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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인간의 이원성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10.

1949년 연차 대회에서 맥케이 회장은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했다.
“시실리 마을에 있는 성당에 벽화를 그리기 위해 고용된 한 위대한 화가에
대한 오래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림의 주제는 그리스도의 생애였습니다. 화
가는 몇 년 동안 열심히 작업을 해서 드디어 그림을 완성시켰지만 가장 중요한
두 인물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소년 그리스도와 가룟 유다였습니다.
그는 사방 팔방으로 그 두 인물의 모델을 찾아 다녔습니다.
“‘하루는 도시의 오래된 거리를 걷고 있다가 거리에서 놀고 있는 어린아이
들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 열두 살 된 소년이 있었는데 그의 얼굴이 화
가의 마음을 사로잡았습니다. 얼굴은 지저분했지만 그것은 그가 찾고 있던 천
사의 얼굴이었습니다
“‘화가는 그 소년을 집으로 데리고 갔으며, 그 어린이는 소년 그리스도의
얼굴을 완성할 때까지 인내심을 갖고 앉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화가는 유다의 모델을 찾지 못했습니다. 여러 해 동안 그는 자신
의 걸작이 미완성인 채 남게 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사로잡혀 계속 모델을
찾아 다녔습니다.
“‘어느 날 오후, 화가는 한 선술집에서 수척하고 남루한 사람이 비틀거리며
문지방을 넘어 들어오더니 바닥에 쓰러지면서 술 한 잔을 구걸하는 것을 보았
습니다. 화가는 그를 일으켜 세우고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을 때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모습은 사람이 지을 수 있는 온갖 죄의 흔적을 다 갖고 있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화가는 그에게“나를 따라 오시오. 내가 술과 음식과 옷을 주겠소.”라고 했습니다.
“‘드디어 유다의 모델을 찾은 것입니다. 화가는 여러 날 동안, 때로는 밤 늦
게까지 걸작을 완성하기 위해 작업에 몰두했습니다.
“‘작업을 계속하는 동안 모델에게 변화가 왔습니다. 술에 찌든 얼굴에 이상
한 긴장감이 감돌았으며 그의 충혈된 눈은 두려움에 떨면서 그려진 자신의 모
습을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림을 보고 동요하는 그를 본 화가가 그리
던 일을 멈추고 말했습니다. “이 보시오, 무슨 걱정이라도 있소? 내가 도와 주리다.”
“‘모델은 흐느끼면서 두 손으로 얼굴을 감쌌습니다. 시간이 한참 지난 후에
그는 애원하는 눈으로 늙은 화가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정말 저를 기억하지 못하십니까? 오래 전에 저는 소년 그리스도의 모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를 마치고 나서 맥케이 회장은 이렇게 말씀했다. “이야기는 사
실일 수도 있고 허구일 수도 있지만 그것은 우리 인생에서 참된 교훈을 가르쳐
줍니다. 인생을 낭비해 버린 그 사람은 어린 시절 잘못된 선택을 했으며, 탐닉
에 빠져 만족을 추구하는 가운데 아래로, 아래로 타락해 갔고 결국은 인생의
시궁창에 빠지고 말았던 것입니다.”

우리는 모두 두 개의 상반되는 본성,즉 육체적인 본성과 영적인 본성을 갖고 있다.
사람은 이원적인 존재이며, 그의 생명은 하나님의 계획 아래 있습니다. 그
것이 우리가 염두에 두어야 할 가장 기본적인 사실입니다. 사람은 영체와 육체
를 갖고 있습니다. 경전은 이 사실을 분명하게 말해 줍니다.
여러 하나님께서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의 영을(이는 곧 인간의
영이라) 취하사 그 안에 집어 넣으시고 생명의 숨을 코로 불어 넣으시니 인간
은 영의 결합체가 되더라
.”[아브라함서 5:7]
그러므로 사람의 몸은 그의 영이 거하는 성전입니다. 그러나 너무 많은 사
람들이 육체의 소유욕을 좇아 육체의 쾌락과 기호와 욕정과 정욕을 만족시키
는 방향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습니다. 사람은 불멸의 영, 즉“예지 곧 진리의
빛”[교성 93:29 참조]으로서 육체가 지음을 받기 전에도 개별적인 실체로 살고
있었다는 사실과, 이 영체가 그 모든 특징을 이루는 성품들과 함께 육신이 지
상 생활을 마친 뒤에도 계속된다는 것을 깨닫는 사람은 거의 없습니다. 구세주
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아버지에게서 나와 세상에 왔고 다시 세상을 떠나 아버지께로 가노
”(요한복음 16:28)
전세에 살았던 그리스도의 영이 살과 뼈로 된 육신을 입었듯이, 전세에 살
았던 모든 인간의 영이 이 세상에 태어난 것입니다. 여러분, 그것을 인생의 첫
째되는 기본 진리로 염두에 두겠습니까?
그렇다면 문제는 이렇습니다. 어느 것이 우리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가.
우리의 육체적 본성을 충족시키는 것인가, 아니면 영적인 자아를 향상시키는
것인가? 진정한 문제는 그것이 아니겠습니까?
육체적인 인간의 기호와 욕망에 빠지는 것은 순간적인 만족을 주지만 결국
불행과 비참함, 그리고 타락으로 우리를 인도할 것입니다. 그러나 영적인 성취
는“후회할 것이 없는 기쁨”을 줍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인에게 보내는 서한에서 그가 말한“육체의 일”과“성령의
열매”를 구체적으로 열거했습니다. 이 분류에 유의하십시오. 육체의 일들은 다
음과 같습니다.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우상 숭배와 주술과 원수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 짓는 것과 분
열함과 이단과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 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
할 것이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
성과“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
았느니라“만일 우리가 성령으로 살면 또한 성령으로 행할지니”(갈라디아서
5:19~25)세상에는 동물 같은 생활보다 높은 차원의 생활이 있으니, 즉 인간의 영혼
이 지닌 가장 신성한 속성인 사랑이 거하는 영적인 영역입니다. 거기에는 또한
동정과 친절과 다른 속성들도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자신을 발전시키며, 환경을 지배하고, 육체와 물질을 다스리며,
좀더 고상하고 아름다운 세계에서 살고자 하는 내재된 힘이 있습니다.
사람에게는 동물적인 생활 이상의 더 위대한 운명이 있습니다. 그것은 영과
교통하는 것입니다. 자신에게 간증이 있다는 것을 느낀 사람들은 모두 이원적
인 존재입니다. 그는 다른 모든 동물처럼 육체를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하늘에 계신 아버지로부터만 오는 무엇인가를 갖고 있으며, 하나님 아버
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우리 사이에 있는 매체인 성신을 통해 거룩
하신 부모로부터 오는 속삭임과 영향력을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이생은 우리가 두 가지 본성 가운데 어느 것을 따르고 발전시키는가를 알아내는 시험이다.
사람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자신의 노력과 뜻과 영혼을 육체적인 본성에
위안과 만족을 주는 것에 집중하느냐, 아니면 영적인 성품들을 얻는 것에 집중
하느냐 하는 것을 시험 받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고상한 충동, 모든 비이기적인 사랑, 정의를 위하여 고통 받는 모든
용감한 일, 자신보다 높은 곳에 있는 것에 순응하는 일, 이상적인 일에의 충성,
원리에의 비이기적인 헌신, 인간성에 대한 도움, 모든 자제의 행위, 영혼의 용
기, 주장이나 정책에 의하여 굴복하지 않고 선을 행하며 생활하는 것, 바로 이
모든 것이 영성인 것입니다.”
일반적으로 신성을 지닌 자는 더 나은 완전한 상태로 자신을 발전시키기 위
해 노력하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람 안에 내재된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영이라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세상에 오기 전에 영으로 살았으며, 이제는 내재
해 있는 영을 온전케 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사람은 살아가는 동안 언
젠가는 하나님과의 교통을 갈망한다는 것을 인식하게 됩니다. 그들의 영은 하
나님을 향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느낌은 보편적인 것이며, 모든 인간은 가장
심오한 진리를 위해, 영적인 평안과 자유에 대한 발전을 모색하는 것과 같은
위대한 사업을 위해 일해야 합니다.
우리가 물질적인 세상을 동물처럼 살든, 지구가 우리에게 제공하는 것을 우
리를 다시 하나님의 면전으로 인도하는 영적인 세상에서의 생활 방편으로 활
용하든, 선택은 우리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이것은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우리가 이기적인 것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부인하느냐 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가 기호와 욕정에 빠지느냐 아니면 절제와 자제력을 키우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우리가 부도덕한 것을 선택하느냐 아니면 순결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가 증오를 조장하느냐 아니면 사랑을 키우느냐 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가] 무자비한 사람이 되느냐 아니면 친절한 사람이 되느냐 하
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가] 냉소적인 사람이 되느냐 아니면 낙천적이고 희망적인 사람
이 되느냐 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가 배신하는 사람, 즉 우리를 사랑하는 사람과 국가와 하나님의
교회에 불충실한 사람이 되느냐 아니면 충성하는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가 속이는 사람이 되느냐 아니면 정직하고 말이 곧 보증 수표인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이며,
그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을 비방하느냐 아니면 입이 무거운 사람이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인간에게는 두 가지 속성이 있으니, 하나는 육욕적, 동물적인 속성이며, 다
른 하나는 하나님을 닮은 속성입니다. 인간이 이른바 동물의 세계에 만족한 채
식욕과 정욕에 쉽게 굴복하고 점차 방종하게 되느냐, 아니면 극기를 통해 지
적, 도덕적, 영적인 즐거움을 얻게 되느냐 하는 문제는 자기가 인생에서 매일,
아니 매시간 내리는 결정에 달려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나 어느 그룹에 속한 사람들이 인간의 존엄성에 있어 하등 동물
로서는 식별하기 어려운 영역에 이를 수 있는 지각 의식을 부여 받았음에도,
동물적인 본능에 만족하고, 도덕적인 계율에 따름으로써 오는 선함과 순결, 극
기와 신앙의 기쁨을 경험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이 얼마나 인간이 지닌
본성을 우롱하는 일입니까!“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
”(시편 8:5) 쓴 존재로 지음을 받은 사람이 자신을 동물 수준으로 비하시키
는 일에 만족한다면, 이 얼마나 비극적인 일입니까.
지구의 모든 장엄함과 경이로움은 창조의 목적이 아닙니다. 주님은“
인간
에게 불멸과 영생을 가져다주는 일[이] 나의 영광
”(모세서 1:39)이라고
하셨습니다. 신성한 선택의지를 행사하는 사람은 이 신성한 목적을 성취하는
일에 있어서 창조자를 도와야 할 의무를 느끼고 책임을 져야 합니다.
삶의 참된 목적은 단순히 존재하는 것이나 쾌락을 얻기 위한 것이 아니며,
명성을 얻는 것도, 부를 얻기 위한 것도 아닙니다. 인생의 참된 목적은 하나님
의 영감의 인도 하에 개인의 노력을 통해 완전한 인간이 되는 데 있습니다.
참된 삶은 우리 내부에 있는 최선의 것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선행과 친절, 순결과 사랑, 시와 음악, 꽃, 별, 하나님과 영원한 소망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식욕, 쾌락, 교만, 그리고 돈벌이만을 위한 것이라면, 그것은
인생의 진정한 기쁨을 자신에게서 빼앗아 버리는 것입니다.


영성은 극기와 하나님과의 교통을 요구한다.
우리의 참된 목표인 영성은 자신을 이겼다는 자각이며, 하나님과 교통하고
있다는 자각입니다.
영성은 어려움을 극복하게 해 주고 더욱더 강한 힘을 얻게 해줍니다. 자신
의 능력이 향상되고 진리가 영혼을 고양시켜 준다는 것을 깨닫는 것은 인생에
서 가장 고귀한 경험 중 하나입니다. 자신에게 진실하고 높은 이상에 충실할
때 영성은 향상됩니다. 모든 종교의 진정한 시험은 그 종교가 어떤 종류의 사
람을 양성해 내는가 하는 것입니다. “정직, 진실, 순결, 인자, 유덕, 그리고 만
인에게의 선행”(신앙개조 제13조 참조)은 영혼이 가장 높은 것을 얻게 해 주는
덕성들입니다. 그것은“사람에게 있는 신성과 지고함이요, 인간을 모든 창조
물 가운데 으뜸이 되게 하는 더없는 선물입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더 낫게 만들려는 생각을 품고 가족과 이웃의 행
복을 위해 기여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모든 일을 하고자 하는 사람은 이
러한 이상을 위해 자신을 부인하는 만큼 영성을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참으로
이렇게 행할 때에만 인간은 동물 세계의 수준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후기성도들이 가르치는 영성과 도덕은, 세상이 피하고자 해도 결코 피할 수
없는 기본적인 원리에 굳게 닻을 내리고 있습니다. 첫 번째 기본 원리는, 
성도들은 이미 알고 있는 개별적인 하나님의 존재를 믿는 믿음입니다. 성
도 자녀들은 그분을 인정하고, 육신의 아버지처럼 하나님도 듣고 느낄 수 있는
분이라는 지식을 갖고 그분에게 기도하도록 가르침을 받았으며, 어머니, 아버
지로부터 개체인 하나님께서 이 경륜의 시대에 말씀하셨다는 참된 간증을 받
아들였습니다.
저는 대화의 채널이 열려져 있으며, 주님은 그분의 백성들을 인도하실 준비
가 되어 있고 실제로 인도하고 계시다는 것을 간증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하듯
이 욕구나 허영을 채울 기회를 찾으려고 하는 유혹을 물리치는 것은 가치 있는
일이 아닙니까? 만약 그들이 그런 욕구를 채운다면, 일시적인 생각이나 욕정을
만족시켰다는 이유로 교회에서 파문당하는 것은 마땅한 일이 아닙니까? 대화
의 채널은 열려 있습니다. 하나는 영으로 인도하는 것으로서 창조의 영, 즉 성
신과 조화를 이루는 영의 간증입니다. 주님의 영은 교회 내에서든 혹은 교회
밖에서든 모든 영에게 생명을 줍니다. 그분으로 인해 우리는 살아 움직이고 존
재하지만 성신의 간증은 특별한 특권입니다. 그것은 마치 라디오를 틀어 놓고
세상 저편에 있는 음성을 듣는 것과 같습니다. 전파의 영역 밖에 있는 사람들
은 그 음성을 들을 수 없지만 여러분은 듣습니다. 여러분은 그 음성을 듣고 그
것의 인도를 받을 권리가 있으며 여러분이 해야 할 일을 할 경우, 그러한 도움
은 여러분에게 올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자신의 본능과 욕망과 욕정을 따
르거나, 교만한 마음으로 다른 생각을 하고 계획하고 음모를 꾸미면서 다른 사
람은 모를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만사는 어두워질 것입니다. 그럴 경우 여러분
은 만족과 욕정과 욕구는 충족했지만, 영을 거부한 것이므로 여러분의 영과 성
신의 영 사이의 대화는 단절될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과 대화할 수 있도록 영에 따라 생활하는 것보다 더 높고 더 축
복된 이상은 생각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우리 존재의 중심이 될 때, 우리는 삶의 새로운 목적, 즉 영적인 성
취를 깨닫게 됩니다. 물질적인 소유는 더 이상 인생에서 중요한 목표가 아닙니
다. 여느 동물과 마찬가지로 육신에 탐닉하고 육신을 살찌게 하고 기쁘게 하는
것은 더 이상 세상에 존재하는 최고의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그분
으로부터 무엇을 받을 수 있느냐가 아니라 우리가 그분께 무엇을 드릴 수 있느
냐는 관점에서 보아야 합니다.
오직 우리 내부의 삶에 완전히 충실할 때, 우리는 천한 본능적 유혹을 딛고
일어설 수 있습니다. 영과 육신의 관계는 하나님과 영의 관계와 같습니다. 영
이 육신을 떠날 때 그것은 죽은 것이며, 우리가 자신의 생활에서 하나님을 배
제할 때 영성은 위태로워집니다. 
우리는 지금부터 더 높고 고상한 성품을 지니고, 우리의 약점을 더욱 자
각하고, 다른 사람의 실수에 대해 더욱 관대하고 자비로운 사람이 되겠다고 결
심합시다. 가정에서 더욱 자제하고, 성냄과 감정과 말을 억제하여 그것들이 의
와 순결함 사이에서 방황하지 않게 하며, 생활에서 영적인 면을 더 향상시키도
록 하고, 이생에서 성공을 거두기 위해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을 의지해야 하는
지 깨닫도록 합시다.
하나님 아버지와, 부활하신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실재는 모든 인간의
영혼이 알아야 할 진리입니다.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듯이 하나님은 사람의 마
음에서 중심이 되며, 일단 우리가 그분이 우리의 아버지 되심을 알고 그분이
가까이 계심을 느끼고, 구세주의 신성을 알게 된다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진리들은 낮을 따라 밤이 오듯이, 그리고 밤을 따라 낮이 오듯이 자연스럽게
따라올 것입니다
.

(데이비드 오 맥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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