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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玉盤佳言

실제보다 더 잘 보이려는 유혹은 교회 임무를 수행하는 데에서도 볼 수 있다.

by 높은산 언덕위 2019. 8. 20.


저는 지도자들이 한해 목표를 야심 차게 세웠던 한 스테이크를 압니다. 목표는 모두 가치 있어 보였지만, 고상하고 인상적인 발표, 또는 숫자나 퍼센트에 집중되어 있었습니다.

목표에 관해 토론하고 동의하긴 했으나 스테이크 회장님에게는 무언가 걸리는 게 있었습니다. 최근에 남편을 잃고 홀로 어린아이를 키우는 젊은 어머니와 같은 스테이크 회원들이 생각났습니다. 의심이나 외로움으로, 혹은 건강 상태가 심각한데 보험이 없어서 힘들어하는 회원들이 생각났습니다. 또, 파경에 이른 결혼이나 중독, 실직, 정신 질환으로 버거워하는 회원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들을 생각하면 할수록 마음을 겸손하게 하는 이 한 가지 질문이 거듭 떠올랐습니다. 우리의 새로운 목표들은 그 회원들의 삶을 변화시킬 수 있는 것인가?

회장님은 “무엇이 우리가 베풀 성역인가?”라는 질문에서 시작했더라면 스테이크의 목표는 어떻게 달라졌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그 회장님은 평의회를 다시 열고 사람들과 함께 초점을 바꾸었습니다. 그들은 “주린 자와, 궁핍한 자와, 벗은 자와, 병든 자와 고난당하는 자들이 그들 곁을 지나가되 그들에게 주의를 기울이지 아니하는 일이 없도록 하자고 결의했습니다.

새로운 목표를 세우면서, 그들은 이런 목표의 성공 여부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측정이 불가능하다는 점을 인지했습니다. 개인의 간증이나 하나님의 사랑, 타인에 대한 동정심 같은 것을 어떻게 측정할 수 있겠습니까?

그렇지만 그들은 또한 “셀 수 있는 것 중 상당수가 그렇게 중요하지는 않으며, 오히려 셀 수 없는 것 중 상당수가 진정으로 중요하다”는 점을 알았습니다.

저는 우리의 조직 목표와 개인 목표가 종종 현대판 포툠킨 마을인 것은 아닌지 궁금합니다. 멀리서는 근사해 보이지만 사랑하는 이웃의 진정한 어려움은 외면하는 것은 아닐까요?(2015-04,디이터 에프 우흐트도르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