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6년 10월 21일, 첫 번째 구조 마차가 윌리 손수레 부대에 도착했다. 이 마차 중 일부는 그곳에 남았지만, 대부분은 마틴 손수레 부대를 돕기 위해 계속해서 나아갔다. 10월 23일, 윌리 부대는 눈보라를 뚫고서 약 24킬로미터를 전진했다. 처음 5킬로미터를 지나는 동안에는 로키 리지라 불리는 180미터 높이의 언덕을 오르기도 해야 했다.
제일회장단의 제임스 이 파우스트 회장은 윌리 부대에 속한 어린 개척자 어린이들의 용기에 대해 이렇게 이야기했다.
“추위와 피로와 굶주림으로 목숨을 잃은 윌리 대원 13명이 록 크리크 할로우에서 한 무덤에 함께 묻혔습니다. 록 크리크 할로우에 묻힌 사람들 중 두 명은 나이 어린 영웅으로, 그 이름은 덴마크에서 온 아홉 살 난 보딜 모틴슨과 스코트랜드에서 온 열한 살 난 제임스 커크우드였습니다.
보딜은 그들이 로키 리지를 넘을 때 어린 아이들을 돌보라는 임무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야영지에 도착했을 때 보딜은 땔감을 모으러 나갔음에 틀림없습니다. 이 소녀는 불을 지피기 위하여 모은 잡초들을 손에 쥔 채 손수레 바퀴에 기대어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되었습니다.
제임스 커크우드에 대하여 이야기하겠습니다. 제임스는 스코틀랜드 그래스고우에서 왔습니다. 서부로 가는 여행에서 제임스는 홀어머니와 다른 세 형제와 동행하였는데, 19살 먹은 형 토머스는 불구라서 손수레를 타고 가야 했습니다. 여행에서 제임스의 주된 책임은 어머니와 맏형 로버트가 손수레를 끄는 동안 네 살 난 동생 조셉을 돌보는 일이었습니다. 그들이 로키 리지에 올랐을 때 눈보라가 치고 있었고 살을 에는 듯한 바람이 불고 있었습니다. 일행 모두가 24킬로미터를 전진하는 데 27시간이 걸렸습니다. 어린 조셉이 너무 지쳐 걸을 수 없게 되자, 형 제임스는 동생을 안고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일행 뒤에 처져서 제임스와 조셉은 야영지를 향해 천천히 갔습니다. 이 두 형제가 야영지에 지펴 놓은 모닥불가에 도착했을 때 ‘자신의 임무를 그토록 충실히 임한 제임스는 심한 추위와 극심한 과로로 쓰러져 숨졌습니다.’”(“값진 유산”, 성도의 벗, 1993년 1월호,제임스 이 파우스트)
'종교 > 신앙·간증' 카테고리의 다른 글
그곳에 이르렀을 때, 수레가 저를 밀기 시작했습니다 (0) | 2021.03.30 |
---|---|
너는 돌이킨 후에 네 형제를 굳게 하라 (0) | 2021.03.29 |
어서 가서 지금 평원에 있는 사람들을 데려오십시오 (0) | 2021.03.29 |
‘여보, 힘을 내오. 곧 당신은 구조될 거라오 (0) | 2021.03.29 |
떨리는 마음으로 첫걸음을 내디뎠던 아담과 이브처럼 (0) | 2021.03.2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