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봄날 오후, 나는 어린 다섯 자녀 중 몇 명을 무용 학원과 미식축구 연습장에 데려다 주고 또 이미 거기에 가 있는 몇 명은 데리고 오려고 차에 준비물을 싣고 있었다. 미식축구 장비와 무용 준비물이 든 가방을 싣는데, 교외 지역에 있는 우리 집 근처 보도에 뒤뚱거리며 걸어가는 어미 오리와 새끼 오리들이 보였다. 내가 눈을 돌렸을 때, 어미 오리는 길을 건너기 시작했다. 안타깝게도 어미는 격자 철판이 깔린 배수구 위를 건너기로 한 모양이었다. 어미가 그곳을 건너자 새끼들도 뒤를 따랐다. 하지만 네 마리 새끼가 격자 철판 사이로 속절없이 미끄러져 떨어져 버렸다. 맞은 편에 당도한 어미는 새끼 몇 마리가 없어진 것을 알아챘고 희미하게 꽥꽥거리는 소리를 들었다. 자기 잘못은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고 어미 오리는 배수구를 다시 건너서 잃어버린 새끼를 찾으려 했다. 하지만 그러다 두 마리를 더 잃어버리고 말았다. 어미의 한심한 판단에 소스라치게 놀라고 화가 난 나는 하수구의 격자 철판을 들어올릴 수 있는지 보러 갔다. 있는 힘껏 그 철판을 들어 올렸지만 철판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나는 아이를 데리러 가야 하는 시간에 늦고 있었다. 나중에 좀 덜 급할 때 도와줘야겠다고 생각하며 얼른 차에 탔다. 나는 “저 어미는 엄마 자격이 없어.”라고 독선적인 말로 중얼거렸다. 그 후 1시간 반 정도를 보내면서 나는 부모로서 여러 번 했던 실수를 또다시 저질렀다. 내가 아이들과 하나님 아버지께 여러 번 용서를 빌었던 실수였다. 매번 더 잘하겠노라고, 다시는 이런 부족함을 보이지 않겠다고 다짐했었다. 다른 아이들을 놀리는 자녀 하나를 호되게 꾸짖을 때, 내 귀에 “저 어미는 엄마 자격이 없어.”라는 말이 크게 들려왔다. 갑자기 어미 오리를 향한 연민이 북받쳐 올랐다. 어미 오리는 나처럼 자신의 본능대로 세상을 헤쳐 나가려 했다. 하지만 때때로 그런 본능은 부족함이 있어서 우리 아이들이 고통을 겪기도 했다. 나는 격자 철판을 들어올려 새끼 오리들을 구조하겠다고 마음을 먹었다. 집으로 가는 모퉁이를 돌았을 때,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보였다. 이웃 사람이 격자 철판을 들어올려 배수로 터널로 들어가서 새끼 오리들을 조심스럽게, 안전히 구해내고 있었다. 겁에 질린 새끼 오리들은 어미를 찾아 갈팡질팡했고 어미는 근처 수풀 속에서 쏜살같이 달려왔다. 어미가 도움을 요청한 것은 아니었지만, 어미 오리의 보호만으로는 충분치 않았을 때 이웃 사람이 개입해 준 것이었다. 구주께서 내 자녀와 나를 위해 똑같이 해 주신 것이 생각나서 가슴이 뭉클해졌다. 가장 훌륭한 의도로, 가장 열심히 노력해도 때때로 우리의 역량이 부족할 때가 있다. 하지만 구주의 “은혜[는] [그분] 앞에 스스로 겸손하여진 모든 자에게는 족하[다.]”(이더서 12:27) 내 부족함이 자녀들을 망치지는 않을 것이며, 자녀들이 구주로부터 사랑과 화평, 이해, 자비를 받게 되리라는 것을 알게 되니 위안이 되었다. 그분은 나를 “어루만지[시며]”1 내 가족과 내가 성공하기를 바라신다. 스스로 겸손해지고 주님 곁에 나란히 선다면, 우리의 단점이 우리를 지배하게 되지는 않을 것이다. ◼ 글쓴이는 미국 유타에 산다. (로지 카프만 201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