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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나는 살아 있는 어떤 사람에게도 나쁜 감정을 품고 있지 않다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1. 7.

히버 제이 그랜트 회장의 딸 루시 그랜트 캐논은 다음과 같이 기록했
다. “
제가 보기에 아버지의 성품 중 하나는 그리스도와 같이 뺨을 때리는 사
람에게 다른 뺨도 돌려 대고, 그를 핍박하는 자들에게 선을 행하는 것이었
습니다. 많은 경우에 아버지는 이전에 노골적으로 그를 비난하거나, 거짓으
로 비난하고, 아버지의 표준에 따라 생활하지 않는 사람일지라도 어려움에
처하면 도와 주셨습니다. 아버지는 교회를 소홀히 하고 조상의 신앙을 저버
린 사람들에게도 너그럽고 관대했습니다. 아버지는 결코 악의를 품고 있는
것 같지 않았습니다. 아버지는 자신의 죄에 대해서는 냉정했지만 죄인들에
대해서는 더없이 자비로웠습니다.”

히버 제이 그랜트는 이러한 성품을 경전과, 영감 받은 교사와 자신의 경
험으로부터“나는 살아 있는 어떤 사람에게도 나쁜 감정을 품고 있지 않다
라고 말할 수 있을 때까지 서서히 발전시켜 나갔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용서의 복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사람을 개종시키는 복음일 뿐만 아니라, 용서의
복음이기도 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기억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축복하
여 주시기를 바랍니다. 죄가 주홍 같을지라도 회개를 한다면 눈처럼 희게 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이사야 1:18 참조] 저는 다음과 같은 말씀이
적혀 있는 훌륭한 계시를 기쁘게 생각합니다.
나 주는 내가 용서할 자를 용서하거니와 너희에게는 모든 사람을 용서
할 것을 요구하노라
.”[교성 64:10]3
저는 후기성도들에게 여러 번 권고해 드렸습니다만 중요한 사항의 하나
는 우리 자신을 비판하더라도 절대로 다른 사람을 비판하지 말라는 것이었
습니다. 우리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비난거리를 찾지만 우리 자신을 비판
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친절하고, 사려 깊고, 자비롭고, 오래 참고, 용서하는 것보다 우리에게
하나님의 영을 더 가져다주는 것은 없습니다. 우리에게 잘못을 범한 이웃의
죄를 기꺼이 용서하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은 없으며, 주변
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마음을 굳게 하고 비통한 마음을 갖고 복수하려는
마음을 갖는 것보다 더 큰 벌을 가져다주는 것도 없습니다.
교리와 성약 64편 8~13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말씀을 읽을 수 있
습니다.
“옛날에 있던 나의 제자들이 서로 대적하여 기회를 노리며 마음으로 서
로 용서하지 아니하더니, 이 악으로 말미암아 저들이 괴로움을 당하고 심한
징계를 받았느니라.
“그런고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는 서로 용서해야 하느니라. 이
는 자기 형제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 앞에서 정죄 받음이니,
큰 죄가 저에게 있음이라.
“나 주는 내가 용서할 자를 용서하거니와 너희에게는 모든 사람을 용서
할 것을 요구하노라.
“너희는 마음속으로 이같이 말해야 하나니, 나와 그대 사이를 하나님께
서 심판하사 그대 행위에 따라 그대에게 갚으시게 하자 하라.
“자기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며 고백하지 아니하는 자를 교회 앞에 데리
고 와서 계명으로나 계시로써 경전이 너희에게 가르치는 대로 저를 다스릴
지니라.
“너희는 이를 행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너희가 용서하지 아니하
거나 측은히 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다만 율법에 비추어 보
아 정당하게 처리하며 너희에게 율법을 주신 이를 노엽게 하지 않도록 처리
할지니라.
121편 45, 46절에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구절을 읽을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나 신앙의 권속에게 향한 너희 사랑을 가슴에 가득하게 하
라. 쉬지 말고 덕으로써 네 생각을 장식하라. 그리하면 주의 면전에서 네 신
임이 두터워지리니, 신권의 교리는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처럼 네 영육을 적
시리라.
“성신은 변치 않는 네 동반자가 되며 네 홀은 의와 진리의 불변하는 홀
이 되며 네 다스림은 영원한 다스림이 되어 강제당하지 아니하고 영원토록
네게로 흘러 들어가리라.”
저는 교리와 성약에 있는 이 훌륭한 말씀을 매우 존중하고 중요하게 여
깁니다.


기쁨과 평안의 영은 용서할 때에 온다.
오래 전에 잘 알려진 한 사람이 교회에서 파문을 당했습니다. 몇 해가 지
나고 나서 그는 다시 침례 받기를 원했습니다. 존 테일러 회장님은 [편지
를 써서] 사도들에게 그 사람의 침례를 언급하고, 전원이 그 사람의 침례를
동의해야만 그 사람이 침례를 받을 수 있으며 한 사람이라도 반대하는 사람
이 있을 때에는 그가 교회에 들어올 수 없을 것이라고 했습니다. 제가 기억
하기로 의견을 물은 결과 찬성이 다섯, 반대가 일곱이었습니다. 한 일 년쯤
후에 다시 이 문제가 거론되었을 때 찬성이 여덟, 반대가 넷이었습니다. 나
중에 이 문제가 다시 논의되었을 때 찬성이 열, 반대가 두 사람이었습니다.
결국에는 저를 제외한 십이사도 평의회의 전원이 이 사람이 침례를 받는 일
에 동의했습니다. 당시 저는 정원회에서 두 번째로 신참이었습니다. 나중에
저는 회장님 사무실에 있게 되었는데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랜트 형제님, 십이사도의 열한 분이 아무개 형제(그 사람의 이름을 대
면서)가 침례를 받는 것에 동의했는데 장로님 혼자서만 반대를 하고 계시는
군요. 장로님이 저 세상으로 갔을 때 침례를 받고 싶어했던 이 사람이 회개
하고 일부 보상을 받은 사람들과 더불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사
실을 알게 되면 어떤 기분이 들겠습니까?”
저는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테일러 회장님, 제가 그러한 질문을 받
는다면 저는 정직한 마음으로 주님을 바라보면서 교회의 유익을 위한 길이
라고 생각되는 일을 했다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저는 주님께 그 사람이 교
회를 욕되게 하였으며 그러한 사람은 어느 누구도 교회로 돌아오게 할 생각
이 없다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알겠습니다. 그러한 확신이 있다면 그에 따라 생활하십시오.”라고 테일
러 회장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다시 말씀드렸습니다. “테일러 회장님, 편지에서 회장님은 각
사도들에게 마음의 확신에 따라 투표하라고 하셨습니다. 회장님께서 제 마
음의 확신을 포기하기 원하신다면 기꺼이 그렇게 하겠습니다. 이 사람이 교
회로 돌아오는 것을 기꺼이 찬성하겠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제 판단에 맡겨
진다면 살아 있는 동안 저는 결코 동의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 사람은 몇 년
전에 사도들 앞에 불려 왔으며, 그 때 그는 일어서서 거짓말을 하고 자신은
결백하다고 주장했습니다. 주님은 그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증거를 주셨
지만 그것을 갖고 그를 벌할 수는 없었습니다. 저는 그 날 밤 무릎을 꿇고
주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성 관계를 갖도록 유혹했던 그 여자의 증언 이
외에는 우리에게 증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이 사람이 거짓말을 하고 있었으
므로 저는 그 사람의 잘못을 밝혀 낼 힘을 달라고 간구했습니다. 언젠가 추
가로 증언이 있도록 해 달라는 간구를 드렸으며, 그 일이 이루어져 우리는
결국 그를 파문시켰습니다. 사람이 사도들에게 거짓말을 할 수 있고, 죄를
회개했다고 주장하면서 죄를 그대로 지니고 있다면, 이 교회는 그 사람을 다
시 돌아오게 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충분히 수치를 당했다고 생각합니다.”
테일러 회장님은 반복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살아 있는 동안
그 의견을 고수한다면 침례에 찬성하지 마십시오. 그 확신에 따라 생활하
십시오.”
저는 회장님의 사무실을 나와 집으로 갔습니다. … 저는 교리와 성약
을 체계적으로 서너 번째 읽고 있었는데 읽는 곳에다 서표를 끼워 두었었습
니다. 그런데 저는 책을 집어 들고는 서표가 있는 곳이 아니라 다른 곳을 펴
서 다음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나 주는 내가 용서할 자를 용서하거니와 너희에게는 모든 사람을 용서
할 것을 요구하노라. 자기 형제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 앞에
서 정죄 받음이니
,”[교성 64:9~10 참조]
저는 책을 덮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악마가 와서 침례를 받겠다고 하면
서 회개했다고 주장한다면 나는 그에게라도 침례를 줄 것이다.”저는 점심
을 먹고 존 테일러 회장님 사무실로 가서 이렇게 말씀드렸습니다. “테일
러 회장님, 제 마음이 바뀌었습니다. 한 시간 전에 저는 살아 있는 동안
절대로 아무개 형제가 침례 받는 것에 동의하지 않겠다고 말씀드렸는데 그
가 침례를 받을 수 있다는 말씀을 드리러 왔습니다.”
테일러 회장님에게는 한 가지 습관이 있었는데 특별히 기쁜 일이 있을
때면 자리에서 일어나서 온몸을 흔들며 웃었습니다. 그분이 웃으면서 말씀
하셨습니다. “형제님, 변화가 대단히 급하게, 대단히 급하게 왔군요. 한 가
지 질문을 하고 싶군요. 한 시간 전에 이곳을 나갈 때 느낌이 어땠습니까?
그 사람의 미간을 한 대 쳐서 넘어뜨리고 싶지 않았습니까?”
“예, 바로 그랬습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지금은 어떻습니까?”하고 그 분이 물었습니다.
“회장님, 사실을 말씀드리자면, 주님께서 죄인을 용서해 주시기를 바랍
니다.”
그 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전과 비교하면 행복하지 않습니까? 전
에는 그의 죄와 그가 교회에 수치를 안겨 주었다는 것 때문에, 장로님 마음
에 그 사람에 대한 분노의 영과 증오의 영이 있었습니다. 이제는 용서의 영
을 갖고 있으며 참으로 행복한 것을 느끼지 않습니까?”
“네, 그렇습니다. 전에는 비열과 증오의 감정을 갖고 있었는데 지금은 행
복을 느낍니다.”하고 제가 말씀드렸습니다.
“내가 왜 편지를 썼는지 알겠습니까?”하고 그 분이 물었습니다.
“모르겠습니다.”
내가 그 편지를 쓴 이유는 장로님이나 비교적 젊은 다른 사도들에게, 회
개를 하는 경우에는 용서가 정의보다 우선한다는 것과, 마음에 용서의 영을
지니고 마음에서 미움과 증오의 영을 버리는 것이 평화와 기쁨을 가져오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은 그에 따라 생활하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사람들의
마음에 기쁨과 평화와 행복을 가져다준다는 것을 알리기 위함이었습니다
.”
제가 모든 가르침을 다 기억할 수는 없지만 그분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
씀하셨습니다. 그 분은 제게 그러한 경험을 줄 수 없을 뿐 아니라 복음에 대
한 간증도 줄 수 없다는 것, 제가 스스로 그러한 간증을 얻어야 한다는 것,
어떤 훌륭한 것이 제게 오기 전에 제가 올바른 영을 지니고 그 영, 즉 용서
의 영과 오래 참음과 사랑의 영을 느껴야 한다는 것, 그리고 단순히 저의 뜻
을 굽혀 그 분의 뜻에 따르고 이 사람에게 침례를 주는 것에 동의해서는 용
서할 때 그리고 우리의 마음이 잘못을 저지른 사람들에 대한 사랑과 오래
참음으로 충만할 때, 기쁨과 평안의 영이 온다는 교훈을 결코 배울 수 없다
는 것을 그 분은 말씀하셨습니다. 그 날 이후로 오늘에 이르기까지 저는 그
가르침들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주님의 예언자 [테일러 회장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장로님, 의롭게 의무를 수행할 때 장로님의 마음은 회개한 죄인에 대해
서도 사랑과 용서로 가득 찰 것이며, 의롭게 의무를 수행하지 않을 때에는
정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을 믿으며 공평하고 옳다고 생각하는 일이 이루어진
다 해도, 장로님은 종종 기쁘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됩
니다. 장로님은 자신이 행복하고 만족스럽다는 것과 이웃을 사랑한다는 것
과 그들의 복지에 관심이 많다는 것을 스스로 알 때 주님의 영과 사탄의 영
의 차이를 알 수 있을 것이며, 다른 사람들을 때려 눕히고 싶은 증오로 가
득 차 있을 때에는 영을 지닐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용서는 순수한 사랑의 표현이다.
저는 성경에 있는 가장 아름다운 장 가운데 하나를 기억합니다.(고린도전
서 13장)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
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
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시기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하지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
며 악한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사랑은 언제까지나 떨어지지 아니하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우리는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
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
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우리가 지금은 거울로 보는 것 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지금은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
신 것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많은 사람들이 사랑이란 다른 사람에게 돈을 주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진정하고 순수한 사랑은 사랑과 동정심을 주는 것이며, 이 고린도전
서 13장에서 그 사도가 말한 사랑이란 그런 사랑을 말하는 것입니다.
젊은이로서, 젊은이라기보다는 차라리 거의 소년으로서 교회 회장으로
부터 그러한 가르침을 받고 난 후에 저는 한동안 이 장을 일주일에 한 번
정도 읽었으며 몇 달 동안은 한 달에 한 번은 읽었습니다. 저는 그것을 주
님의 사업에 필요한 것으로 생각했으며 제가 발전하는 데 필요한 것 가운데 하나로 생각했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난하기보다는
자신을 발전시키도록 노력해야 한다.
저는 일 년 전에 이 대회에서 훌륭한 노래 가사를 읽어 드린 것을 기억
합니다. 그 첫 절의 일부는 다음과 같습니다.
"누구든지 자신 알기를 배워라
지식을 얻기 위해 노력하라
자신의 결점을 고쳐라.
이웃을 비난하지 말라
"[Let Each Man Learn to Know Himself,
Hymns(1948), 91장]
저는 또한 [남의 허물 비난 말라]라는 제목의 찬송가에서 짧은 네 개
의 노랫말을 인용했습니다. 그 일부를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남의 허물 비난 말라
제 눈 속의 들보를
뺀 후에야 밝히 보고
앞을 바라보리라"
[영문 찬송가(1985), 235장]
이 가사를 인용할 때, 저는 오늘 그것을 다시 인용할 것이라는 생각은 조
금도 하지 않았습니다만 현재 사업과 정치적인 문제에 관해 일부 성도
들 사이에 나타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비난과 분노와 증오 때문에 제 혼
신의 힘을 다해 이 찬송가 마지막 절에 있는 구절을 강조하고자 합니다. 
"분쟁 일으키지 말고
불친절한 사람을
따뜻하게 맞아 주어
친구 되게 하여라"
[영문 찬송가(1985), 235장]
저는 이 훌륭한 찬송가의 마지막 절을 반복하고 싶습니다. 저는 이 찬송
가를 35년이나 40년쯤 전에 [십이사도 정원회의] 프란시스 엠 라이만이 처
음으로 제게 불러 주었을 때 배웠습니다. 저는 그 날 밤 그 가사를 적었고
다음날 그것을 배웠습니다. 저는 모든 성도가 이 훌륭한 가사의 가르침
을 매일의 생활에 적용하기를 바라며, 그렇게 할 경우 우리가 사랑과 자비,
평안과 행복의 영 안에서 발전할 것이라고 믿습니다. 테일러 회장님은 그
사람이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겠다는 결심을 바꾸었을 때 제 마음에 온
기쁨과 평화의 영이 성도들에게도 올 것이라고 제게 약속하셨습니다.

자신의 행위가 다른 사람보다
낫다고 판단될 때
하나님이 베푸신 친절 때문이니
다른 사람에게도 친절하라
모범은 사람에게
빛과 같으니
오늘 자신을 발전시키고
내일 친구를 발전시켜 주어라
[영문 찬송가(1948), 91장]
저는 모든 성도가 자비와 오래 참음과 형제애의 영을 향상시키기를 바랍니다.

(히버 제이 그랜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