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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玉盤佳言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참되다고 아는 것에 충실할 때

by 높은산 언덕위 2024. 5. 10.

몇 개월 전에 저는 이 진리를 깨닫는 경험을 했는데, 하루는 걷다가 갑자기 시야가 흐려지고, 어두워지고, 요동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겁이 났습니다. 의사들은 제가 당장 치료를 시작하지 않으면 몇 주 안에 시력을 잃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저는 더 겁에 질렸습니다.

의사들은 제게 남은 평생 4주마다 한 번씩 눈을 뜬 채 안구에 직접 주사를 맞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야말로 청천벽력 같은 일이었습니다.

바로 그때 한 질문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었습니다. “그래! 내 육체적 시력이 좋지 않구나. 그런데 영적인 시력은 어떻지? 영적인 눈에도 치료가 필요한 건 없을까? 분명한 영적인 시야를 갖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저는 마가복음에 나오는 바디매오라는 맹인의 이야기를 깊이 생각해 보았습니다. 경전에는 이렇게 나옵니다. “나사렛 예수란 말을 듣고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 예수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거늘”1

엄밀히 말하자면, 많은 사람에게 예수님은 그저 요셉의 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바디매오는 그분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불렀을까요? 그 이유는 바디매오가 예수님을 다윗의 후손으로 태어나리라고 예언된 바로 그 메시야임을 알아봤기 때문입니다.2

시력을 잃은 이 맹인이 예수님을 알아봤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그는 육체적으로 못 보는 것을 영적으로 봤던 반면에, 다른 많은 사람은 예수님을 육체적으로 볼 수 있었지만, 영적으로는 완전히 맹인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우리는 분명한 영적인 시야에 대해 좀 더 배울 수 있습니다.

경전에는 또 이렇게 나옵니다. “많은 사람이 꾸짖어 잠잠하라 하되 그가 더욱 크게 소리 질러 이르되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하는지라”3

바디매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조용히 하라고 했지만, 그는 예수님이 진정 누구인지 알았기 때문에 더 크게 울부짖었습니다. 그는 조용히 하라는 목소리를 무시하고 더 크게 소리쳤습니다.

그는 행함을 받기보다 행하기로 선택한 것입니다. 그가 가진 제약에도 불구하고 그는 신앙으로 그것을 뛰어넘었습니다.

여기서 배울 수 있는 첫 번째 원리 예수 그리스도께 초점을 맞추고 참되다고 아는 것에 충실할 때, 분명한 영적인 시야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마시모 데 페오 장로 칠십인 정원회 2024-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