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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어머니의 성탄절 퀼트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0. 24.

내 인생에서 가장 힘든 경험 중 하나는 열 살 난 우리 딸이 뇌암으로 세상을 떠난 직후에 찾아왔다. 어느 토요일 오후, 딸아이의 방을 둘러보는 동안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다.”는 말이 절절하게 와 닿았다.
클라리사는 떠났지만, 그 방은 여전히 아이가 지상 생활 동안 남긴 물건들로 가득했다. 이제 아이의 물건을 어떻게 할 것인지 결정해야 하는 무거운 과제가 남아 있었다. 어떤 것 한 가지도 떠나 보내기가 쉽지 않을 것임을, 특히 아내에게는 더욱더 그럴 것임을 알고 있었다.
병원, 화학 요법, 방사선 치료와 관련된 온갖 소용돌이를 감당해야 했기에 청소나 정리를 할 시간이 거의 없었다.
아이가 침대 머리 위 선반과 책꽂이에 정리해 둔 물건을 상자에 담는 동안 여러 가지 기억이 떠올랐다. 딸이 가장 좋아하던 담요, 책, 목걸이에서부터 봉제동물 인형들, 교과서와 미식축구공에 이르기까지 모든 물건에 가슴을 파고드는 의미가 있었다. 각 물건을 어떻게 할 것인지 서로 묻는 동안 아내는 흐느꼈다.
우리는 클라리사의 많은 책을 모아 아이가 다니던 초등학교에 가져가서 다른 아이들이 볼 수 있도록 했다. 아이의 옷장은 이웃에게 주었다. 옷의 일부는 사촌들에게 갔다. 다른 사람들에게 집중하는 것이 아이의 물건들을 떠나 보내는 힘든 상황을 조금 수월하게 해 주었다.
몇 주 후, 성탄절이 다가오고 있을 때였다. 십 대인 두 딸이 특별한 성탄절 선물을 만드는데 클라리사의 옷들을 좀 사용해도 되겠냐며 아내에게 물어왔다. 아이들은 가족의 추억이 서린 옷들을골라서 조심스레 네모로 잘라내어 클라리사 생애의 소중한 순간들을 상징하는 조각들로 만들었다.
성탄절이 되기 며칠 전, 딸들과 이 아이디어를 생각해 내도록 도와준 청녀 지도자가 나에게 그들이 만들고 있는 퀼트 이불을 보여 주었다. 나는 클라리사 생애의 사건들을 나타내는 각각의 천 조각을 놀라운 마음으로 바라보았다. 아이의 미식축구 유니폼 조각, 가족 여행을 가서 아이에게 사 준 티셔츠에서 나온 조각, 병원에서 아이가 입었던 잠옷 바지 조각 등이었다. 참으로 소중하고 아름다운 각각의 조각이 우리가 아이와 함께 보낸 시간을 떠올리게 했다. 나는 딸들에게 그 이불이 완벽하다고 말해 주었다. 아이들의 엄마가 아주 좋아할 것이었다.
성탄절 아침, 나는 마음으로 전해진 선물을 보았다. 아내가 상자를 열고 딸들이 자신을 위해 만든 선물을 보며 지었던 표정을 언제나 기억할 것이다. 그날 이후로 매일 밤 아내는 그 성탄절 퀼트 이불을 두르고 추억을 떠올리며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와 부활로 우리 가족이 다시 함께 만날 날을 꿈꾼다. ◼
제드 패커, 미국 유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