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년 동안, 저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뇌, 그리고 명상을 통해 주님께서 저에게 삶의 교훈을 주시기를 기다렸습니다. 지속적이고 격렬한 고통은 우리를 성결케 하는 놀라운 정화제로서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주님의 영에 더 가까워지도록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우리가 그분의 말씀에 귀기울이고 순종한다면, 그분의 영의 인도를 받을 것이며 우리는 매일 노력하는 가운데 그분의 뜻을 행할 것입니다.
저는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은 제가 이러한 경험을 통해 어떤 교훈을 배우기 원하시옵니까?” 와 같은 직접적인 질문을 몇 번 한 적이 있습니다.
제 생애의 중대한 이 시기 동안 경전을 공부하면서, 그 장막은 얇아졌고, 저보다 더 심한 고통을 겪었던 사람들의 생애에 기록된 것과 같은 응답이 저에게도 주어졌습니다.
“나의 아들아, 평안할지어다. 네 불행, 곧 네 곤고는 잠시 동안이니,”
“만일 네가 이를 잘 견디어 내면 하나님께서 너를 높이 받들어 올릴 것이요,”(교리와 성약 121:7~8)
영을 통해 모든 것이 잘 되리라는 확신과 함께 평안과 위로를 받음으로써 절망의 어두운 순간들은 복음의 빛에 의해 빠르게 사라졌습니다.
이따금씩 저는 제가 배워야 할 교훈을 확실히 배웠으며 더 이상의 고통은 저에게 필요치 않을 것 같다고 주님께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한 간구는 아무 소용이 없었던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성결케 하는 이러한 시험의 과정을 주님의 시간에 따라 주님의 방법대로 견뎌야 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원대로 되기를 원하나이다”(마태복음 26:42)라고 가르치는 것과, 그에 따라 사는 것은 별개의 일입니다. 저는 또한 이러한 역경과 시련을 저 혼자 감당하도록 버려진 것이 아니고, 수호 천사들이 저와 함께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천사의 모습을 지닌 그들 가운데는 의사와 간호사와 누구보다도 저의 가장 사랑하는 동반자인 메리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따금씩 주님께서 그렇게 하기를 원하실 때, 저는 하늘 천사들의 방문으로 위로를 받았고 그들은 제가 어려울 때 위안과 영원한 평안을 느끼게 해 주었습니다.
저의 개인적인 고통은 겟세마네에서 겪으신 주님의 고뇌에 비할 바가 아니지만, 저는 그분의 속죄와 고통을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분은 고뇌에 빠졌을 때 아버지께 이렇게 간구했습니다. “만일 할만 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옵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마태복음 26:39) 하늘에 계신 그분의 아버지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곤경에 처해 있는 그분을 위로해 주셨습니다.(누가복음 22:43 참조)
예수께서는 끝까지 견디어 내고, 그분이 인류를 위해 성취하도록 보내심을 받은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세상을 떠나지 않기로 택하셨습니다. 갈보리 십자가에서 예수께서는 “다 이루었다”(요한복음19:30)라는 짧은 말씀과 함께 그의 영을 아버지에게 맡겼습니다. 끝까지 견디신 후에 그분은 이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우리도 끝까지 견디어야 합니다. 몰몬경은 이렇게 가르칩니다. “살아계신 아버지의 아들의 본을 따라 끝까지 견디지 아니하면 구원을 얻을 수 없느니라.”(니파이이서 31:16)
(로버트 디 헤일즈, “침례 성약: 왕국 안에 있으며 왕국에 속해 있음”, 리아호나, 2001년 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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