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권유할 내용에 대해 누가 관심이 있고 누가 관심이 없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어떻게 다른 사람과 교회에 대한 대화를 시작할 수 있을까?
다섯 가지 습관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었다.
1. 모든 대화에서 몰몬들의 대화를 사용해라
이 제안을 해 준 건 내 친구인데, 매일 하는 대화에서 종교 단어와 “몰몬”들의 대화를 다음과 같이 사용하는 것이다.
“정말 피곤한데. 후기 성도 교회에서 후원하는 보이 스카우트에서 단장을 맡고 있거든. 어젯밤에 아이들을 데리고 야간 캠핑을 하고 왔어.”
“벨몬트에 있는 몰몬 교회에 다니는데, 어제 일요일에 한 친구가 말씀을 했지. 우리가 발표 자료에서 처음에 다뤄야 할 내용과 똑같은 개념을 얘기하더군.”
“내가 한국에서 몰몬으로서 선교 사업을 했는데 …….”
“내 딸이 BYU에 다니고 있는데 …….”
대화할 때 이런 단어를 사용하면 교회에 대해 사람들과 이야기할 수 있는 장을 마련하게 될 가능성이 커진다. 물론 많은 수의 사람이 그 대화의 장에 들어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괜찮다. 하지만 그 대화의 장에 들어오게 되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된다. “어, 몰몬이세요?”
그러면 이렇게 대답한다. “네, 아주 훌륭한 교회이죠. 그런데 왜 물으시죠?” 여기서 그들에게 관심이 없는 정보를 말해 주기보다는 “그런데 왜 물으시죠?”와 같이 질문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면 그들에게 관심이 있는 주제로 대화를 이끌 수 있다. 대부분 그들이 보이는 관심은 일시적이긴 하지만, 그래도 괜찮다. 그런데 때로는 더 큰 관심을 보이는 경우가 있다. 그러면 더 깊은 대화를 하며 권유할 기회가 생기게 된다.
사람들과 하는 대화를 확률적인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도 중요하다. 후기 성도 교회에 5퍼센트 정도 되는 사람이 잠재적으로 관심을 보일 수 있다고 할 경우, 내가 20명과 교회에 대한 대화를 나누면, 그중 한 명이 관심을 보일 것이다. 물론 그중 누가 관심을 보일지는 나도 사전에 알 수 없다. 그런데 100명과 그런 대화를 하면, 그중 다섯 명이 관심을 보일 것이다. 그렇기에 진실하고 열린 마음으로 복음에 대한 내용을 우리 대화에서 일상적으로 나누는 것이 중요하다.
2. 우리가 관심이 있는 것에 그들도 관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누군가 “몰몬 교회에 대해 이야기 좀 해 주세요.”라고 말한다면 우리는 주로 교리적 내용, 즉 영원한 가족, 현대의 선지자와 경전 등에 대해 답해 준다. 그러한 답은 일리가 있어 보인다. 왜냐하면 우리가 다른 곳이 아닌 이 교회에 속해 있는 것은 교리적인 이유 때문이다. 또한 개종자에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교리는 매우 중요해지는 부분이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교리 때문에 그들이 처음부터 관심을 보이는 것은 아니다.
1975년에 교회에서는 개종자들에게 가장 먼저 관심을 끈 것이 무엇인지 알아내기 위해 개종자들을 대상으로 광범위한 설문 조사를 했다.[1] 아래에 가장 많은 응답을 얻은 항목 순으로 그 결과가 나와 있다.
1. 알고 지내는 몰몬들의 삶에서 그들이 하나님과 매우 가까운 삶을 살아간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었고 자신도 그러한 느낌을 경험해 보고 싶었다.
2. 알고 지내는 몰몬들의 삶에서 보았던 행복과 평안의 느낌을 느끼고 싶었다.
3. 삶에서 더 나은 목적과 방향을 원한다. 그러한 것을 몰몬들에게서 볼 수 있었다.
개종자 중 단지 9퍼센트만이 교회에 관심을 갖게 된 주된 이유가 교리 때문이라고 답했다. 다만 침례를 받고 활동적으로 남은 사람들에게 교회에 계속 남는 데 주된 역할을 한 것은 교리적인 내용이었다. 하지만 일반적으로 그들이 처음에 찾고자 했던 것은 교리적인 내용이 아니었다.
이것이 뜻하는 바는 누군가 우리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물을 때 일반적으로 자신이 교회에 대해 좋아하는 점, 특히 우리가 아주 좋아하는 교리적 내용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나는 교리적 내용보다는 보통 역으로 질문하며 답한다. “훌륭한 교회이죠. 그런데 왜 물으시는 거죠?” 그들이 특별히 무언가를 염두에 두고 물은 것이 아니라면, 나는 보통 위에 열거된 세 가지 내용과 관련된 답을 해 준다. 그들이 무언가 특별한 것을 염두에 두고 질문한 것이라면 그에 맞춰 구체적으로 답을 해 준다.
3. 두 사안을 분리하여 접근하기
세 번째 습관은 내가 잘 알고 지내는 사람에게 권유할 때 사용하는 방법이다. 다음과 같이 말함으로써 교회에 대해 알아보라는 권유와 그들과의 관계를 분리하여 접근하는 방식이다. “스코트, 한 가지 질문을 할 텐데 말이야. 그런데 질문을 하기 전에 동의해야 할 게 있어. 내가 제안하는 것에 대해 자네가 흥미가 없더라도 우리 우정에 금이 가서는 안 된다는 걸 확실히 해두고 싶네.” 그렇게 말하면 그들 대부분은 알겠다고 한다. 그러면 나는 이렇게 제안한다. “자네도 알다시피 나는 후기 성도 교회 회원일세. 오랫동안 느낀 건데, 우리 교회에 관한 점 중 일부가 자네한테 흥미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해 왔네. 언젠가 흥미가 생긴다면, 그에 대해 좀 이야기할 수 있으면 정말 좋을 것 같아서 말이야.”
그런 방식으로 제안함으로써 그들도 “괜찮다.”고 말하며 거절하고 싶을 때 편한 마음으로 그렇게 할 수 있고, 그 결과로 관계에도 금이 가지 않게 된다. 사실 그들은 그러한 권유에 관심이 있든 없든 거의 언제나 자신에게 그렇게 신경을 써 주는 것에 대해 감사를 표할 것이다.
4. 그들이 궁금해하는 점을 발견하라
주류를 이루는 개신교와 천주교의 많은 교회 건물들이 대부분 텅텅 비어 가고 있다. 몇 년 전에 만난 스티븐 스펜서라는 사람을 통해 번영한 국가들에 점점 더 퍼지고 있는, 종교에 대한 무관심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복음에 대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네 번째 방법은 종교에 무관심한 것에 대해 진지하게 질문하는 것이다.
그와 나눈 첫 번째 대화에서 나는 몰몬들의 단어를 사용했는데 그는 확인 차 이렇게 물었다. “어, 그러면 몰몬이세요?”
나는 이렇게 답했다. “네, 몰몬입니다. 정말로 훌륭한 교회이죠. 그런데 왜 물으시죠?”
그는 이렇게 대답했다. “그냥요. 저는 30년 동안 교회에 가지 않았거든요.”
스티븐에게 우리 교회나 다른 교회에 나가야 한다고 설득하기보다, 나는 이렇게 물었다. “왜 그렇게 많은 사람이 교회에 나가기보다는 교회에서 빠져나오고 있는 걸까요? 조직화된 종교라면 신물이 나게 하는 어떤 큰 문제라도 있는 걸까요? 그건 어쩌면 그러한 문제에 교회들이 답을 주지 못해서가 아닐까요?”
스티븐은 시간을 내서 그것에 관한 설득력 있는 목록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나는 이렇게 답했다. “저도 그 질문들에 대해 같이 이야기를 나눌 수 있으면 좋겠네요. 왜냐하면 저도 그에 대해 많이 생각하고 있거든요. 그리고 혹시 후기 성도의 견해가 특정 질문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알려 드리고 싶고요.” 스티븐은 이에 동의했고 그다음 주 초에 만날 시간을 잡았다.
그다음 만남에서 나는 꽤 놀라고 말았다. 스티븐은 정말로 훌륭한 질문들을 만들어 왔다. 인생의 목적이 있다면 그 목적은 무엇인지, 하나님이 있다면 그분은 누구인지 등등 말이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제가 대학과 대학원에 다닐 때 다녔던 교회에서는 제 질문들에 답을 해 주지 못했죠. 그래서 교회 다니는 걸 그만두었습니다. 그리고 그 대신 철학이나 과학에서 답을 찾아왔었죠. 솔직히 말하면 교회와 마찬가지로 거기서도 그 답을 얻지는 못했습니다.”
우리는 스티븐이 작성한 목록의 상단부터 시작했다. 그의 첫 번째 질문과 관련해서 그것이 왜 그에게 중요하고, 왜 다른 곳에서 얻은 답에 만족하지 못했는지 이해하기 위해 대화를 나누었다. 그 후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몰몬경에서 찾아 같이 토론했다.
스티븐이 목록의 첫 번째 질문에 줄을 그었다. 내가 질문했다. “왜 줄을 그어 지우는 거죠?”
그가 답했다. “그에 대해 답을 얻었으니까요.”
그런 후 우리는 목록에 남아 있던 질문의 답을 얻기 위해 선교사와의 토론 일정을 잡았다. 지역 지도자가 스티븐과 침례 접견을 할 때쯤 그 네 토론에서 개념과 교리, 교훈 등을 다루며 목록의 모든 내용을 다룰 수 있었다. 그 목록의 모든 내용을 다루고 또한 스티븐의 질문에도 답을 해 줄 수 있어서 우리는 정말로 기뻤다.[2]
지금 누군가 나에게 우리 교회에 대해 묻는다면, 그가 알면 좋을 것 같은 것을 전하지 않는다.
대신 이렇게 질문한다. “그동안 궁금해 왔으나 답변을 얻지 못했던 종교에 관한 질문이 혹시 있으신가요?” 그러면 그런 질문을 갖고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들 대부분은 교회가 그런 답을 줄 수 있는 곳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실상은 많은 질문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조차 우리는 교회에 관심이 없는 사람으로 분류하고 있다.
5. 질문을 통해 우리에 대해 설명하라
한 친구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이해가 안 돼. 내가 만난 모든 몰몬은 좋고 명석한데 말이야. 그렇게 좋은 사람들이 그렇게 이상한 교회를 믿는다는 게 전혀 이해가 되지 않아!”
우리에 대한 이런 역설을 해결할 좋은 방법이라고 내가 내린 결론은, 바로 우리가 제시하는 답들과 다른 종교들의 답을 비교하는 것보다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묻는 말들을 다른 곳의 질문과 비교 검토하는 것이다.
친구에게 나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물론 천국에 가 본 적이 없어. 하지만 천국이 어떨지 상상할 때면 이 비유가 도움이 많이 되는데 그건 하나님께서 천국에 거대한 창고를 세우셨다는 비유이지. 그 창고의 선반들은 진리와 통찰력, 여러 답으로 가득 차 있지. 어쩌면 이런 의문이 들지도 몰라. 왜 그것들이 지상의 사람들에게 널리 전파되기보다는 그곳 창고의 선반에 놓여 있느냐고 말이지.”
그 의문에 대한 답은 교수로서 일하며 내가 발견한 것인데, 사람들은 우리가 가르칠 준비가 되었을 때 배우기보다는 그들이 배울 준비가 되었을 때 배운다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천국에 있는 재고 담당 서기에게 선반에서 23번 답을 꺼내 지상에 보내라고 명하셔도 하나님이 주신 그 답을 얻고자 계속 질문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누구도 그 답을 이해하지 못한다.
또 다른 예로, 내가 여러분에게 보잉 787기를 준다고 생각해 보라. 그 선물은 내가 그 비행기를 보관할 격납고를 같이 주지 않는다면 그리 유익하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 선물을 보관할 격납고를 같이 준다면 매우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이와 같이 우리가 질문할 때 그 답이 놓일 수 있는 공간이 실제로 우리 마음속에 생기게 된다.
그리스도 사후 3세기 초, 기독교 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답은 이미 다 주셨음을 선언했다는 사실을 내 친구에게 말해 주었다. 모든 답안을 다 받았다고 믿었기에 그들은 하나님께 질문할 필요가 없었다. 그리고 그러한 질문을 하지 않게 되자 하늘에서 주어지는 계시도 멈추게 되었다. 선지자도 필요 없게 되었다. 그 지도자들
은 실제로는 지상의 빛을 꺼버린 셈이 되었으며 인류를 암흑시대로 몰아간 것이다.
루터와 웨슬리, 칼뱅과 같은 개혁가들은 다시 질문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이 했던 질문은 대개 상대방에 치중한 질문, 즉 수 세기 전에 이미 주어진 답을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에 대한 설전이었다. 그들은 그 답을 해석한 자신의 방법대로 교회를 설립해서 서로 다른 교회들이 생기게 되었다. 그들은 인류를 위해 많은 선한 일을 하려고 노력했지만 초기 지도자들이 내렸던 결정을 다시 되짚어 보지는 않았다. 즉, 모든 답은 이미 인류에게 주어졌다는 믿음을 재고해 보지 않았다.
그 후 나는 친구에게 1820년 뉴욕 주 북부에서 열네 살 소년이었던 조셉 스미스가 간단한 질문, 즉 여러 교회 중 어느 교회에 속해야 할지에 대해 질문하기 위해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던 일화를 말해 주었다. 하나님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하늘에서 내려오셔서 조셉 스미스에게 답을 주셨다. 즉, 어느 교회에도 속하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그것은 그 교회들이 모두 잘못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두 분은 그곳을 떠나셨다. 그 평범한 소년은 간단한 질문을 드렸고 그에 대한 간단한 답을 얻었다. 그리고 두 분은 떠나셨다.
그 후 3년 동안 조셉은 하나님에게서 그 이상의 답변을 듣지 못했는데 그것은 그가 하나님께 기본적으로 묻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고 나서 조셉은 1823년, 열일곱 살일 때 다시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서 기도를 드렸다. 그 질문은 현대의 언어로 풀자면 다음과 같았다. “하나님, 그동안 하나님과 떨어져 지내 죄송합니다. 하지만 제가 스스로 결정을 내려야 할지 아니면 하나님이 결정을 내려 주실지는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당신께서 제가 했으면 하고 바라시는 것이 있으신가요?” 그러자 곧 천사 모로나이가 나타나 조셉의 질문에 답하며 하나님께서 무엇을 원하시는지, 그리고 이유는 왜 그런지에 대해 말해 주기 시작했다.
하지만 흥미롭게도 천국 창고의 서기는 성능 좋은 스피커 시스템으로 “드디어 지상에 대변자가 있게 되었다. 창고를 모두 비워 그 사람에게 여기 있는 모든 답을 주도록 하자!”라고 널리 공표하지는 않았다. 조셉 스미스는 그 후 20년 동안 자신이 이해하지 못하는 부분들에 대해 하나님께 반복적으로 여쭈었다. 하나님께서는 조금씩 그 질문들에 대한 답을 주셨다. 또한 이미 주어졌던 답들에 대해서도 명확히 설명해 주시고 추가로 더 많은 진리를 알려 주셨다. 모든 것을 꿰뚫어 보시는 하나님께서는 그 당시에 조셉에게 모든 답을 다 주겠다고 하지는 않으셨다. 하나님의 왕국과 관련된 여러 위대하고 중요한 것들은 추후에 주실 예정이셨다.
나는 그 친구에게 루터와 웨슬리 칼뱅 등이 한 일을 개혁이라고 하지만 조셉 스미스의 일화는 예수께서 세우셨던 초기 교회를 회복한 것이라고 말해 준다. 본질적으로 질문들을 지상에 회복시킨 것이다. 그 덕분에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한 답이 더는 필요 없다고 결정했던 18세기 전의 사람들보다도 우리는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게 되었다. 다른 교회와 후기 성도 교회의 가장 핵심적인 차이는 전통과 비전통이라는 데에 있지 않다. 그보다 그 차이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는 깊이와 넓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차이가 생기는 것은 우리가 묻는 질문의 질이 다르기 때문이다. 이상하겠지만, 일부 사람들이 몰몬들을 “특이하다고” 규정짓는 것은 우리가 실제로 그렇기 때문이다! 우리는 하나님이 인류에게 모든 답을 이미 주셨다고 믿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계속해서 묻는 것이다.
그러면 친구가 이렇게 말한다. “알았네. 하지만 열네 살 소년이 하나님과 천사들과 대화를 나누었다고 하는 게 좀 마음에 걸리지 않나? 내게는 정말로 믿기 힘든 이야기처럼 들려서 말이야. 있을 법한 이야기가 아닌 것처럼 말이지.”
나는 이렇게 답해 준다. “이렇게 생각해 보게나. 자네가 천국에 있으면서 인류에게 진리와 통찰력과 답을 주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고 상상해 보게. 그러면 이미 하늘에서 필요한 답은 다 주었다고 믿는 사람을 지상의 대변자로 세우겠나? 아니면 마음이 온통 질문으로 가득 차 있고 그 답을 열렬히 구하려는 이를 선호하겠나? 신학교에서 높은 학위를 받은 사람을 선호하겠나, 아니면 소년을 선호하겠나?”
그런 후 하나님께서 이전에 그분의 선지자로 불러 세우셨던 사람들에 대한 배경 정보를 요약해 준다. 선지자들에 관한 그런 정보가 많이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중에는 에녹, 모세, 사무엘, 사울, 다윗, 예레미야, 아모스 등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들에 대해 말로 잘 설명할 수 있도록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놓았다. 그 항목들에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포함된다. 그는 몇 살이었는가? 선지자가 되도록 하나님께 부름을 받았을 때 반응은 어떠했는가? 선지자가 부름받을 당시 인류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나 하나님에 대해 많은 것을 알고 있었는가? 혹시 직업 또는 학력에 대해 알려진 것이 있다면 그 직업이나 학력은 어떠했는가?
이렇게 해서 정리를 하면 일종의 공통점을 발견하게 된다. 부름받을 당시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어린 소년이었다. 모두 부름을 받는 것에 대해 매우 놀랐다. 그중 일부는 선택을 잘못하신 거라고 하나님을 설득하려고도 했다. 대부분은 목자였다. 그들은 하나님 또는 그분이 이전 선지자들에게 가르쳤던 내용에 대해 거의 알지 못했다. 그 후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강력한 설교자이자 지도자로 변화시키셨다.
그리고 이렇게 말해 준다. “그 공통점을 잘 보게나. 1820년대에 하나님과 천사들이 단순하고 배우지 못한 소년에게 나타나서 그를 세상의 선지자로 불렀다는 주장은 지난 18세기 동안의 종교 역사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주장일세.”
“하나님은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사람을 선택할 수도 있네. 그런데 왜 단순한 소년을 선택하셨을까?”
그러면 내 친구가 이렇게 답한다. “내가 추측하기에는 많은 질문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네.”
무엇 때문에 후기 성도 교회가 다른 곳과 그렇게 다른 것일까? 질문들이 지상에 회복되었기 때문이다. 교회로서, 그리고 개인으로서 우리는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해 수 세기 전에 하늘의 “창고”는 이미 텅 비어 답들이 없고 자물쇠로 채워져 있다고 알고 있는 사람들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다. 우리가 전하는 이 이야기는 단지 믿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실화이다.
우리가 질문할 때 하나님께서 답을 주시기 때문에 그렇게 질문하는 것은 선교 사업을 하는 좋은 방법이다. 사람들은 우리가 그들을 가르칠 준비가 되었을 때가 아닌, 그들이 배울 준비가 되어 있을 때 배우게 된다. 사람들이 종교에 대해 어떤 질문을 마음속에 품고 있는지를 알게 되면 자신이 생각했던 것보다 주위에 종교적인 사람들이 훨씬 더 많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그들은 질문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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