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이 예언자 요셉 스미스에게 나타나셨고, 그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회복되었다는 사실에 대한 불변의 간증을 갖고 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로마서 1:16] 입니다. 데이비드 오 맥케이는 이렇게 말씀했다.“ 어린 시절부터 예언자 요 셉 스미스의 시현이 사실이라고 믿는 일은 매우 쉬웠습니다.” 요셉 스미스에 대한 그의 간증은 스코틀랜드에서 선교 사업을 한 부친의 경험을 들었을 때 강 화되었다. “[부친이] 고국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회복되었음을 전파하고 간증을 했을 때, 그는 사람들이 그에게 등을 돌리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교회와 관련된] 어떤 것도 싫어했으며, 요셉 스미스라는 이름은 그들의 마음에 적대감 을 불러일으키는 것 같았습니다. 어느 날 부친은 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 최상의 방법은 회복에 대한 간증을 전하지 않고 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나 복음의 첫째되는 원리와 같은 단순한 원리들만 전하는 것이라고 결론 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한 달 가량 그는 우울하고 비판적인 기분으로 마음이 무겁게 되었으며 자신의 일에서 영을 느낄 수 없었습니다. 그는 마음이 무겁고 영이 침체되며 짓눌리고 구속되었다는 기분 외에 무엇이 문제인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 억누르는 느낌이 계속되자 그는 낙담하여 주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이 느낌을 떨쳐 버릴 수 없다면 저는 집으로 돌아가야 할 것입 니다. 이렇게 구속된 느낌으로는 일을 계속할 수 없습니다’ “그 후로도 그런 기분은 계속되었는데 밤을 꼬박 새운 어느 날, 그는 아침 일찍 해 뜨기 전에 세상에서 완전히 격리될 수 있는 바다 근처의 동굴로 가서 주님께 온 마음을 다해 왜 그런 느낌이 자신을 억누르는지, 자신이 무엇을 잘 못 했는지 또 그 느낌을 던져 버리고 자신의 임무를 계속하기 위해 무엇을 해 야 하는지 여쭈어 보기로 결심했습니다. 그는 어둠 속에서 동굴을 향해 걸어가 기 시작했습니다. 생각이 더 간절해지자 그는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마을을 벗 어날 무렵, 그는 무슨 일인지를 알고 싶어하는 한 경찰관을 만났습니다. 그는 애매하지만 만족할 만한 답변을 하고는 가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습니다. 마치 어떤 것이 그를 몰아세우고 있는 것 같았습니다. 그는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그는 은신처 같은 동굴로 들어가서‘오, 하나님 아버지, 이 느낌을 떨치기 위 해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무엇입니까? 이 느낌은 거두어져야 합니다. 그렇지 않 으면 이 사업을 그만둘 수밖에 없습니다.’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 후 그는 지 금 제가 말하고 있는 것과 같은 분명한 음성으로‘요셉 스미스가 하나님의 예 언자임을 간증하라.’고 하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제서야 그는 6주 전쯤에 자 신이 내린 결정을 떠올리고는 당황하게 되었으며, 자신이 특별한 임무를 띠고 그곳에 왔으나 그 임무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모든 것들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마음속으로‘주님, 그것으로 충분합니다.’라고 외 치고는 동굴에서 나왔습니다.” 맥케이는 이렇게 회상했다. “어린 소년으로서, 저는 여러분도 아시 다시피 세상에서 다른 어떤 사람보다도 제가 소중하게 생각하고 존경하는 사 람으로부터 간증을 들었으며, 그것은 제 어린 영혼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요셉 스미스의 첫 번째 시현은 하나님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영광스러운 진리를 나타내 준다. [19] 세기 후반에 있었던 놀라운 발견과 발명들은 너무나 광범위하고 의미 심장해서 우리를 압도합니다. 그러나 그것들 가운데 어느 것도 인간의 가장 큰 필요 사항과 가장 큰 소망에 대해 답해 주지 못했습니다. 인간의 마음에서 늘 갈망해 온 필요 사항은, 하나님을 아는 것이며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를 아 는 것입니다.19세기에 일어난 오직 하나의 사건만이 인간의 영혼에 이 문 제에 대한 해답을 줄 수 있다고 믿습니다. 만일 그 사건에서 인류가 알고자 했 던 진리를 찾게 된다면, 그것은 19세기에 있었던 가장 큰 사건으로서 참으로 특별한 찬사를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 그 사건은 두 하늘의 존재가 소년 예언자 요셉 스미스에게 나타난 것이었으 며, 영원하신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각각 개별적인 개 체임을 알려준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지 천팔백 년이 지난 후에 예언자 요셉 스미 스는 살아나신 주님이 그에게 나타나셨다고 선언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 습니다.]“글로 표현할 수 없는 찬란함과 영광을 지닌 두 분이 내 위 공중에 서 계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 중에 한 분이 나의 이름을 부르시면서 다른 한 분을 가리켜 말씀하시기를‘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고 하셨습니다.”[요셉 스미스서 2:17] 그가 선언한 것은 간단했지만 확신에 찬 것이었으므로, 사람들이 그 진리를 의심했을 때 그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에게 있어 이러한 주장은 단 순한 사실을 말한 것일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기독교 세계에서, 그것은 번쩍이 는 섬광이었으며 꼭대기에서 기초까지 종교적인 구조를 뒤흔들고 약화시키는 것이었습니다. 그의 첫 번째 메시지에 있는 두 가지 중요한 요소는 다음과 같은 것입니다. 첫째, 하나님은 개별적인 존재로서 인간에게 그분의 뜻을 알리실 수 있으며, 둘째, 그리스도교계의 어느 신조도 참된 구원의 계획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 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께서 요셉 스미스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이 이 교회의 기초 입니다. 거기에 이 교회의 힘과 생명의 비결이 있습니다. 이것은 사실이며, 나 는 이것을 간증합니다. 그 한 가지 계시가 하나님과 그분의 신성한 개체성에 관한 모든 과학적인 질문에 해답을 줍니다. 그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모르시겠 습니까?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 분명한 해답이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분과 그분 의 자녀와의 관계가 분명합니다. 인간에게 위임된 권능을 통하여 인간성에 관 한 그분의 관심이 명백히 나타납니다. 이 사업의 미래는 확실합니다. 그것들과 그 밖의 영광스러운 진리가 그 영광스러운 첫 번째 시현에 의해 명백해집니다. 세상은 여전히 그 중요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또한 인간과 하나님과의 관계 및 우주적인 입장에서 인간의 위치를 알려 주는 요소 가 되며, 개인 및 집단으로서의 적절한 인간 관계 및 국민으로서의 적절한 인 간 관계를 수립하는 수단이 되고, 나아가서는 장차 있을 영원한 세상에서뿐만 아니라 현세에서도 인간이 행복하고 화평하게 되는 방법을 가르쳐 주는 계시 가 되고도 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께서 요셉 스미스에게 나타 나신 이후 신권이 회복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가 완전히 조직되었다는 사 실은 19세기의 가장 위대한 사건일 뿐만 아니라 어느 때를 막론하고 시대를 초 월하는 위대한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주님은 예언자 요셉 스미스를 통해 복음 진리를 회복하셨다. 저는 요셉 스미스를 위대한 사람으로서만이 아니라 영감 받은 주님의 종으 로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참으로 요셉 스미스의 위대함에는 신성한 영감 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구세주이신 주님께서 친히 제자들과 함께 지상에 계실 때 주신 가르침과 이 가르침이 일치된다는 사실에 깊은 감동을 받지 않고는 회복된 예수 그리스도 의 복음을 비판적으로 그리고 학문적으로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 니다. 예를 들면, 창조주, 예수께서 가르치신 바와 같이“하늘에 계신 우리 아 버지”[마태복음 6:9참조]인 예지적인 존재로서의 하나님에 관한 예언자의 계 시에 대해 생각해 보십시오. 예수 그리스도가 아버지의 독생자요, 세상의 구세주라는 요셉 스미스의 가 르침은 예수님 자신과 그분의 사도들의 가르침과 일치합니다. 또한 죽음 이후의 인간의 지속성에 관한 교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한 일치는 신앙, 회개, 침례, 성신의 은사를 위한 안수, 신권의 성임, 지 식, 인내, 경건, 형제애, 사랑 등과 같은 다른 복음 원리의 가르침에서도 발견 됩니다.[베드로후서 1:5~7; 교성 4:6 참조] 유아 침례의 주창자들은 어린아이들에 관해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세 상에 태어나는 유아는 지식, 의로움, 거룩함이 전혀 없을 뿐만 아니라 악에 대 한 성향과 오직 악을 갖고 있을 뿐이다.” 자신이 옳다는 확신을 갖고 있는 사람으로서 예언자 요셉은 과감하고 두 려움없이이렇게말했습니다.“ 어린이는 거룩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통 해 거룩하게 되었다.”[교성 74:7 참조]9 모든 인간을 위한 성약과 의식의 영원한 본질과 구원의 기회에 관한 [요셉 스미스의] 영광스러운 발표에 하나님의 영감이 나타나 있습니다. 교회는 사 람들을 제외시키는 것이 아니라 그 원리를 받아들이는 모든 영혼을 수용합니 다.모든 인류는 복음의 법과 의식에 따름으로써 구원 받을 수 있습니다. 율 법 없이 죽은 사람들은 율법 없이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러한 목적으로 죽 은 자를 위한 구원의 의식이 계시되었습니다. 결혼 성약의 영원함은 영광스러운 계시이며, 사랑의 황금 고리로 마음을 함 께 묶어 주고, 성신권의 권능으로 인봉되게 하여 그들의 결합이 영원하다는 확 신을 줍니다. 또한 다른 성약들도 영원한 진보와 더불어 영원을 통해 계속될 것입니다. 요셉 스미스는 이 모든 것을 그의 지혜와 지식 그리고 영향력으로 성취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주님은 이 시대에 구원의 계획을 계시하셨으며, 그것은 다름 아닌 그의 왕 국에 들어가기에 합당한 성품을 키움으로써 영의 세계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그 계획은 예언자 요셉 스미스에게 계시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며, 그것은 이상적이고 포괄적인 것입니다.
회복된 예수 그리스도 교회는 예언자 요셉에게 주어진 신성한 영감의 증거이다. 1820년경, 종교적인 동요가 요셉 스미스로 하여금 옳은 교회와 올바른 예 배 방법, 올바르게 사는 방법 등을 찾게 했습니다. 알고 싶어하는 소망이 어린 소년으로 하여금 진지한 기도로 주님을 찾게 한 것입니다. 이 기도의 응답으로 인한 한 가지 결과는 1830년 4월 6일에 피터 휘트머의 집에서 교회가 조직 된 것이었습니다. 그 조직에서 인간의 구원을 위한 전체적인 계획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저는 그 조직을 그가 영감 받았다는 것을 말해 주는 하나의 증거로 생각합 니다.그것은 재정적인 어려움과 사회적인 격변, 종교적인 혼란을 견디어 냈으며, 오늘날 인류가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을 공급하는 수단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교회는 신약전서에 기록되어 있는 교회의 체제에 따라 조직되었다.”[History of the Church, 1:79 참조]라고 요셉 스미스는 말했습니 다. 이 조직에서 행해지는 실용적이고 유익한 일들은 이 조직의 신빙성을 증거 해 주고 있습니다.
요셉 스미스가 받은 성스러운 인도의 결과는 그가 가르치고 두려움 없이 선포한 것이 옳다는 확신이었습니다. 오래 전, 14세에서 15세 사이의 평범한 소년인 요셉 스미스는 그가 드린 기 도에 대한 응답으로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는 사실을 선포했습니다. 이러한 선포의 결과로 그에게 온 것은 종교계로부터의 즉각적인 추방이었습니 다. 그는 아주 짧은 시간에 자신이 홀로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당시의 학문과 철학을 잘 모르는 채 그는 홀로 있었습니다. 예술과 과학 분야에서 교육 받지 못하고, 그는 홀로 있었습니다. 그를 가르쳐 줄 철학자도 없었으며, 그를 인도할 성직자도 없이 그는 홀로 있었습니다. 그는 단순함과 친절함으로 서둘러 그의 영광스러운 메시지를 알 렸으나, 사람들은 멸시와 조롱으로 그에게서 등을 돌리며 그것은 모두 악마에 게서 온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오늘날에는 시현이나 계시 같은 것은 없고, 그 러한 것은 사도들과 함께 사라졌으며, 앞으로도 그러한 것은 결코 없을 것이라 고 했습니다.[요셉 스미스서 2:21 참조] 그처럼 그는 홀로 남겨졌으며, 이미 알려진 모든 배의 승선을 거절하고, 결 코 스스로 건조하거나, 건조되는 것을 본 적도 없는 배를 종교라는 사상의 대 양에 진수시켜야 했습니다. 만일 사기꾼이었다면, 그가 만든 배는 조잡하기 이 를 데 없는 것이었을 것입니다. 반면, 그가 건조한 배가 과거 수백 년간 학식 있는 교수와 철학자들이 세상 에 전해 준 것보다 탁월하고 우수한 것들을 갖고 있다면, 사람들은 적어도, 놀 라면서, 이 사람의 이 지혜가 어디서 났느냐고 말할 것입니다. 그렇다면, 비록 그가 홀로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시내 산에 있던 모 세처럼, 감란 산의 예수처럼 홀로 있었던 것입니다. 주님의 경우에도 그러했 고, 다른 예언자의 경우에도 그러했듯이, 그의 가르침은 사람이 만든 경로가 아닌 모든 예지의 근원인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온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다듬어지지 않은 돌입니다. 주님이 저를 데리고 가시기 전 까지는 망치와 정 소리가 그치지 않을 것입니다. 저는 오직 하늘의 학문과 지 혜를 소망합니다.”[History of the Church, 5:423] 하나님으로부터 계시를 받았다는 그의 주장이 입증될 경우, 지상에 예수 그 리스도 교회를 조직하고, 그 원리와 의식을 권위 있게 집행할 수 있는 권능에 대해 일절 의심 받지 않게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이 이 위대한 말일의 사업이 시 작될 때, 이 경륜의 시대에 그리스도 교회의 움직이지 않는 모퉁잇돌이 놓였으 니 그것은 즉 그의 교회에 관한 모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할 수 있는 권능이 주어졌다는 것입니다. 교회가 조직된 때로부터 순교를 당할 때까지의 14년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요셉 스미스가 이룬 놀라운 업적을 생각할 때, 회복된 복음이 예수님과 그분의 사도들에 의해 설립된 초대 교회와 완전하게 일치되는 것을 관찰할 때, 원리와 의식에 대한 그의 꿰뚫는 통찰력을 볼 때, 그리고 그리스도의 영감으로 설립된 이 교회가 그리스도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고, 이 교회가 갖고 있는 비교할 수 없는 계획과 능률을 볼 때, 이 사람의 지혜가 어디서 왔느냐 하는 질문에 대 한 대답은 다음과 같은 감동적인 시에 나타나 있습니다.
찬양해 여호와와 대화한 사람 예수 기름 부어 예언자 삼고 말일의 경륜을 시작케 하니 뭇 왕과 온 백성 경배하라 [찬송가, 18장 참조] 예언자 요셉은 그에게 계시된 진리를 수호하기 위해 살았으며 죽임을 당했다. 위대한 사람은 사물의 본질을 분명하게 볼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습니다. 그들은 진리를 분별하고 독자적으로 생각하며 고결하게 행동합니다. 그들은 강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어 그들을 따르게 합니다. 소인들은 그들을 조롱하 고 비웃고 핍박하고, 비평가들은 죽으면 잊혀지지만, 위인은 영원히 살아남습 니다. 요셉 스미스의 동시대 사람들 가운데 일부는 그를 조롱했으나, 다른 사람들 은 찬양했으며 그의 추종자들은 그를 존경했습니다. 판단에 있어 편견이 없는 사람이라면 누구든지 이 종교적인 지도자가 참으 로 많은 위대한 자질을 지니고 있으며, 하나님의 뜻을 알고자 하는 소망과, 그 것을 알게 되면 그것에 따르고자 결심하고 있었다는 사실에 감동 받지 않은 채 그의 생애를 연구할 수 없을 것입니다. 모든 시대를 통해 진리는 처음에 그것을 수호하기 위해 종종 목숨을 희생하 기도 했던 소수의 영웅적인 지도자에게 알려졌습니다. 인류가 발전할 수 있었 던 것은 이 용감한 지도자들의 진리에 대한 이해와 용기 덕분이었습니다. 그러 나 언젠가는 그들도 진리를 부인하거나 수정하거나 혹은 옹호해야 하는 선택, 즉 개인적인 안일과 특별한 대우 아니면 추방과 형벌과 심지어는 죽음을 선택 해야 했습니다. 그러한 선택은 베드로와 요한이 옥에 갇힌 자로서 대제사장 안 나스 앞에 섰을 때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들은 그들에게 사형을 선고할 수 있 는 바로 그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데 진정한 용기가 필요했습니 다.[사도행전 4장 참조] 사슬에 묶인 죄수인 바울이 아그립바 왕과 귀족들 앞에서 그리스도가 고난 을 받으신 것과 죽은 자들 가운데서 먼저 다시 살아나사, 백성과 이방인들에게 빛을 전하시리라는 것을 증거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사도행전 26 장 참조] 요셉 스미스가 불신에 가득 차고 냉혹한 세상을 향해 하나님과 그분의 사랑 하는 아들이 시현으로 그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을 간증하는 데에도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세상을 움직인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양심에 따라 진리를 수호했던 사람들 로서, 베드로, 야고보, 바울, 그리고 그들의 형제들이었던 고대의 사도들과 같 은 사람들이었습니다. 뉴욕 주 팔마이라의 종교 지도자들이 어린 요셉 스미스 가 성스러운 숲에서 보고 들은 것 때문에 그를 배척했을 때, 그는 가슴속에 주 예수에 대한 간증을 갖고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나는 분명히 시현을 보았 습니다. 나는 그 사실을 알고 있으며 하나님도 알고 계심을 내가 알고 있기 때 문에 나는 이 사실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요셉 스미스서2:25] 요셉 스미스는 마지막까지 자신의 간증에 진실했습니다. 자신이 가르친 것과 그것을 두려움 없이 선포한 것이 옳았다는 확신은 요셉 스미스가 받은 신성한 인도로부터 나온 것이었습니다. 요셉 스미스는 교리를 가 르칠 때, 당당하게 가르쳤습니다. 그의 가르침이 혹 세상의 사상과 일치하지 않 는 것은 아닐까, 정통 교회의 가르침과 일치하는가 아니면 정반대되는 것일까 하고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것들을, 세상이 동의하든 동 의하지 않든, 교회의 믿음이나 널리 보급되어 있는 사람들의 표준과 일치하든 일치하지 않든, 그에 상관없이 세상에 그대로 전했습니다. 오늘날, 백 년 이상 의 역사를 통해 살펴볼 때, 우리에게는 그의 가르침이 갖고 있는 가치를 판단하 고, 그의 가르침의 근원에 대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가 온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으로부터 인도와 가르침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일단 받고 나서 는, 아무도 깨뜨릴 수 없는 결의로 그것을 옹호했습니다. 악담, 조롱, 폭도의 습격, 체포, 투옥, 순교로 이어진 박해에도 불구하고, 요 셉 스미스는 이전의 베드로와 바울처럼, 최선을 다해 그를“신성한 성품에 참 여하는 자”가 되게 한 빛을 따르려고 노력했습니다. [베드로후서 1:4 참조] 이 나라에서 가장 고귀한 피가 무죄한 가운데 흘려졌습니다. [예언자 요셉 은] 자신이 무죄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옳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마찬가지로 그와 함께 있던 그의 형 하이람, 존 테일러와 윌라드 리차즈도 그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악하고 가증한 거짓말 때문에 예 언자 요셉과 그의 형 하이람은 순교했습니다. 그 모든 상황 가운데서 예언자의 태도는 어떠했습니까? 고요한 그리스도 와 같은 태도였습니다. 카테지 감옥으로 가던 날 저녁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도살장에 끌려가는 어린 양과 같이 가노라. 그러나 내 마음은 여름 아 침처럼 고요하도다. 나의 양심은 하나님께 대하든지 모든 사람에게 대하든지 털끝만치도 부끄러운 일이 없도다. 나는 죄 없이 죽임을 당하려니와 세상 사람 들은 저는 잔인한 자의 손으로 죽임을 당했다 말하리라.”[교성 135:4 참조]20 예언자의 삶과 축복사인 그의 형 하이람 및 첫 번째 시현의 참됨을 받아들 인 다른 수천 명의 사람들의 삶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하신 구원의 계획이 가장 확실하게 예수 그리스도 같은 성품으로 이끌어 준다는 것을 증거합니다. 예언자와 그의 형 하이람에게 주어진 계시는 너무나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 에 그들은 서슴없이 자신의 간증을 피로 인봉했습니다.
(데이비드 오 맥케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