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밤, 저는 친척 한 명과 정치적인 문제에 의견을 달리하게 되었습니다. 가족들에게 다 들릴 만한 거리에서 그 친척은 거침없이 그리고 철저히 제 의견을 논박했습니다. 저는 스스로가 무지하다는 생각에 무안했습니다. 그날 밤 기도하려고 무릎을 꿇자마자 하나님 아버지께 그 친척이 저를 얼마나 힘들게 했는지 말씀드렸습니다. 그렇게 계속 기도했습니다. 아마도 제가 잠깐 불평을 멈춘 사이, 성신이 제 주의를 끌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놀랍게도 제 입에서 “아버지께서는 아마도 제가 그 친척을 사랑하기를 바라시겠지요”라는 말이 나왔기 때문입니다. 그녀를 사랑한다고? 저는 이런 말을 하며 계속 기도했던 것 같습니다. “어떻게 사랑해요? 사랑하기는커녕 좋아하지도 않는걸요. 저는 상처 받았고 힘들어요. 못 할 것 같아요.”
바로 그때, 성신의 도움으로 새로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아버지, 당신은 그녀를 사랑하시지요. 그녀에 대한 당신의 사랑을 저에게도 조금 나눠 주시겠어요? 저도 그녀를 사랑할 수 있도록 말이에요.” 제 가슴속 응어리가 풀리며, 마음속 변화가 일어나 이 사람을 다르게 보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보시는 그녀의 진정한 가치를 보게 되었습니다. 이사야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를 싸매시며 그들의 맞은 자리를 고치시리라.”
시간이 지나며 저희 둘 사이의 거리는 좁혀졌습니다. 하지만 그녀가 제 마음의 변화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해도,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우리가 그분의 도움을 구한다면 사랑하기 힘들 것 같은 사람들도 사랑하도록 도와주실 것을 저는 알게 되었습니다. 구주의 속죄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끊임없는 사랑의 매개체입니다. 모두를 사랑하려면 우리는 이 사랑 안에 거해야 합니다.(2017-10,닐 에프 매리엇,본부 청녀 회장단 제2보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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