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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玉盤佳言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에 대해 뭔가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by 높은산 언덕위 2024. 2. 19.

1994년, 동아프리카 르완다에서 집단 학살이 일어났는데, 이는 부분적으로 부족 간의 뿌리 깊은 갈등 때문이었습니다. 50만 명이 넘는 사람이 목숨을 잃었다고 추산됩니다.1 놀랍게도 르완다 국민 대부분은 화해했지만,2 이 일은 계속해서 반향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10년 전, 르완다를 방문했을 때 제 아내와 저는 키갈리 공항에서 어느 승객과 대화를 나눴습니다. 그는 그 집단 학살의 부당함에 분개하며 “하나님이 계시다면, 그에 대해 뭔가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라며 비통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이 사람처럼 우리 중 많은 이들이 고통과 잔혹한 부당함은 친절하고 사랑이 넘치는 하늘 아버지가 실재한다는 사실과는 양립할 수 없는 것이라고 여길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분은 실재하시며 친절하시고 그분의 자녀들을 온전히 사랑하십니다. 이러한 이분법은 인류 역사만큼이나 오래된 것이고 인상적인 한 마디의 말로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이것을 조금이라도 이해하기 위하여 다양한 유형의 부당함을 살펴보겠습니다. 집안일을 하는 대가로 각 자녀에게 매주 용돈을 주는 한 가정을 생각해 보십시오. 아들 존은 사탕을 샀고 딸 안나는 돈을 저축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안나가 자전거를 샀습니다. 존은 안나는 자전거가 있고 자기는 자전거가 없는 것이 완전히 부당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불공평은 존의 선택 때문이지 부모님의 행동 때문에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사탕을 먹어 당장의 만족감을 얻는 것을 포기한 안나의 결정은 존에게 어떤 부당함도 지우지 않았는데, 이는 그에게도 똑같은 기회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결정은 장기적인 이익이나 불이익을 낳을 수 있습니다. 주님은 이렇게 밝히셨습니다. “만일 어느 사람이 이 생에서 자신의 부지런함과 순종을 통하여 다른 사람보다 더 많은 지식과 예지를 얻는다면, 장차 올 세상에서 그만큼의 유익을 얻으리라.”3 다른 사람들이 그들의 부지런한 선택 때문에 혜택을 받을 때, 우리에게도 같은 기회가 주어졌다면 우리가 부당하게 대우받았다고 결론을 내리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제 아내 루스가 어렸을 때 겪은 상황을 통해 또 다른 부당함의 예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어느 날 루스는 어머니가 여동생 멜라를 데리고 새 신발을 사 주러 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루스는 이렇게 불평했습니다. “엄마, 이건 불공평해요! 멜라는 지난번에 새 신발을 샀잖아요.”

어머니는 “루스야, 네 신발이 발에 맞니?”라고 물었습니다.

루스는 “네”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어머니는 “멜라의 신발은 더 이상 발에 맞지 않아”라고 말했습니다.

루스는 아이마다 발에 맞는 신발이 있어야 한다는 데 동의했습니다. 루스는 새 신발이 갖고 싶었지만 어머니의 눈을 통해 상황을 보고는 자신이 부당한 대우를 받는다는 생각이 사라졌습니다.

어떤 부당함은 설명되지 않는데, 그런 경우 분노가 치밉니다. 때로는 성하지 않은, 또는 다치거나 병에 걸린 몸으로 살아가야 하는 상황 때문에 부당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현세의 삶은 태생적으로 부당합니다. 부유한 가정에 태어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사랑이 넘치는 부모에게 태어난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장수하는 사람도 있고 그렇지 못한 사람도 있습니다. 부당함의 예는 차고 넘칩니다. 어떤 사람들은 좋은 일을 하려다가 실수로 누군가에게 해를 끼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부당함을 완화할 수 있는데도 그런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비참하게도, 어떤 사람들은 절대 그러지 말아야 하는데도 하나님이 주신 선택의지를 악용하여 다른 사람들을 해칩니다.

(데일 지 렌런드 장로 십이사도 정원회 2021-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