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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궁금한 이야기

잃어버린 500년:말라기에서 침례 요한까지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0. 24.


"기원전 450년경에 선지자 말라기가 지상의 임무를 마치면서 500여 년 동안 진정한 선지자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우리는 이 기간을 신구약 중간기, 즉 구약 시대와 신약 시대 사이의 기간으로 알고 있다. 선지자가 없었던 터라 그 땅의 백성들은 여러 도당과 무리로 나뉘었고 각자가 경전을 해석하고 사람들을 이끌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 집단들 사이에서 여호와에 대한 참된 이해는 점점 희석되었다. 이어 찾아온 기나긴 혼돈의 밤은 하나님께서 새로운 선지자 침례 요한을 보내 새로운 경륜의 시대를 열게 하심으로써 끝이 났다. 그런데 침례 요한과 구주께서 백성을 가르칠 때에도 많은 사람이 신구약 중간기에 생겨나서 심화된 여러 전통과 믿음을 극복하지 못했다. 이 500년의 기간과 당시의 혼돈을 이해하면, 구주의 사명에 대해 더 많이 이해하고 그분을 따르겠다는 우리의 결심을 더 새로이 할수 있다.


유배와 속박: 불순종의 대가
이사야와 예레미야 등의 선지자들은 예루살렘 주민들이 계속해서 주님과 맺은 성약을 어긴다면 그들의 도시와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예언은 기원전 600년경 유다 지방에 들이닥친 바벨론의 첫 번째 침공 때 마을과 성읍, 도시와 종교 생활이
파괴됨으로써 성취되었다.
기원전 587년에 예루살렘은 마침내
함락되었고, 추방당한 유대인들은 폐허로
변한 고향땅에서 강제로 내쫓겼다.(시편
137:1 참조) 소수만이 예루살렘과 그
근방에 남았는데, 사마리아인도 그
일부였으며, 이들은 후에 이스라엘
이외의 민족과도 혼인했다.(예레미야
40:11~12 참조) 후에 유배자들은
블레셋으로 돌아오기 시작했고 고향
땅을 재건하고 종교 생활을
다시 시작했다.(에스라 3장참조) 마침내 기원전 515년에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어 다시 한 번 유대인 예배의 중심지가 되었다.
유대인들이 성전 건축을 돕겠다는
사마리아인의 제안을 거절했기 때문에
기원전 4세기 말, 사마리아인들은
예루살렘에서 북쪽으로 64킬로미터
떨어진 그리심 산에 새로운 성전을 지었다.
이렇게 여호와에 대한 예배와 믿음은
그리심 산의 새 성전과 예루살렘 성전
사이에서 분열되었다. 그들은 각자 신권
권능이 자기들에게 있다고 경쟁적으로
주장했다.(요한복음 4:20 참조)
그러나 이러한 부흥도 얼마 지속되지
못했다. 말라기 시대 이후로, 선지자
아모스가 예언한 것처럼 주님은 “기근을 땅에 보내[셨는데] ……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요] ……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었다.]”(아모스 8:11)
결정적인 변화는 사람들이 선지자의 권위 있는 가르침과 해석 없이 율법을 이해하고 실천하려 시도함으로써 엄청난 결과를 낳게 된다.

배도 상태
이러한 배도로 사람들은 서로
다른 정치, 종교, 사회적 쟁점에
따라 분열되었다. 그들은 메시야에
대한 믿음과 전통에서도 서로 다른
입장을 보였다. 각 종교 집단은 그들이
이해한 대로 모세 율법을 실천하려
노력했으나 각자 상이한 관점으로 경전을
해석했으므로 유대인 사회는 점점 더
분열했다. 그 결과 구주가 누구인가에
관한 참된 이해에도 혼돈이 오기
시작했다.
선지자들의 목소리가 사라지자 제사들과 성전에서 일하는 그들의 동료인 레위인들이 유대인 사이에서 경전을 해석할 권리를 주장하는 가장 주요한 인사들이 되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대제사 직분은 매관매직으로 부패되었다.
많은 유대인은 제사들과 레위인이
율법을 올바로 가르쳐야 하는 책임을
다하지 못한다고 생각했으며(신명기
33:10) 따라서 율법을 가르치고자 하는
새로운 집단이 등장했다. 서기관으로 알려진 그들은 율법을 배우고 순종하도록 백성들을 깨우쳤던 에스라를 본받으려 했다.(에스라 7:25; 느헤미야 8:1~8)
이 지역은 기원전 332년에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당했다. 알렉산더 대왕사후에 휘하의 장군들은 왕국을 나눠
가졌다. 시간이 흐른 뒤, 블레셋은
희랍어를 하는 셀레우코스 황제들의
지배를 받았다. 기원전 167년,
셀레우코스 지배자들은 유대인의 신앙을
불법으로 규정하여 할례를 금지시키고
제단에 돼지를 바쳐 성전을 더럽혔다.
많은 유대인이 이에 저항했으며,
그들을 이끈 가문은 마카비 또는
하스모니아인들로 알려져 있다. 마카비
전쟁으로 알려진 이 봉기로, 결국
유대인들은 자유를 되찾았고 예루살렘
멸망 이후 최초로 유대 국가를 세웠다.
동시에 하시디안, 또는 “경건주의자들”로
알려진 또 다른 종교 집단이 형성되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이해한 대로 모세
율법의 모든 측면을 실천함으로써
하나님에 대한 헌신을 보였다.
신구약 중간기에 나타난 다른 종교
집단들 또한 경전을 해석할 유일한
권리가 자신들에게 있다고 주장했다.
바리새인은 마카비 전쟁 직후에 생겨난
독립적 종교 집단이었다. 그들은 음식과
관련된 율법과 의례의 순수성에 지나칠
정도로 초점을 둠으로써 유대 사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게 되었는데,
그들의 그런 가르침은 사실 경전이
아니라 구전된 전통에 기인한 것이었다.
그들은 집안에서도 마치 성전에서 사는듯 행동하려 노력했다.
반면 그 기원이 아직 알려지지 않은
사두개인은 구전된 전통에 매달리기를
거부하고 모세5경을 엄격히 고수하며
다른 선지자들의 기록에는 등을 돌렸다.
이들 집단은 대부분 예루살렘 사회의
지도층이었다. 예수님이 태어나셨을 당시
그들의 세력은 예루살렘 성전을 관리할
만큼 막강해져 있었다.
이 종교 단체들은 각자 그들의 예배
생활에 중요하다고 믿는 전통과 교리를
보존했다. 그러나 참된 선지자의 인도가
없었으므로 그들은 자의적인 해석에
의지할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경륜의 시대를 기다리며
신구약 중간기 동안 이들의 종교적인
설득에도 불구하고 의로운 사람들은
여전히 메시야를 고대했다. 백성을
구원할 운명을 지닌, 다윗의 후손으로
오실 왕을 기다리며 시인들은 노래했고,
평범한 백성들도 기도하고, 이야기하고,
꿈을 꾸었다.
메시야를 고대했던 한 무리는
에세네파로, 이들은 마카비 전쟁 때
형성되었다. 에세네파는 예루살렘
성전의 제사들이 부패했고 성전에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믿었다.
그들은 곧 메시야가 올 것으로 생각했다.그들은 메시야가 그들을 도와서 로마의
속박에서 벗어나게 해 줄 것으로 믿었다.
로마인들은 예수 탄생 60여 년 전부터
블레셋 지방을 정복하여 통치하고
있었다.
회복에 앞서 개혁이 있었던 것처럼,
신구약 중간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위해 세상을 준비시키는
사건들이 있었다. 그 기간에 놀랄
만한 분량의 종교적 저술이 있었는데,
히브리어 성경이 희랍어로 번역되었고,
사해 두루마리와 외경 기록도 이때
시작되었다. 또 천사들과 부활에 관한
생각과 천국과 지옥의 개념이 발달하고
다듬어졌다.
그러나 그들을 인도할 선지자가
없었으므로, 유대인들은 경전의
의미와 메시야가 누구일 것인가에 대해
논쟁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윗의
자손인 메시야를 기다린 반면, 다른
이들은 아론의 자손, 즉 제사인 메시야를
주장했다. 일부 사람들은 메시야가 올
것이라는 기대를 하지 않았다.
신구약 중간기에 여러 집단 사이에서
너무나 많은 각각의 기대가 쌓인
나머지 이들은 참된 메시야가 오셨을
때 알아보지 못했다. 서기관이든
바리새인이든, 에세네파이든
사두개인이든, 어느 집단도 침례 요한을선지자로 받아들이지 않았고, 예수님을 메시야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들 집단의 일부 사람들은 침례 요한과 예수님의 성역 기간에 그들을 대적하는 대표적인 인물이 되었다.(마태복음 21:23~46)
메시야에 관한 논쟁과 다툼은 이 집단들 사이에서 계속되었다. 새로운 경륜의 시대의 첫 선지자인 침례 요한은 참된 메시야가 오심을 선언하고 그분이 가져올 구원이 어떤 것인지 명확히 가르쳤다.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며, 요한은 이렇게 말했다. “보라 세상의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한복음 1:29). 침례 요한이 그리스도의 오심에 대해 사람들을 준비시킬 때, 많은 유대인이 그를 받아들였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역을 시작하셨을 때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하게]”(마태복음 7:29) 사람들을 가르치셨다. 그분은 종교 지도자들과 많은 토론을 했고, 결혼과 부활과 신회에 관한 교리와 함께 구주로서의 그분의 역할에 대해 명확히 밝히셨다. 많은 종교 지도자가 그분을 거부했으므로(마태복음 26:4 참조), 예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나를 알지 못하고 내 아버지도 알지 못하는도다 나를 알았더라면 내 아버지도 알았으리라”. 또한 이렇게 덧붙이셨다. “하나님이 너희 아버지였으면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으리니”(요한복음 8:19, 42).
너무나 다른 메시야를 기대했던 그들은 주님을 거부했다. 감사하게도 우리는 복음 진리가 선지자와 사도들의 가르침이라는 토대 위에 세워진 시대에 살고 있다.(에베소서 2:20 참조) 우리는 선지자와 사도들의 인도 없이 영적인 것에 대한 서로 다른 주장 사이에서 선택해야 할 필요가 없다. 후기의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따를 때 우리는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리를 선지자 조셉 스미스에게 계시된 대로 이해하게 될 것이다.
“이는 [내]가 실로 하나님의 우편에 계신 그를 보았고 또 그는 아버지의 독생자라 증거하는 음성을 들었음이니 -
곧 그로 말미암아, 그를 통하여, 그에게서 여러 세상이 현재와 과거에 창조되었고, 그 곳의 주민은 하나님께로 태어난 아들과 딸들이라 하더라.”(교리와 성약 76:23~24) ◼

에스 켄트 브라운
고대 경전 명예 교수
리차드 나이첼 홀자펠
(브리검 영 대학교 교회사 및 교리 교수 201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