 성신으로 말미암아 네 생각과 네 마음에 말하리라. 이제 보라, 이것은 계시의 영이니”(교리와 성약 8:2~3; 강조체 추가) 이와 비슷하게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계시의 영을 “순수한 예지”라고 표현하며, “홀연히 여러 생각이 떠오르도록 해 줄 수”1 있다고 했습니다. 또 다른 계시에서 올리버 카우드리는 자신이 주님께 간구했을 때 “네가 물을 때마다 너는 나의 영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느니라”(교리와 성약 6:14)라는 말씀을 받았습니다. 그 가르침은 어떻게 주어졌습니까?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라, 네가 내게 물었고 이에 내가 네 마음을 밝혀 …… 주었음을 너는 알고 있나니”(15절; 강조체 추가) 주님은 하이럼 스미스에게 주신 계시에서도 같은 가르침을 거듭 이렇게 언급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나는 네게 나의 영을 나누어 주리니, 그것은 네 마음을 밝혀 주며 네 영혼을 기쁨으로 채워 주리라.”(교리와 성약 11:13; 강조체 추가) 이런 성구들은 주님께서 그분의 영으로 우리와 교통하는 방법을 잘 설명해 줍니다. 주님은 올리버 카우드리에게 추가로 주신 가르침을 통해 그가 “이 일들의 진실”(교리와 성약 6:22)을 알기 위해 기도했던 때를 상기시켜 주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그 기도에 응답하셨고, 올리버에게 어떻게 계시를 주셨는지 이렇게 설명하셨습니다. “내가 그 일에 대하여 네 생각에 평강을 말하지 아니하더냐? 너는 하나님에게서 온 것보다 무슨 더 큰 증거를 얻을 수 있겠느냐?”(23절) 우리는 이런 계시들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그분의 영의 권능으로 가르치신다는 것을 배웁니다. 이 영의 권능은 우리 마음을 밝혀 주며 우리가 물었던 질문들에 대해 우리에게 평강을 말해 줍니다.
계시는 느낌입니다 우리는 또한 영으로 가르침을 받는 것은 수동적인 일이 아님을 이런 계시를 통해 알게 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마음속으로 깊이 생각할 때까지 그에 관해 주님과 교통하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깊이 생각한 후에야 확증이 옵니다. 1829년 4월에 펜실베이니아 하모니에서 받은 다른 계시에서 주님은 올리버 카우드리에게 그 과정을 설명하셨습니다. 주님은 올리버가 몰몬경을 번역할 수 없었던 이유를 이렇게설명하셨습니다. “보라, 너는 이해하지 못하였나니, 너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아니하고 다만 내게 간구하기만 하면, 내가 네게 그것을 줄 줄로 여겼도다. 그러나 보라,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네 생각으로 그것을 연구해야만 하느니라. 그러고 나서 그것이 옳은지를 내게 물어야 하나니, 만일 그것이 옳으면, 내가 네 가슴을 네 속에서 뜨겁게 할 것이라. 그러므로 너는 그것이 옳은 줄 느끼게 되리라.”(교리와 성약 9:7~8; 강조체 추가) 이것은 교리와 성약에 나오는 가장 중요하면서도 잘못 오해하는 가르침의 하나일 수 있습니다. 영의 가르침은 흔히 느낌으로 옵니다. 이 사실은 지극히 중요한데도 불구하고 그 의미를 오해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습니다. 저는 가슴이 “뜨거운” 것을 느껴 본 적이 없기 때문에 성신으로부터 오는 증거를 받은 적이 없다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기도 합니다. 가슴이 뜨겁다는 말은 제 생각에는 연소와 같이 뜨거운 열의 느낌이 아니라 평안과 따뜻함, 차분함과 선함의 느낌입니다.
계시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계시가 끊임없이 이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방법은 주님께서 그분의 영을 통해 우리에게 말씀해 주시는 빈도에 제한을 두시는 것입니다. 이 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너무 빈번하게 계시를 기대하는 까닭에 그릇된 길로 이끌리는 사람도 있습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보이드 케이 패커 회장님은 영의 작용에 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는 강하고 인상적인 영적 경험은 우리에게 그리 흔하게 오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2 그 점을 설명하기 위해, 우리의 첫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에덴동산과 주님의 면전에서 쫓겨난 후 그들에게 있었던 일에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교훈을 생각해 봅시다. 주님은 아담에게 양 떼의 첫 새끼를 주께 드리는 제물로 바치라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아담은 이에 순종했습니다. 주님은 곧바로 그와 교통하셨습니까? 경전에는 이렇게 나와 있습니다. ”여러 날 후에 주의 천사가 아담에게 나타나”(모세서 5:6) 가장 뛰어난 복음 교사 중 한 사람으로, 브리검 영 대학교와 교회 교육 기구에서 교육감으로 일했던 윌리엄 이 베렛은 끊임없거나 계속되는 계시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소한 모든 문제에 대해서까지 즉각적인 영의 인도를 간구하는 사람은 언제나 우리의 간청에 응답하며 우리를 혼동에 빠뜨릴 준비를 하고 있는 거짓 영들에게 자기 자신을 내던지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 이 교회에서 가장 혼란에 빠진 사람들은 모든 것에 관하여 개인적인 계시를 구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새벽부터 저녁까지 자신이 하는 모든 일에 대해 영으로부터 개인적인 확신을 얻고 싶어합니다. 제가 아는 한 그들은 가장 혼란에 빠진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때때로 그런 응답은 그릇된 원천에서 오기 때문입니다.”3 선지자 조셉 스미스도 이와 비슷한 말씀을 했습니다. 성도들이 “은혜의 보좌 앞에서 겸손하게 기도”할 때, 사소한 것들에 대해 그렇게 하지 말고 “가장 좋은 은사를 위해 진지하게 기도”4해야 한다고 권고했습니다. 이것은 중요한 원리입니다. 우리는 계시가 계속 주어질 것이라는 기대를 버리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가 인도를 구할 때마다, 그리고 우리의 여건이 지혜와 사랑이 많으신 주님께서 계시를 주실만 하다고 여기실 때, 우리는 계시가 계속될 것임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계시와 간증 시현은 실제로 일어납니다. 휘장 저편에서 음성도 들립니다. 저는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경험은 극히 예외적입니다. 그리고 위대하고 비범한 경험을 하더라도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세상에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그렇게 하지 말라는 지시를 받았고(교리와 성약 63:64 참조), 만약 이러한 것들을 세상에 드러내 놓는다면 계시의 통로가 닫히리라는 것을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지도자와 회원들에게 오는 대부분의 계시는 시현이나 알아들을 수 있는 구체적인 단어로 말하는 음성보다는 “고요하고 세미한 음성”이나 느낌으로 옵니다. 저는 이러한 종류의 계시가 실재함을 간증합니다. 저는 주님의 일을 하는 가운데 저를 인도하는 친숙하고 일상적인 경험을 통해 그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런 계시의 원리를 이해하지 못하는 까닭에 어떤 사람들은 기적적인 사건을 경험할 때까지는 자신의 간증이나 영적인 발전을 인정하려 들지 않습니다. 그들은 대부분의 사람, 특히 교회에서 성장한 사람들이 하나의 사건을 통해서가 아니라 과정을 통해서 귀중한 간증을 얻는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브루스 알 맥콩키(1915~1985) 장로님은 바로 그 점에 대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거듭난다는 것은 점진적인 과정입니다. 너무나 기적적이었기 때문에 경전에 수록된 몇 가지 개별적인 예를 제외한다면 말입니다. 전체적으로 교회 회원들은 점진적으로 거듭날 것입니다. 우리가 계명을 지킬 때 우리는 점차 거듭나고 빛과 지식을 더하며 의롭게 되려는 소망 또한 더하게 됩니다.”5 우리는 주님이 그분의 시간에 그분의 방법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이라는 점을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경전에 흔히 나오는 표현으로 말하면 “고요하고 세미한 음성”으로 오는 깨우침입니다. 흔히 우리는 최선의 판단에 따라 행동해야 할 책임이 있으며, 용인되는 선을 넘어 길을 벗어났다면 이를 제지하는 영의 느낌에 따라야 합니다. 계시는 실질적인 것입니다. 계시는 주님의 방법에 따라, 그리고 주님의 시간표에 따라 옵니다. 이러한 것이 참됨을 간증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우리를 진리로 인도하며, 모든 것을 가르치고,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는 주님의 영을 언제나 동반할 수 있는 권리인 성신의 은사가 있습니다.(요한복음 14:26; 16:13 참조) ◼ 2001년 6월 27일 신임 선교부 회장들에게 전한 말씀에서 발췌.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 십이사도 정원회 201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