윌포드 우드럽은 1840년을 마감하면서 일지에다 다음과 같은 내용을 기록했다. “1840년 첫날 나는 제이 테일러 장로 및 티 털리 장로와 함께 정기선 옥스포드 호를 타고 대서양을 항해하고 있었으며, … 마지막 날에는 킴볼 장로와 함께 영국과 세계의 대도시인 런던에 있었다. 금년은 나 자신에게, 모든 성도들에게, 그리고 여러 면에서 세계 전체에 중요한 해였다. 1840년보다 흥미 있게 보낸 해는 없었다. 나는 금년보다 더 큰 희생을 요구 받고 더 큰 축복을 누린 적이 없었다. 나는 아내와 자녀들과 함께 하지 못하는 희생을 감수해야 했으며 그들의 얼굴을 한 번도 보지 못했다. 그들 중 하나는 세상을 떠났다.(새라 에머는 이 세상에서는 다시 볼 수 없는 곳으로 갔다.)” “일년 내내 외국에서 보내면서 영원한 진리에 대한 오류를 위해 싸우고 진리에 반대하는 죄인들의 수없는 반박에 직면하며 돌에 맞고 폭도의 습격을 받고 방해를 받았다. 그러나 주님은 나의 성역의 상징으로 많은 영혼을 추수할 수 있는 축복을 주셨다. 수백 명이 기쁘고 즐거운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였으며 지금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해의 영광에서 만나리라는 산 소망을 갖고 새롭고도 영원한 성약 가운데 생활하는 기쁨을 누리고 있다. 나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와 나의 형제들에게 지난 한 해 동안 보여 주신 선하심과 사랑에 가득 찬 친절에 대해 깊은 감사를 느끼며 내년에도 우리와 함께 해 주시기를 바란다.”(Journal of Wilford Woodruff, 1840년 12월 31일, Archives of 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
우드럽 장로는 일년 동안“수고한 결실”을 열거한 것에다 다음과 같은 자세한 내용들을 포함시켰다. 그 해에 그는 7,192킬로미터를 여행했으며, 14개의 대회에 참석하고, 336명에게 침례를 주고, 86명의 다른 사람들이 침례를 주는 것을 도왔으며, 420명을 확인하고 50명의 다른 사람들이 확인받는 것을 도왔다. 18명의 장로를 성임하고, 97명의 제사, 34명의 교사, 1명의 집사를 성임했으며, 120명의 어린이를 축복하고, 120명의 병자를 축복하고, 밀레니얼 스타지, 찬송가 3,000부, 몰몬경 5,000부를 인쇄하고, 200명의 교회 회원이 나부와 아이오와로 이주하는 것을 돕기 위해 1,000파운드를 모금했다. 200통의 편지를 쓰고 112통의 편지를 받았으며 폭도의 습격을 네 차례나 당했다.(Journal of Wilford Woodruff, 1840년 12월 31일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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