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움이란 말은 좋지 않은 단어이지만 “[선지자 미가]가 내게 대하여 좋은 일로는 예언하지 아니하고 항상 나쁜 일로만 예언하기로 내가 그를 미워하나이다”라고 한 부패한 아합 왕처럼 지금도 그런 미움을 말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렇게 선지자의 정직함이 미움을 받아 아빈아다이는 목숨을 잃었습니다. 그는 노아 왕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진실을 고하였음으로 인하여 너희는 내게 노하였으며, 또 내가 하나님의 말씀을 말하였음으로 인하여 너희는 나를 미쳤다고 판단하였도다.” 이뿐 아니라 우리는 편협하고, 가부장적이며, 편견이 심하고, 불친절하고, 속이 좁으며, 구식이고, 시대에 뒤떨어졌다는 비난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주님도 선지자 이사야에게 이렇게 한탄하신 적이 있습니다.
“이는 …… 여호와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 자식들이라
그들이 선견자들에게 이르기를 선견하지 말라 선지자들에게 이르기를 우리에게 바른 것을 보이지 말라 우리에게 부드러운 말을 하라 거짓된 것을 보이라
너희는 바른 길을 버리며 첩경에서 돌이키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를 우리 앞에서 떠나시게 하라 하는도다”
여러분, 참 유감스럽게도 현대인들은, 혹 신을 원한다 해도,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지 않는, 편안하고 부드러운 신을 바란다는 특징이 있습니다. 즉, 유유자적하면서, 옳은 방향을 제시하지도 않고, 우리를 안심시키며 웃게 해 주고, 가서 재미있게 놀라고만 하는 그런 신 말입니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하나님을 자신의 형상대로 창조하는 판국이 아닙니까! 가장 아이러니한 것은 때때로 그들이 예수님을 “편안한” 하나님으로 여긴다는 것입니다. 정말로 그렇습니까? 주님은 우리에게 계명을 어겨서는 안 되며, 어기는 것은 생각조차 해서도 안 된다고 하시는 분입니다. 계명을 어기는 것을 생각만 해도 우리는 이미 마음속으로 계명을 어긴 것입니다. 이 말이 “편안한” 교리로 들리십니까? 모든 것이 평화롭게 흘러가기만 바라는 집단에서 인기를 얻을 만한 그런 듣기 좋은 교리로 들리십니까?
그렇다면 외딴 곳에서 죄악을 슬쩍 접해 보려는 사람은 어떻습니까? 예수님은 번개처럼 말씀하셨습니다.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고 네 손이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내가 ……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듣기 좋은 말만 바라는 이들에게 그분은 경고하셨습니다. 설교를 거듭할수록 그 근방 사람들이 “예수께 그 지방에서 떠나시기를 간구[했던]” 것도 어찌 보면 당연합니다. 기적이 거듭될수록 그분의 권능이 하나님이 아니라 악마에게서 왔다고 치부한 것도 놀랄 일이 아닙니다. 차 범퍼에 붙이는 스티커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요?”라는 질문에 언제나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답만 있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강해지십시오. 주변 사람들은 전혀 그렇지 않더라도 여러분은 복음대로 충실히 사십시오. 사랑과 정중함으로 자신의 믿음을 수호하고 지키십시오. 그 길은 폭이 넓지 않은 협착하고 좁은 길이지만, 여러분은 “소망의 완전한 밝은 빛과 하나님과 만인에 대한 사랑을 가지고, 그리스도를 믿는 굳건함을 지니고” 즐거운 마음으로 성공적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그 길을 용감하게 추구할 때 여러분은 흔들리지 않는 신앙을 세우게 될 것이며, 사악한 바람, 회오리바람 가운데 화살들이 날아올 때에도 안전할 것이며, 구속주의 단단한 반석과도 같은 힘을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 힘을 바탕으로 불굴의 제자가 된다면 여러분은 결코 넘어질 수 없습니다.
(제프리 알 홀런드, “제자 됨의 대가와 축복”, 리아호나, 2014년 5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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