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번은 비행기 안에서 스스로 무신론자라고 말하는 사람 옆에 앉게 되었는데 그는 자신이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것을 너무나 강경하게 이야기했기 때문에 저는 그에게 제 간증을 전했습니다.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계십니다. 저는 그분이 살아 계신 것을 압니다.’
그는 이렇게 반대했습니다. ‘선생님은 알지 못합니다. 그것을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을 알 수 없습니다.’ 제가 굴복하려 하지 않자 법률가인 그 무신론자는 간증 문제에 관하여 아마도 궁극적인 것이 될 질문을 했습니다. 그는 비웃는 듯이 정중한 태도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좋습니다. 선생님은 알고 계시다는 말씀이시지요. 어떻게 해서 아시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제가 대답하려 했을 때 저는 대학원 학위를 소지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전달할 수가 없었습니다.
제가 성령과 증거라는 말을 사용하자 그 무신론자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군요.’ 기도, 분별, 신앙도 똑같이 그에게는 아무 의미가 없었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아시겠습니까. 선생님은 사실은 모르시는 겁니다. 만일 아신다면 어떻게 해서 아시는지 말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아마도 간증을 현명하게 전하지 못했다고 생각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습니다.”
패커 회장은 비행기에서 옆자리에 앉아 있던 그 사람에게 소금이 어떤 맛인지 아냐고 물어보라는 영감을 느꼈다고 설명하며 이야기를 마무리했다.
“그는 ‘물론 압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언제 마지막으로 소금 맛을 보셨지요?’
‘지금 막 비행기에서 저녁 식사를 할 때였지요.’
저는 ‘선생님은 단지 소금 맛이 어떤지 안다고 생각하실 따름이지요.’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렇게 주장했습니다. ‘저는 제가 어떤 것을 아는 것과 마찬가지로 소금 맛이 어떤지 압니다.’ …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면 제가 한 번도 소금 맛을 본 적이 없다고 가정하고 그 맛이 어떤지 설명해 주십시오.’
물론 여러 번 노력했으나 그는 설명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소금을 맛보는 것과 같이 그렇게 일상적인 경험도 말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저는 그에게 한 번 더 간증하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을 압니다. 선생님은 제 간증을 비웃고 정말로 제가 안다면 어떻게 아는지 분명히 말할 수 있으리라고 말했습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저는 소금 맛을 보았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소금 맛이 어떻다고 말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이 지식이 어떻게 저에게 왔는지 말로는 설명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다시 말씀드리는데 하나님은 계시고, 그분은 진실로 살아 계십니다. 그리고 단지 선생님이 모르신다고 해서 제가 모른다고는 말씀하지 마십시오.
저는 우리가 헤어질 때 그가 이렇게 중얼거리는 것을 들었습니다. ‘저는 선생님이 의지하시는 종교가 필요 없습니다. 필요 없어요.’
그 경험을 한 이래로 저는 제가 영적으로 알고 있는 모든 것을 말로 설명할 수 없다고 해서 당황하거나 부끄러워한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주님의 등불”, 성도의 벗, 1983년 10월호, 보이드 케이 패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영을 통해서만 하나나님의 일을 알고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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