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재봉틀 앞에 앉아서 플란넬 천의 가장자리를 박기 시작한다. 어린이 모양의 무늬가 찍힌 은은한 색의 천이 내가 만들고 있는 신생아용 담요의 앞면을 장식하고, 그에 어울리는 다른 색깔의 천이 뒷면이 된다.
우리 와드 상호부조회는 빈곤 지역과 재난 지역에 전할 신생아용품 키트를 만든다. 나는 아마추어 재봉사이지만 참여하려는 열의는 뜨겁다. 이 프로젝트를 위해 천을 고르고 담요 크기에 맞게 네모로 자르는 일이 즐겁다.
나는 두 천의 오른쪽 면을 겹쳐서 가장자리를 재봉틀로 박는데, 한 군데를 비워 두었다가 오른쪽 면이 밖으로 나오도록 뒤집는다. 그런 후 가장자리를 바느질하고, 모서리를 박고, 다시 담요를 뒤집어서 색깔이 알록달록한 면이 밖으로 나오게 한 후 트인 곳을 바느질한다.
가장자리는 다시 한 번 돌려 박아서 튼튼하게 만든다. 나는 천의 위치를 잡고 빠르게 재봉틀로 박는다. 집안일을 다시 시작하려고 재봉 일을 마치려 서두르다가 갑자기 이런 생각이 떠오른다. ‘내가 아기 예수를 위해 이 담요를 만들고 있는 거라면?’
그 생각에 나는 속도를 줄이고 가장자리를 반듯하게 하려고 꼼꼼히 주의를 기울인다. 그러나 주의를 해도 바느질이 반듯하게 되지는 않는다.
그다음에 가운데에 가로세로 25센티미터의 정사각형을 박아서 앞면과 뒷면을 고정한다. 두꺼운 종이로 만든 본을 만들어 담요 가운데 두고 그 가장자리를 따라 가볍게 표시 선을 그린다. 천을 제자리에 놓고 재봉 바늘을 내려 조심스럽게 바느질한다.
작업이 끝나면 실을 자르고 완성된 담요를 들어 올린다. 그런데 정사각형이 아니다. 사다리꼴과 평행사변형의 중간쯤 되어 보인다.
나는 그 담요를 옆으로 치우고 새 플란넬 천을 꺼내 다시 시작한다. 주님께 바칠 만한 선물이 되도록 더 노력을 기울인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는 전보다 약간 나아졌을 뿐이다. 내가 만드는 담요는 모두 조금씩 부족하다.
어느 하나도 구호용품을 모으는 장소로 가져갈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 어쨌든 올해는 안 될 것 같다. 나는 계속 연습할 것이고, 아마 언젠가는 제대로 된 이불을 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다른 생각이 떠오른다. ‘바느질 솜씨가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아기 예수께서 애굽으로 떠나고 말 거야.’
이해가 된다. 봉사할 기회는 사라질 것이다. 우리가 최선을 다한다면 구주께서는 우리가 드리는 헌물을 받아들이신다. 아무리 모자라더라도 말이다. 부드럽고 깨끗한 담요에 싸인 신생아가 담요 귀퉁이가 직각이 아니라며 잠들기를 거부하려 하지는 않을 것이다.
나의 노력이 전 세계의 필요를 조금이라도 해결할 수 있을까 생각하는 동안 그리스도의 가르침이 마음에 떠오른다.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40)
그래서 나는 계속해서 담요를 만든다. 그리고 할 수 있는 한 가장 예쁘게 만들려고 노력한다. 나는 이것들이 지금 필요하다는 것을 안다. 언젠가 재봉질에 완벽해질 때가 아닌 바로 지금 말이다. ◼
진 헤덴그렌 모울트리, 미국 워싱턴
'종교 > 말씀·경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성탄절의 실재성 (0) | 2015.10.24 |
|---|---|
| 어머니의 성탄절 퀼트 (0) | 2015.10.24 |
| 우리가 받은 최고의 성탄절 선물 (0) | 2015.10.24 |
| 함석 골판 아래에서 맞은 성탄절 (0) | 2015.10.24 |
| 새로운 개종자가되는 것은 어떤 기분일까? (0) | 2015.10.2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