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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玉盤佳言

우리가 “겸손의 골짜기”라는 곳을 지나기 전에 겸손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by 높은산 언덕위 2019. 10. 4.


오래전 열다섯 살 먹은 제 아들 에릭이 머리에 심각한 부상을 입게 되었습니다. 일주일이 넘도록 아들이 혼수상태에 빠져 있는 것을 보자니 가슴이 미어졌습니다. 의사들은 앞으로 어떻게 될지 장담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가 의식을 다시 찾았을 때 우리는 정말 감격했습니다. 우리는 이제 모든 것이 괜찮아지리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우리의 오산이었습니다.

그는 깨어났지만 걷지도, 말하지도, 혼자 먹지도 못했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는 단기 기억상실증에 걸렸습니다. 그는 사고가 나기 전에 있었던 일은 거의 다 기억할 수 있었지만, 그 후에 일어난 일은 기억할 능력이 없었으며, 심지어는 몇 분 전에 일어난 일조차 기억하지 못했습니다.

한동안 우리는 아들이 열다섯 살짜리의 정신 속에 갇히게 되는 것이 아닌가 하고 걱정했습니다. 사고 전에는 아들에게 모든 일이 수월했습니다. 그 애는 운동도 잘하고 인기도 많은 데다 학교 성적도 좋았습니다. 그 전에는 그의 장래가 밝아 보였는데, 이제 과연 그에게 미래가 있을지, 적어도 자기가 기억하는 미래나 장래가 있기나 할지 걱정했었습니다. 그는 이제 아주 기초적인 기술을 다시 익히느라 애를 먹고 있었습니다. 이때가 그에게는 정말 겸손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이때는 또한 그 아이의 부모에게도 매우 겸손해지는 시간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우리는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의아스러웠습니다. 우리는 항상 옳은 일을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복음대로 사는 것은 우리 가족의 최우선순위였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그렇게 고통스러운 일이 우리에게 일어났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아들의 재활이 수개월, 심지어 십 수년이 걸릴지도 모른다는 것이 분명해지자 우리는 무릎을 꿇게 되었습니다. 더 힘든 점은 점차 그가 절대 예전의 그로 돌아가지는 않으리라는 것을 깨닫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 시기 동안 우리는 많이 울었고 우리의 기도는 훨씬 더 진심이 담기고 진지해졌습니다. 겸손한 눈으로 우리는 점점 이 고통스러운 시기 동안 아들이 경험하는 작은 기적들을 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점차 좋아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태도와 인생관은 아주 긍정적이었습니다.

현재 우리 아들 에릭은 훌륭한 동반자와 결혼하여 다섯 명의 아름다운 자녀를 두었습니다. 그는 정열적인 교육자이며 교회뿐만 아니라 지역 사회에도 이바지하는 사람입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가 오래전에 얻은 겸손의 영을 똑같이 지닌 채 계속 살아가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러나 만약 우리가 “겸손의 골짜기”라는 곳을 지나기 전에 겸손할 수 있다면 어떻겠습니까? 앨마는 이렇게 가르쳤습니다.

“어찌할 수 없어 겸손하게 됨이 없이 스스로 겸손하여진 자들은 복이 있도다.

그들은 어찌할 수 없이 겸손하게 되는 자들보다 훨씬 더 복되리라.”(2016-04,스티븐 이 스노우 장로,칠십인 정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