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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사랑·감사·자비

영원한 사랑의 원리

by 높은산 언덕위 2023. 3. 13.

(휴고 몬토야 장로 칠십인 정원회 2022-10)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을 실제로 사랑하시며, 각 사람을 위해 그들 곁에 계십니다.

영원한 사랑의 원리는 다음 두 가지 큰 계명에 따라 살 때 드러납니다. 온 마음과 목숨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자기 자신같이 사랑하는 것입니다.1

저는 유타에서 맞은 첫 겨울을 기억합니다. 사방이 눈으로 둘러싸여 있었습니다. 소노라 사막 출신이었던 제게 눈이 내리기 시작한 처음 며칠은 즐거웠습니다. 하지만 얼마 후, 저는 눈이 오면 일찍 일어나 차고 앞에 쌓인 눈을 치워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어느 날 아침, 눈보라 속에서 땀 흘리며 눈을 치우다가 건넛집 이웃이 차고 문을 여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는 저보다 나이가 많았기에 제가 빨리 마치고 그분을 도와드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큰 소리로 물었습니다. “형제님, 도와드릴까요?”

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습니다. “감사합니다, 몬토야 장로님.” 그러고 나서 그는 차고에서 제설기를 꺼내 엔진을 켜더니 몇 분 만에 집 앞의 눈을 모두 치웠습니다. 그런 다음 기계를 갖고 길을 건너와서 제게 물었습니다. “장로님, 도와드릴까요?”

저는 웃으며 말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기 때문에 기꺼이 서로 돕고자 합니다. 내 형제의 필요는 내 필요가 되며 내 필요는 그의 것이 됩니다. 내 형제가 무슨 언어를 쓰든 어느 나라에서 왔든 우리는 모두 형제이자 같은 아버지의 자녀이기 때문에 서로를 사랑합니다.

성역이 발표되었을 때, 러셀 엠 넬슨 회장님은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다른 이들을 돌보고 그들에게 성역을 베푸는 새롭고도 더 거룩한 방식을 시작할 것입니다.”2 저에게 ‘더 거룩하다’는 말은 더 개인적이고, 더 깊고, 더욱 그리스도와 같은 방식, 즉 한 사람씩 “서로 사랑하라”는3 뜻 같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걸림돌이 되지 않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길을 가다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알아채는 것만으로도 충분치 않습니다. 이번 생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딱 한 번 만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주어진 모든 기회를 살려 이웃을 도웁시다.

 

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일까요?

그 이유는 그분이 우리에게 어떤 의미이신지 생각해 볼 때 알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는 그분의 자녀이고 그분은 우리의 복리를 살피십니다. 우리는 그분께 의지하고, 그분의 사랑은 우리를 보호합니다. 그분의 계획에는 선택의지가 포함되기 때문에 우리는 실수를 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분은 또한 우리가 시험과 유혹을 받도록 허락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실수하든 유혹에 빠지든, 그 계획은 구주를 마련하여 우리가 구속받고 하나님의 면전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줍니다.

삶의 역경으로 인해 우리가 받은 약속이 성취될지 의심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아버지를 믿으십시오. 그분은 항상 약속을 지키시며, 우리는 그분이 가르치시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옳은 일을 하더라도 삶의 상황은 좋았다가 나빠지기도 하고, 행복에서 슬픔으로 바뀌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무한한 자비와 사랑으로, 그분의 때에 우리 기도에 응답하십니다.

  • 엘리야가 목을 축이던 시내는 말라 버렸습니다.4
  • 니파이가 쓰던 튼튼한 강철 활은 부러졌습니다.5
  • 한 어린 소년은 학교에서 차별받고 쫓겨났습니다.
  • 오래도록 기다렸던 아이가 태어난 지 며칠 만에 죽고 말았습니다.

상황은 변합니다.

좋고 긍정적인 상황이 나쁘고 부정적으로 바뀔 때에도, 우리는 여전히 행복할 수 있습니다. 행복은 상황이 아니라 상황에 대한 우리의 태도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러셀 엠 넬슨 회장님이 말씀하셨듯이, “우리는 우리가 놓인 환경과는 관계없이 어디에 초점을 두는가에 따라서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6

우리는 가만히 앉아 상황이 저절로 바뀌기를 기다릴 수도 있고 새로운 상황을 찾아 변화를 가져올 수도 있습니다.

  • 엘리야는 사르밧으로 걸어갔고 그곳에서 한 과부를 만나 음식과 마실 것을 얻었습니다.7
  • 니파이는 나무로 활을 만들고 사냥하여 양식을 구했습니다.8
  • 교실 밖에 앉아 수업을 듣고 받아적었던 그 소년은 이제 초등학교 선생님이 되었습니다.
  • 그 부부는 구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큰 신앙과 구원의 계획에 대한 신뢰를 키웠습니다. 오래도록 기다렸으나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아이를 사랑하는 마음이 그들이 느끼는 슬픔보다 더 큽니다.

“하늘 아버지 정말 [계신가요]? 어린이 기도 듣고 응답하나요?”9라는 질문을 들을 때, 저는 이렇게 답하고 싶습니다. “그분은 여러분과 제 곁에 전에도 계셨으며, 지금도 계시고, 앞으로도 항상 계실 겁니다. 저는 그분의 아들이고 그분은 제 아버지이십니다. 저는 그분처럼 좋은 아버지가 되는 법을 배우고 있습니다.”

 

아내와 저는 언제나 어떤 상황에서나 또 어떤 방법으로나 항상 자녀들 곁에 있으려 노력합니다. 자녀들은 제각기 독특하며, 그들의 가치는 하나님 보시기에 큽니다. 그들에게 어떤 역경이나, 죄, 약점이 있더라도,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시며,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제가 총관리 역원 부름을 받아 솔트레이크시티로 출발하기 전 마지막 날, 저희 모든 자녀와 그들의 가족이 우리 집에 모여 가정의 밤을 했고 저희는 사랑과 감사를 표현했습니다. 공과를 마친 후, 저는 자녀 한 명 한 명에게 신권 축복을 주었습니다. 모두가 눈물을 흘렸습니다. 축복이 끝난 후 큰아들이, 태어나서 이제까지 우리가 그들에게 베풀어 준 큰 사랑에 대해 모두를 대신해 감사의 말을 전했습니다.

여러분의 자녀가 다섯 살이든 쉰 살이든, 그들을 축복하십시오. 그들과 함께하고 곁에 있어 주십시오. 부양은 신성한 계획에 의해 정해진 책임이지만, 자녀들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것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그의 자녀 한 사람 한 사람을 실제로 사랑하시며, 각 사람을 위해 그들 곁에 계십니다. 어떻게 그렇게 하시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분은 그렇게 하십니다. 그분과 그분의 맏아들께서는 “사람에게 불멸과 영생을 가져다주는”10 아버지의 사업과 영광을 행함에서 하나이십니다. 그분들은 성신을 보내셔서 필요에 따라 우리를 인도하고 경고하시며 위로해 주십니다.

그분은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 아름다운 지구를 창조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분은 아담과 이브를 가르치시고 선택의지를 주셨습니다. 그분은 오랜 세월 동안 그의 사자들을 보내셔서 우리가 그분의 사랑과 계명을 받게 하셨습니다.

그분은 성스러운 숲에서 어린 조셉의 진지한 기도에 응답하시며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으라!”11

저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최고의 사랑은 겟세마네에서 드러났다고 믿습니다. 그곳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께서 “내 아버지여 만일 할 만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12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저는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를 조금만 이해하더라도 아버지와 아들에 대한 사랑이 커지고, 죄를 짓고 불순종하려는 마음은 작아지며, 더 나은 사람이 되고 더 잘하려는 의지가 커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포도즙 틀을 홀로 밟아야 함을 아시면서도 아버지를 신뢰하며 두려움 없이, 의심 없이 겟세마네까지 걸으셨습니다. 그분은 모든 고통과 굴욕을 견디셨습니다. 그분은 고발당하고 심판받고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고뇌와 고통에 시달리는 동안, 예수님은 그의 어머니와 사랑하는 제자가 처한 상황에 집중하셨습니다. 그분은 목숨을 바치셨습니다.

사흘째 되던 날 그분은 부활하셨습니다. 무덤은 비어 있습니다. 그분은 아버지의 우편에 서 계십니다. 그분들은 우리가 성약을 지키고 그분들의 면전으로 돌아가는 편을 선택하기를 바라십니다. 현재의 둘째 지체는 우리의 최종 지체가 아닙니다. 우리는 이 지상의 집에 속해 있지 않으며, 오히려 우리는 일시적인 경험을 하고 있는 영원한 존재들입니다.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며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고, 그분은 살아 계십니다. 그분의 속죄 희생으로 말미암아 우리는 모두 그분들과 함께 살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씀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