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역사 대대로 세상이 죄악으로 물들거나, 사회가 지나치게 세속화되거나, 이방인들과의 생활로 하나님께서 주신 도덕적 표준과 계명이 약화되면, 성약의 자녀들은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여 다시 시온을 세우도록 광야로 보내집니다.
구약 시대에 성약의 아버지인 아브라함은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갈대아, 곧 문자 그대로 바벨론에서 도피해야 했으며 현재 우리가 성지라고 부르는 가나안으로 와서 성별된 삶을 살았습니다.(아브라함서 2:3~4 참조) 그러나 몇 세대 지나지 않아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시온을 잃고 머나먼 이교도의 나라 애굽에서 속박을 당하게 되었습니다.(출애굽기 1:7~14 참조) 따라서 약속의 자녀들을 다시 광야로 이끌기 위해서는 모세라는 인물이 세워져야 했습니다.
여러 세기가 지나지 않아 우리의 특별한 관심을 불러일으키는 이야기가 펼쳐지는데, 이스라엘 민족 중에 리하이라는 선지자가 이끄는 한 가족이 예루살렘을 떠나라는 명을 받았습니다. 슬프게도 바벨론이 바로 문 앞에 다가왔기 때문이었습니다.(니파이후서 2:2 참조) 그들은 자신들이 전혀 새로운 대륙으로 가서 아주 새로운 개념의 시온을 세우게 될 것이라는 점을 거의 알지 못했습니다.(니파이전서 18:22~24 참조) 그런 탈출을 야렛 백성이라 불리는 그들의 조상들도 과거에 했었다는 것을 그들이 알 턱이 없었습니다.(이더서 6:5~13 참조)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경배하기 위해 살던 땅을 떠나온 일단의 사람들로부터 미국 개척이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복음의 회복을 기념하는 모든 사람에게 흥미로운 부분입니다. 미국에 정착한 청교도 중 하나였던 한 저명한 학자는 이 경험을 기독교인들의 “광야로의 부름받음”, 즉 구세계의 불경스러움에서 벗어나 새로운 땅에서 다시 한 번 천국의 방식을 구현하고자 한 현대 이스라엘인들의 노력이라 설명했습니다.1
이제 마지막 탈출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선지자들이 우리의종교적 조상들을 인도했던 우리 교회의 탈출입니다. 조셉 스미스가 뉴욕 주부터 시작하여 펜실베이니아, 오하이오, 미주리를 거치며 계속 쫓겨 다니다가 결국 일리노이에서 살해당했던 것과 더불어 우리는 이 후기에 이스라엘 자손이 은둔처를 찾아나서는 현상이 재현되는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미국판 모세로 추앙받는 브리검 영(1801~1877) 회장이 성도들을 이끌고 산악 지대에 있는 골짜기로 들어왔고, 그들은 지친 발걸음을 떼며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저 서편에 하나님 준비한
그 땅에 가리니
그 누구도 해하지 못하리
성도들 복된 곳2
우리가 있는 곳에 시온을 건설합시다
우리 경륜의 시대가 보이는 많은 고유한 특성 가운데 하나는 지상에 하나님의 왕국을 세우는 방식에 일어난 근본적인 변화입니다. 이 경륜의 시대는 빠르고 크게 변하는 시대입니다. 그리고 한 가지 바뀐 점은 하나님의 교회가 다시는 달아나지 않을 것이라는 점입니다. 다시는 우르를 떠나, 하란을 떠나, 가나안을 떠나, 예루살렘을 떠나, 영국을 떠나, 커틀랜드를 떠나, 나부를 떠나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갈 일은 결코 없을 것입니다.
브리검 영이 우리 모두에게 말했듯이 그런 일은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프라이팬 밖으로 쫓겨나 불 속으로 내던져졌고, 불 속에서 뛰쳐나와 바닥 한가운데로 떨어졌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곳에 있으며, 여기에서 계속 머물 것입니다.”3
물론 이 말은 세계 곳곳의 교회 회원들에게 해당되는 말이 되었습니다. 우리 경륜의 시대인 이 후기에 우리는 달아나지 않아도 될 만큼 성장했습니다. 우리는 모든 나라와 족속과 방언과 백성들 안에 영구히 자리 잡고 우리 가족과 토대를 굳건히 할 만큼 성장했습니다. 이제 교회가 있는 곳이면 어디에나 시온이 있습니다. 이런 변화를 겪으며 이제 우리는 시온을 우리가 살아 갈 장소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 갈 방식으로 여깁니다.
이런 새로운 개념을 정립하기 위해 세 가지 사건을 생각해 봅시다.
세 가지 사건과 세 가지 교훈
1. 몇 년 전에 귀환 선교사인 제 젊은 친구는 유타 주의 한 대학 농구팀의 선수였습니다. 그는 상당히 훌륭한 젊은이였고 아주 좋은 선수였지만, 자신이 바라던 만큼 경기를 잘하지는 못했습니다. 그가 가진 특별한 재능과 실력이 당시 그 팀에 꼭 필요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체육계에서는 그런 일이 종종 있습니다. 그래서 젊은 제 친구는 코치들과 팀원들의 전폭적인 지지와 성원을 받으며 자신이 좀 더 기여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한 다른 학교로 전학했습니다.
새 학교에서는 일이 잘 풀려 제 친구는 곧 선발 출전 선수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 팀의 경기 일정에 따라 이 젊은이는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예전 팀을 상대로 경기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 날 밤 관중석에서 아주 심한 야유가 이 청년에게 쏟아졌습니다. 신혼인 이 청년은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십일조를 내고, 장로 정원회에서 봉사하며, 청소년들에게 사랑이 깃든 봉사도 하는, 자신과 아내 사이에 곧 태어날 아기를 들뜬 마음으로 기다리는 청년으로서, 그가 어떤 운동을 하든, 어느 대학교에 다니든, 그러한 문제에 대해 어떤 결정을 내렸든 간에 그런 심한 모욕을 받아서는 안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원정팀의 감독은 농구계에서는 전설적인 인물로서, 그 굉장한 경기를 마치고 그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기 사람들 도대체 왜 그러는 거야? 자네는 여기 출신이고 잘 했었잖아. 다들 자네를 잘 알 텐데. 다 자네 친구들이잖아.” 하지만 그보다
최악의 말은 감독이 어리둥절해하며 이렇게 말한 것이었습니다. “이 사람들 대부분이 자네 교회에 다니잖아?”
2. 저는 한 스테이크에서 독신 성인을 위한 영적 모임에 연사로 초대되었습니다. 스테이크 센터 뒷문으로 들어가는데, 30대 정도가 되어 보이는 한 여성도 거의 동시에 들어왔습니다. 예배당으로 몰려드는 수많은 인파 속에서도 그 여성은 눈에 띄었습니다. 그녀는 문신도 하고 귀걸이와 코걸이를 요란하게 하고 형형색색으로 물들인 머리카락을 고슴도치처럼 세우고, 치마는 아주 짧고 웃옷도 정숙하지 못했습니다.
불현듯 몇 가지 궁금증이 생겼습니다. 이 여성은 비회원으로, 주님께 인도되어 복음을 통해 삶에 필요한 평안과 방향을 찾기 위해 이 영적인 모임에 찾아왔거나, 아니면 더 좋게 생각하면, 누군가가 데려온, 방황하는 영혼이 아닐까? 아니면 교회 회원으로서, 교회가 회원들에게 바라고 권장하는 표준에서 멀어졌지만 다행스럽게도 어떤 끈이 남아 있어서 그날 밤 교회 모임에 참석하기로 한 것은 아닐까?
3. 미주리 캔자스시티 성전 헌납에 참여하는 동안 저희 부부는 아이작 프리스톤 형제님 댁에 묵었습니다. 그분은 경찰관이었고 미주리 리버티 스테이크의 대제사였습니다. 대화를 나누던 중에 그는 어느 늦은 밤, 도시의 위험 지역에서 접수된 신고에 따라 조사를 해 보라는 연락을 받은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그는 음악 소리로 시끄럽고 대마초 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한 여성과 여러 남성이 상스러운 말을 내뱉으며 술을 마시는 광경을 보았습니다. 다른 방에서 침대도, 매트리스도, 베개도, 아무런 침구도 없이 더러운 바닥에서 서로 부둥켜안고 잠을 청하는 아이들, 두 살에서 여덟 살에 이르는 그 다섯 아이들을 그들은 까맣게 잊은 게 분명했습니다.
프리스톤 형제님은 조금이라도 먹을 것이 있나 찾아보려고 주방 찬장과 냉장고를 여기저기 들여다보았으나 아무것도 찾지 못했습니다. 그는 아이들보다 뒷마당에서 짖고 있던 개가 먹을 것이 더 많았다고 했습니다.
엄마의 침실에서 시트도 없는 매트리스를 하나 찾았는데, 그것이 그 집에 있는 유일한 매트리스였습니다. 그는 여기저기를 뒤져서 시트 몇 장을 찾아내 매트리스에 씌우고는 다섯 아이 모두를 임시변통으로 만든 그 형편없는 침대에 눕혔습니다. 그런 다음 눈물을 머금은 채 무릎을 꿇고 이 아이들을 보호해 주시도록 하나님 아버지께 기도드렸고, 아이들에게는 잘 자라는 인사를 해 주었습니다.
그가 일어나서 문 쪽으로 걸어가자 한 아이가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달려와서 손을 꽉 붙잡은 채 “아저씨, 제발 저를 입양해 주시겠어요?”라고 애원했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렸으나 프리스톤 형제님은 그 아이를 침대에 다시 눕혔고(남자들은 이미 다 달아난 상황이었습니다.) 약물에 취해 있는 아이들의 엄마를 찾아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일 다시 오겠습니다. 제가 다시 이 문으로 들어올 때까지 눈에 띄는 변화는 없더라도 하늘에서 돌봐 주실 것입니다. 이후로 더 많은 변화가 따를것입니다. 분명히 약속합니다.”4
이 세 사건에 어떤 공통점이 있습니까? 이 사건들은 실생활에서 일어난 사소하고 서로 매우 다른 바벨론에 관한 예입니다. 하나는 농구 경기에서 일어난 개탄스러운 어리석은 행동이었으며, 또 하나는 우리와 다르게 생활하는 사람들과 마주하게 될 때 겪게 되는 개인적이고 문화적인 차원의 어려움이며, 그리고 마지막 하나는 매우 크고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교훈 1: 여러분의 종교를 문간에 맡겨 두지 마십시오
먼저, 농구 사건을 마무리하겠습니다. 경기 다음 날, 그 사건에 대해 잘못했다는 의견과 함께 그에 대해 회개해야 한다는 의견이 회자되었습니다. 그에 대해 한 젊은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것 보세요. 우리는 주일학교가 아니라 농구 이야기를 하는 겁니다. 그런 열기를 견뎌 낼 수 없으면, 선수 생활을 하지 말아야지요. 우리는 돈을 내고 경기를 보러 가는 겁니다. 우리가 원하는 대로 행동할 수가 있어요. 종교는 문간에 맡겨 두고 와야죠.”
“우리는 종교를 문간에 맡겨 두고 옵니까?” 21세기에 시온을 세우기 위한 첫째 교훈은 이것입니다. 여러분은 결코 종교를 문간에 맡겨 두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제자 정신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제자 본분에 완전히 어긋납니다. 선지자 앨마가 가르쳤듯이 우리는 “어느 때에나 무슨 일에나, [우리가] 있게 될 어느 곳에서나 하나님의 증인이 되어[야]”(모사이야서 18:9) 합니다. 그저 어느 시간이나 몇몇 장소에서, 또는 우리 팀이 크게 이기고 있을 때에만 그래서는 안 됩니다.
어떤 상황이나 도발적 환경에서도, 또는 문제가 닥치더라도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는 자신의 종교를 문간에 맡겨 두지 않습니다.
교훈 2: 연민을 보이면서도 계명에 충실하십시오
이제 영적 모임에 참석했던 그 젊은 여성에 관해 이야기하겠습니다. 그 여성에게 어떻게 대하든, 영원한 규칙은 우리의 행동이 우리의 종교적 믿음과 복음에 대한 헌신을 나타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어떤 상황에 대응하는 방식은 상황을 악화시키기보다는 개선시켜야 합니다. 우리는 이 경우에 그녀가 범한 것보다 더 큰 반칙을 저지르는 방식으로 반응하거나 행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생각도 없이, 표준도 없이, 신성하게 규정된 “하라는 계명”과 “하지 말라는 계명”을 완전히 무시하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우리가 그런 표준에 따라 생활하고 그런계명을 의로운 방법으로, 그것도 최선을 다해 구주께서 생활하신 방식과 옹호하신 방식을 따라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주님께서는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진리를 가르치고, 죄인을 용서하고, 성전을 깨끗이 하시는 등 마땅히 해야 할 일을 언제나 하셨습니다.
따라서 새로 알게 된 그녀를 대할 때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그녀가 하나님의 딸이며 영원한 가치를 지녔다는 점부터 기억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녀가 누군가의 딸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시작해야 합니다. 그녀가 교회 모임을 피하지 않고 지금 이 순간 교회에 있다는 사실에 먼저 감사해야 합니다. 한 마디로 말해 우리는 이런 상황에서 그녀가 가장 좋은 상태가 되도록 도우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우리는 조용히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이 상황에서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요? 어떤 말을 하는 것이 옳을까요? 궁극적으로 어떻게 해야 이 상황과 그녀를 더 나아지게 할 수 있을까요? 이런 질문을 하고 구주께서 하셨을 만한 일을 하려고 실제로 노력하는 것이 주님께서 하신 “외모로 판단하지 말고 공의롭게 판단하라”(요한복음 7:24)는 말씀의 참된 의미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이 교회는 사회적 친선이나 정치적 편의나 그 외의 어떤 이유로도 절대 교리를 바꾸지 않습니다. 우리가 힘들어하거나 버림받았다고 느끼는 사람을 돕기 위해 발을 디딜 수 있는 곳은 계시된 진리라는 안전한 발판뿐입니다. 우리 기독교 정신의 기본적 특성과 요건인 동정심과 사랑이 계명을 손상시키는 것으로 해석되는 일이 결단코 있어서는 안 됩니다.
그런 상황을 마주했을 때, 아주 어렵고 혼란스러울 수 있습니다. 젊은이들이 이렇게 물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이러이러한 방식으로 생활하거나 행동해야 한다고 믿지 않으면서,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똑같이 하도록 하려 하나요? 그들에게도 선택의지가 있지 않나요? 우리가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며 판단하고는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 믿음을 강요하고, 특정한 방식으로 행동하라고 요구하는 것은 아닌가요?”
이런 상황에서 여러분은 왜 어떤 원리를 지켜야 하고 어떤 죄를 반대하는지를 어디서건 설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관련된 여러 쟁점과 법률이 단지 사회적이거나 정치적인 것만이 아니라 결과 면에서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노력하면서도 하나님의 마음을 상하지 않게 하려고 더 신경을 써야 합니다.
이렇게 질문하는 청소년이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난 이제 운전할 수 있어요. 그런데 신호등이 빨간색일 때 차를 세워야 하는 것은 알겠는데 우리가 정말로 판단을 내려서 빨간색 신호등일 때 다른 모든 사람도 차를 세우게 해야 할까요? 모든 사람이 우리처럼 행동해야 할까요? 다른 사람들에게도 선택의지가 있지 않나요? 그들이 반드시 우리처럼 행동해야만 하나요?” 여러분은 그들이 빨간색 신호등에서 모두 차를 세우기를 바라는 이유를 설명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범법하거나 우리와 다르게 생각하는 사람들을 비하하지 않으면서 그렇게 해야 합니다. 그들에게도 도덕적 선택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는 다양한 믿음이 있고, 모든 사람에게는 도덕적 선택의지가 있지만, 마치 하나님께서 이런 주제에 관해 침묵하시기라도 하는 것처럼, 또는 그런 것에 대해 대중의 합의가 있는 경우에만 계명이 중요하다는 듯이 행동할 자격을 받은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21세기에 사는 우리는 더는 도피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종교의 자유와 그에 따른 운영권을 허용하는 법률과 상황과 환경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바벨론에 거하되 바벨론에 속하지 않는 한 가지 방법입니다.
우리가 도피할 수는 없고 조심스럽게 길을 걸어갈 수밖에 없는 세상에서 하나님께서 선포하신 것들과 그분이 주신 율법에 따라 도덕적 입장을 취하되, 이해심과 큰 사랑을 지니고 온정 어린 마음으로 행하면서 우리 능력과 고결성을 몸소 보여주는 것보다 중요하고 위대한 것은 없습니다.
교훈 3: 복음의 가치를 활용하여 지역 사회와 나라에 공헌하십시오
우리 대다수가 경찰관이나 사회단체 요원이나 사법부 판사가 되는 것은 아니지만, 우리 모두는 다른 사람의 복리와 지역 사회의 도덕적 안전에 대해 관심을 기울여야 합니다. 십이사도 정원회의 쿠엔틴 엘 쿡 장로님은 가정이라는 울타리를 넘어 사회에 영향을 미쳐야 할 필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씀했습니다.
“우리는 가정을 보호하는 동시에 지역 사회를 보호하는
일에서 빛의 근원이 되어야 합니다. 구주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
갈수록 사악해져 가는 세상에서 종교 신념에 기초한 가치관에 대해 대중이 서로 이야기하는 일은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
종교적 신념은 빛과 지식과 지혜의 보고[로서] …… 놀라운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합니다.”5
우리가 복음의 축복을 지역 사회와 국가에 전해 주지 않는다면, 도덕적 행위를 법률로 집행할 수 있다고 할지라도 아이작 프리스톤 형제님처럼 그것을 시행할 경찰관은 많지 않으리라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습니다. 음식이나 옷도 없이 그 집에 있던 그 아이들도 하나님의 아들과 딸입니다. 나이가 더 많아 죄과도 더 크고 책임도 더 많이 져야 할 그 어머니 역시 하나님의 딸입니다. 그런 상황에서는 공식적인 절차, 때로는 법적 절차까지도 고려하는 엄격한 사랑이 필요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언제나 우리는 적시적소에서 최선의 도움을 주려 노력해야 합니다. 아무리 무책임하고 한심해 보이는 사람이라고 해도, 우리는 종교를 문간에 두고 그런 상황을 그냥 지나쳐 버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는 없지만 뭔가를 할 수는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하여 이 시대에 바벨론에서 달아나지 않고 바벨론을 공략해야 할 사람들은 바로 이스라엘 자녀들입니다. 이 사실을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우리 종교를 삶에 광범위하게 적용하고 한결같이 실천한다면, 가족을 돕고, 이웃을 축복하고, 또 자라나는 세대를 포함하여 다른 사람을 보호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기회를 찾게 될 것입니다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을 보이십시오
후기 성도는 떡에 넣은 누룩, 결코 맛을 잃지 않는 소금, 말 아래에 두지 않고 언덕 위에 세워진 등불이 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지금부터 우리 자신을 나타내 보이도록 합시다!
우리가 올바르게 행하고 올바르게 말하며 관대한 말과 행동으로 다가간다면, 구주께서는 그분의 일을 의 안에서 단축시켜 영광 중에 오시며 이 마지막 경륜의 시대는 시간이 다 되었다고 말씀하시면서, 최선을 다해 복음대로 생활하고 삶과 교회와 사회를 발전시키려 온 힘을 다해 노력하는 우리의 모습을 보시게 될 것입니다.
주님이 오실 때, 제가 복음에 따라 생활하는 데 여념이 없기만을 진정으로 바랍니다. 제가 신앙을 널리 전하고 선행을 하는 중에 깜짝 놀라게 되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 제게 이렇게 말씀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제프리, 너의 직함이 아니라 너의 삶, 즉 살아 가고자 노력하는 네 삶의 방식과, 표준을 지키고자 기울이는 네 노력을 가상히 여겨 너를 인정하노라. 네 마음이 고결함을 내가 볼 수 있구나. 너는 무엇보다도 네 자신이 먼저 나은 사람이 되고, 그런 다음에 네가 할 수 있는 가장 친절한 마음을 담아 내 말을 다른 사람에게 전파하려고 노력했고, 내 복음을 수호하여 무엇보다도 상황을 더 좋게 만들려고 노력했다는 것을 나는 알고 있단다.”
주님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네 죄나 다른 사람들의 형편을 더 낫게 하는 일에서 항상 성공했던 것은 아니지만 정직하게 노력했다는 것을 안단다. 나는 참으로 네가 온 마음을 다해 나를 사랑했다고 믿는단다.”
저는 이 필멸의 삶에서 바라는 그 무엇보다도 언젠가 그런 일이 꼭 제게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도, 우리 모두에게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바랍니다. “애통하는 이스라엘 하나님 부르시네”6 하나님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크게나 작게 혹은 모든 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대로 생활하고, 그런 다음 우리와는 다르게 보이거나 다른 옷차림을 하거나 다르게 행동하는 사람들에게 다가가고, 그런 후에(할 수 있다면) 능력이 닿는 한 폭넓게 지역 사회에서 봉사하도록 부르고 계십니다.
저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며, 그분의 종이 되고자 노력합니다. 또한 하나님 아버지를 사랑합니다. 그분께서는 독생자를 주실 정도로 우리를 소중히 여기십니다. 그 은사와 관련하여, 복음에 따라 생활하고 시온을 세우겠다는 결심을 굳게 하여 지금보다는 더 그리스도와 같이 되고 더욱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하나님께서는 이 후기의 이스라엘을 부르고 계시다는 것을 저는 압니다. 우리가 참된 제자가 되기를 간구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렇게 될 수 있는 힘과 거룩함을 주실 것임을 저는 압니다. ◼
“애통하는 이스라엘 하나님 부르시네”, 2012년 9월 9일 유타 세인트조지의 딕시 스테이트 대학교에서 전한 교회 교육 기구 영적 모임 말씀에서 발췌함. 말씀 전문을 lds.org/broadcasts에서 볼 수 있다.(제프리 알 홀런드 장로 십이사도 정원회 2014-6)
'종교 > 말씀·경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번영의 바람이 불 때 도움을 요청하라 (0) | 2015.10.31 |
|---|---|
| 가치 있는 대중 매체 (0) | 2015.10.31 |
| 암몬처럼 되십시오 (0) | 2015.10.30 |
| 지나친 열성을 조심하라 (0) | 2015.10.30 |
| 말을 조심함 (0) | 2015.10.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