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리아와 마르다는 예수님께 그녀들의 형제인 나사로가 위독하다는 전갈을 보냈다. 예수께서는 지체하시다가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째 되는 날에 그곳에 도착하셨으며, 사랑과 연민의 마음으로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셨다. 신성한 권능이 극적으로 그려진 이 사건은 예수가 메시야이시며 그분께 죽음을 이길 권능이 있다는 사실을 분명하게 알려 준다. 이 기적에 대해 알게 된 대제사장들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과 나사로를 죽일 음모를 꾸몄다.
당시 예수께서는 베레아 지역의 베다바라에 계셨는데(요한복음 1:28; 10:40), 이곳은 베다니로부터 동쪽으로 하루 정도 걸리는 거리에 있었다. 따라서 누군가가 그 전갈을 가지고 예수께 가는 데 최소한 하루가 걸렸을 것이며, 예수께서 베다니로 가시는 데도 또 하루가 걸렸을 것이다.
예수께서 마르다와 마리아와 나사로를 사랑하셨다는 것을 아는 제자들은 예수께서 즉시 베다니로 가서 나사로를 낫게 해 주실 것으로 예상했을 것이다. 아니면 어느 고관의 아들에게 하셨듯이(요한복음 4:46~53 참조), 말씀으로 원거리에 있는 나사로를 낫게 하셨을 수도 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레아에서 이틀을 더 머무셨다.
제자 몇몇은 예수께 베다니가 있는 유대 지역으로 돌아가서는 안 된다며 만류했는데 이는 그 지역에 있는 유대인 지도자들이 그분을 죽이려고 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예수께서는 자신이 그곳에서 직면하게 될 죽음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유대로 가실 것이었다. 구주께서는 이렇게 가르치셨다. ‘나는 지금 내 인생의 열한 번째 시간을 살고 있지만, 낮이 열두 시간이 아니냐. 그 정해진 시간 동안에는 망설이거나 머뭇거리지 않고 나에게 맡겨진 일을 할 것이니라. 지금은 내 일을 하도록 주어진 때이니라. 반대가 잦아드는 밤까지 기다릴 수는 없노라. 자신의 책임을 회피하고 해야 할 일을 미루는 자는 어둠 속에서 실족할 것이며 자신의 일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니라.’”(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3 vols. [1965-73],브루스 알 맥콩키)
맥콩키 장로는 나사로가 죽은 지 나흘이 되었다는 사실이 지니는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다. “시체는 제대로 부패되고 있었는데, 죽은 지가 오래 되었기에 그 점은 절대적으로 확실했다. 유대인들에게 나흘은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띠었다. 나흘째가 되면 영이 시체를 완전히 떠난다는 믿음이 유대인들 사이에 널리 퍼져 있었기 때문이었다.”(Doctrinal New Testament Commentary, 1:533)
20 마르다는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이하되 마리아는 집에 앉았더라
21 마르다가 예수께 여짜오되 주께서 여기 계셨더라면 내 오라버니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
22 그러나 나는 이제라도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
“복음의 첫째 되는 원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입니다. 신앙은 신뢰, 즉 하나님의 뜻을 신뢰하고, 그분이 행하시는 방법을 신뢰하고, 그분의 시간표를 신뢰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는 그분의 시간표 대신 우리의 것을 강요하려 해서는 안 됩니다.
참으로 우리는 주님의 뜻과 주님의 타이밍을 믿는 완전한 신뢰 없이는 참된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주님의 타이밍”, 리아호나, 2003년 10월호, 댈린 에이치 옥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영생을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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