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3장에는 나면서부터 걷지 못하여 사람들이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구걸하기 위하여 날마다 미문이라는 성전 문에 두는” 한 남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마흔이 넘은 나이였고, 그때까지 타인의 자비에 기대어 생활했기에 끝나지 않을 것 같은 부족함과 기다림으로 일평생을 보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가 베드로와 요한이 성전에 들어가려 함을 보고 구걸하거늘
베드로가 요한과 더불어 주목하여 이르되 우리를 보라 하니
그가 그들에게서 무엇을 얻을까 하여 바라보거늘
베드로가 이르되 은과 금은 내게 없거니와 내게 있는 이것을 네게 주노니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라 하고
오른손을 잡아 일으키니 발과 발목이 곧 힘을 얻고
뛰어 서서 걸으며 그들과 함께 성전으로 들어가면서 걷기도 하고 뛰기도 하며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에 성전 문에서 구걸하던, 걷지 못했던 그 사람처럼 인내하면서, 또 어떤 때는 조바심을 내기도 하며 “주님을 앙망”합니다. 신체적으로 또는 정서적으로 치유받기를, 마음속 가장 깊은 곳을 꿰뚫는 응답을 받기를, 기적이 일어나기를 기다립니다.
주님의 응답을 기다릴 때 우리는 성스러운 상태가 될 수 있습니다. 단련되고 정련되어 지극히 개인적인 방식으로 구주를 알아 갈 수 있는 그런 상태가 됩니다. 주님의 응답을 기다리면서 우리는 “오 하나님이시여, 당신은 어디 계시나이까?”라고 묻는 자신을 보게 되기도 합니다. 영적으로 끈기 있게 기다리는 그때, 우리는 의도적으로 그리고 지속적으로 반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행사해야 합니다. 저도 그것을 경험해 보았기에 그 기다림이 무엇인지 이해합니다.
저는 암 치료 기관에서 오랜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저와 마찬가지로 치유를 갈망하는 많은 사람과 함께 고통을 나누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살았고, 어떤 이들은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곳에서 저는 역경에서 구원받는다는 것이 저마다 다른 의미를 띤다는 것과, 그렇기에 우리가 구원받는 방식보다는 우리를 구원해 주시는 그분 자체에 더욱 초점을 맞춰야 한다는 것을 심오한 방식으로 배웠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를 강조해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을 행사한다는 것은 주님의 뜻뿐만 아니라, 그분께서 정하신 시기 또한 신뢰한다는 의미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무엇이 언제 필요한지를 정확하게 아시기 때문입니다. 주님의 뜻에 순종할 때, 우리는 궁극적으로 소망했던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을 받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친구 여러분, 우리 모두의 삶에는 수리하고 고치고 치유해야 할 무언가가 있습니다. 우리가 구주께로 돌이킬 때, 마음과 생각을 그분께 맞출 때, 회개할 때, 그분께서는 “그 날개에 치료함을 가지고” 우리에게 오셔서 애정 어린 손길로 우리를 감싸 안고 이렇게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괜찮아. 넌 이제 다섯 살, 열여섯 살, 스물세 살, 마흔여덟 살, 예순네 살, 아흔한 살일 뿐이잖니. 우리는 함께 고칠 수 있단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깨져 버린 것이 무엇이든, 예수 그리스도의 치유하고 구속하고 가능하게 하는 권능으로 고치지 못할 것은 아무것도 없음을 간증합니다. 무엇이든 능히 치유하실 수 있는 그분, 예수 그리스도의 성스럽고 거룩한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
(에이미 에이 라이트 자매 본부 초등회 회장단 제2보좌 202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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