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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주님은 나에게 소리치신 적이 없다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15.

나는 큰아들이 사탄의 덫에 빠져드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느꼈으며, 종종 화를 내어 걱정을 토로했다. 나는 아들을 변화시키려고 힘쓰기보다는 나 자신을 변화시켜야 했다.

 

우리 네 아이가 어렸을 때만 해도 남편과 나는 아이들에게 훌륭한 본을 보이고 큰 사랑으로 꾸준히 복음 안에서 키운다면 아이들은 틀림없이 옳은 길에서 벗어나지 않으리라고 여겼다.
어느 여름 날 우리는 그 생각을 포기해야만 했다. 열네 살 때 큰아이는 친구들과 수영을 하러 갔다. 내가 작은 아이들을 데리고 수영장에 들어섰을 때, 그 아이 손에 담배가 들려 있는 것을 본 것 같았다. 나는 걱정이 되어 나중에 그 일에 대해 이야기를 해 보았다. 아이는 내가 잘못 본 것이라고 딱 잘라 말했다. 불행히도, 아들의 거짓말은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들은 우리와 더욱더 거리를 두었다. 더 이상 아들을 상대하기는 어려웠으며, 아들은 이따금 이유 없이 화를 내기도 했다. 담배뿐 아니라 술과 마약, 천박한 말, 수많은 거짓말이 더해졌다. 식구들에 대한 아들의 행동은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처음에 우리는 아들을 보호하고자 행동거지를 제한하려고 애썼는데, 오히려 그것은 반항심만 더 키우게 되었다. 우리의 훈육은 전혀 효과가 없었다. 아들을 나무라며 달라져야 한다고 타이르다 보면, 대화는 목청을 높이는 논쟁으로 비화하기 일쑤였으며 아들과 나 사이의 골은 더 깊어졌다.
우리 부부는 큰아들에 대한 걱정으로 무척 힘들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인도를 구했지만, 큰아들이 그처럼 위험한 길을 택하는 모습을 보며 어떻게 할 도리가 없다고 느꼈다. 우리는 기도를 하는 동안, 엄격한 규칙으로 아들을 통제하려 하기보다는 더 많은 자유를 허용하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렇게 하는 것이 심한 역효과를 낳고 또 상식을 벗어나는 듯이 보였지만, 아들의 행위를 말리려고 한 이전의 시도 역시 모두 성공하지 못했던 것은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우리는 아들의 행동이 식구들에게 직접 영향을 줄 때만 벌을 주거나 제재를 가하기로 했다.
주님의 권고를 따르려고 노력했음에도, 상황은 악화되었다. 나는 나 자신에 대한 불신과 낙담을 떨치려고 무진 애를 썼다. 남편과 함께 꾸준히 가정의 밤과 가족 기도를 하려고 애썼지만, 우리가 부족했던 때와 아들에 대해 잘못 처신했던 때를 모두 떠올리자 죄책감이 엄습해 왔다. 나는 엉엉 울기도 하고, 잠을 이루지 못하기도 했으며, 또 어떨 때는 너무 탈진하여 제대로 몸을 가누기 힘들 때조차 있었다.
우리가 알았던 것과 같은 가정생활은 더는 존재하지 않았다. 가정의 밤은 어김없이 혼란과 논쟁으로 끝났다. 특히 나는 사랑하는 아이들에게 짜증을 냈으며, 그것을 큰 소리로 아이들에게 표출했다.
남편과 나는 우리 가정이 이런 상황으로 치달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다. 우리는 계속 주님과 선지자들의 권고를 따르기로 하고, 가정의 밤은 하고 싶은 아이들하고만 자발적이고 격식이 없게 하려고 힘을 기울였다. 그렇지만 나는 큰아들이 사탄의 덫에 빠졌다는 사실을 여전히 받아들일 수 없었다. 우리는 기도와 금식으로, 또 우리 곁에 더 이상 남아 있지 않은 듯 보였던 희망을 품고서 짐을 주님께 내려놓고 그분을 신뢰했다.
하지만 문제는 더 악화되었다. 특별히 힘들었던 어느 날, 나는 남편에게 신권 축복을 부탁했다. 나는 위안과 격려의 말을 듣기 바랐다. 하지만 주님은 참으로 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아셨다. 나는 아들과 그토록 소리 높여 논쟁한 것 때문에 꾸지람을 들었다. 주님은 나에게 한 번도 소리치신 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하셨다. 그런데도 나는 아이들에게 줄곧 소리를 질렀던 것이다.
나는 그 축복에서 아들을 나무라기보다는 그에 대한 내 걱정을 이야기해야 한다는 권고를 추가로 받았다. 나는 내가 화를 내고 비난한 일이 실제로는 아들에 대한 나의 두려움을 표현한 것에 지나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나는 끊임없이 아들을 공격하고 아들은 어떻게든 자신을 옹호하려 했던 것이다. 나는 내 행동을 바꿀 방법을 모색했다.
그 당시 나는 종교 교육원 교사로 봉사하고 있었다. 교회의 젊은이들과는 어머니로서 겪는 감정적인 문제로 골치를 썩지 않아도 되었기에 그들을 차분하고 사려 깊게 대하는 것이 어렵지 않았다.
나는 아들을 걱정스러운 어머니의 관점에서 보지 않고 제3자의 눈으로 보기로 했다. 많은 기도와 금식과 더불어 이 방법은 내 감정을 다스리고 이제 열여덟 살이 다 된 아들을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는 데 도움이 되었다. 나는 아들의 훌륭한 성품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나는 불안해하지 않고 아들에 대한 나의 감정과 염려를 진지하게 이야기할 수 있었다.
그 일은 우리 관계에서 전환점이 되었다. 나는 아들과 여러 가지 일을 상의했으며, 아들에게는 자신이 한 행동의 결과를 스스로 감당하라고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남편과 나는 아들이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도록 권고하고 방법을 조언해 주기만 했다.
서서히, 아들은 우리의 사랑과 지지를 받아들이기 시작했다. 힘겨운 5년을 보낸 후, 이제 아들과 우리의 관계는 무엇보다도 존중이란 단어로 특징지어진다. 아들의 생활은 아직도 여러 면에서 망가져 있지만, 질서를 잡아가고 있다. 아들은 인생에서 무엇이 참으로 중요하며, 또 무엇이 변함없는 만족을 가져다 주는지를 점차 알아 가고 있다.
주님의 권고대로 하자 우리 가족은 훨씬 더 행복한 생활을 되찾을 수 있었다. 우리 부부는 아들의 생활의 틀을 짜려고 애쓰는 대신에 우리 자신과 가정생활의 틀을 짜는 법을 배웠다.
나는 이제 자녀를 주님께 맡긴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를 안다. 주님은 나보다 더 잘 아신다. 나는 아이들이 내린 모든 결정에 대한 책임을 떠안지 않는 법을 배웠다. 아들에게 줄 수 있는 가장 큰 도움은 주님께 돌이키고 그분의 뜻과 권고를 신뢰하는 것임을 우리 부부는 알게 되었다. ◼

(익명 20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