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성도의 믿음은 많은 현대 기독교인들에게보다는 초기 세대의 기독교인들에게 좀 더 익숙하게 느껴질 수 있다. 초기 기독교 시대의 영향력 있는 신학자 및 교사들은 인간이 신성한 존재가 될 수 있다는 관념에 찬성했다. 현대의 한 학자는 그리스도의 사망 이후 1세기 동안 있었던 “신화론의 편재”, 즉 인간이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을 언급했다. 서기 202년경에 사망한 고대 교부 이레네우스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무한한 사랑을 통해 우리가 그분과 같은 상태가 될 수 있게 하시려고 우리와 같은 상태가 되셨다”고 가르쳤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서기 약 150~215년경)는 “사람이 어떻게 하나님이 될 수 있는지를 배우게 하시려고 하나님의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고 기록했다. 바실리우스(서기 330~379년) 역시 이 가능성, 즉 단지 “하나님과 같이 되는 것”이 아니라 “가장 높으신 하나님이 되는 것”을 높이 평가하고 가르쳤다.
초기 교부들이 말한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의 정확한 의미는 해석하기 나름이지만, 신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이 로마 후기 시대에 좀 더 논쟁거리가 되었으며, 중세 시대에 이르러서는 흔치 않은 일이 되었음은 분명하다. 신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에 대한 교부의 반박이 처음 알려진 것은 5세기였다. 6세기에 이르러서는 “하나님이 될 수 있다”는 가르침은 위(僞) 디오니시우스(서기 약 500년경)가 내린 다음 정의에 나온 것처럼 그 범위가 좁게 한정되어 나타난다. “신이 될 수 있다는 것은 …… 가능한 만큼 하나님을 닮아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이다.”
이러한 믿음은 왜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되었는가? 세상의 창조에 관한 관점이 바뀜에 따라 인간의 잠재력에 대한 시야도 점차 좁혀졌을 수도 있다. 창조에 관한 초기 유대인 및 기독교 기록을 보면 하나님께서 기존 물질들로 세상을 조직하셨다고 간주하며, 그러한 생명을 유지하는 체계를 갖추신 하나님의 선하심을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2세기에 갑자기 등장한 새로운 철학적 사고는 하나님께서 ex nihilo(무에서) 우주를 창조하셨다는 교리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이는 결국 기독교 세계에서 창조에 관한 지배적인 가르침이 되었다. 하나님의 권능을 강조하기 위해 많은 신학자들은 그분께서 존재하셨던 한 아무것도 존재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 기독교계에서는 하나님께서 원래 철저히 혼자이셨음을 주장하는 것이 중요하게 되었다.
Creation ex nihilo(무로부터의 창조)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간격을 더욱 넓히게 되었다. 세상이 있기 전에 인간의 영혼이 존재했다거나 인간이 장차 하나님의 속성을 온전히 물려받고 발현할 수 있음을 가르치는 것은 드문 일이 되었다. 점차적으로, 인간의 도덕적 타락과 창조주와 피조물 간의 엄청난 간극이 점점 더 강조됨에 따라 신이 될 수 있다는 개념은 서양 기독교에서 그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기독교의 3대 주요 교파 중 하나인 동방 정교회의 중심 교리로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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