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저는 어머니가 도움이 필요한 한 여성을 구속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오래전에 저희가 어렸을 때 어머니는 죽을 고비를 넘기는 큰 수술을 받으셨고 거의 1년 동안을 주로 침대에서 지내야 하셨습니다. 그 기간에 친지들과 와드 회원들이 어머니와 우리 가족을 도와주셨습니다. 이에 더하여 와드 상호부조회 회장님이셨던 에이브러햄 자매님은 일자리가 절실히 필요한, 와드의 한 자매님을 고용하도록 저의 부모님께 제안하셨습니다. 그 자매님은 사라로, 그분의 딸은 애니라고 임의로 부르겠습니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이야기는 이렇습니다.
“지금도 어제 일처럼 또렷하게 떠오른다. 침대에 누워 있는데, 에이브러햄 자매님이 사라를 문 앞으로 데려오셨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그렇게 볼품없는 행색을 한 사람은 처음 보았기 때문이었다. 비쩍 마르고 너저분한 데다 머리카락은 마구 헝클어져 있고, 어깨는 축 처진 채 고개를 숙이고 바닥을 보고 있었다. 자기 몸보다 네 치수는 더 큰 것 같은 낡은 실내복 차림이었다. 고개를 들려고 하지도 않고 목소리는 너무 작아서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그 뒤로 세 살쯤 되어 보이는 여자아이가 숨어 있었다. 이 사람이 대체 무얼 할 수 있단 말이지? 그들이 방을 나가자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다. 도움이 필요했는데 문제만 더 늘어난 셈이었다. 에이브러햄 자매님은 사라와 함께 좀 더 머물며 금세 집을 치우고 훌륭한 식사를 준비해 주셨다. 에이브러햄 자매님은 나에게 며칠을 함께 지내 보라고 말씀하셨다. 이 젊은 자매는 참 힘든 일을 겪었고 도움이 필요하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 사라가 왔을 때, 나는 목소리를 들을 수 있도록 침대 옆으로 오라고 불렀다. 사라는 자기가 무엇을 하면 좋겠냐고 물었다. 나는 할 일을 말해 주고 나서 이렇게 말했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아이들이에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책을 읽어 주세요. 아이들이 집보다 더 중요하니까요.’ 사라는 음식도 잘하고 청소도 잘했다. 세탁도 깔끔하게 했고 아이들에게도 잘해 주었다.
몇 주가 지나면서 나는 사라가 겪은 일을 알게 되었다. [귀가 약간 먹어서 학교 공부를 잘하지 못하다가 결국엔 그만두었다. 결혼을 일찍 했는데, 남편은 알코올 중독이었다. 애니가 태어난 것은 사라의 삶에 기쁨이 되었다. 그런데 어느 겨울밤, 취해서 집에 돌아온 남편이 잠옷 바람인 사라와 애니를 강제로 차에 태우고는 고속도로에 내려놓고 가버렸다. 그 후론 남편을 만나지 못했다고 한다. 그 추위에 맨발로 사라는 애니를 데리고 몇 킬로미터를 걸어서 친정어머니 집으로 갔다.] 사라의 어머니는 사라에게 집에 머무는 대가로 온갖 집안일과 음식을 하게 했고 고등학교에 다니는 동생들을 보살피게 했다고 한다.
우리는 사라를 이비인후과에 데려갔고 보청기를 사줬다. 성인을 위한 학교에도 데려갔다. 거기서 사라는 고등학교 졸업장을 받았다. 그리고 야간학교에 다니며 대학까지 졸업하고 특수학교 교사가 되었다. 작은 집도 장만했다. 애니는 성전에서 결혼했고 두 아이를 두었다. 나중에 귀 수술을 받고 결국 잘 들을 수 있게도 되었다. 여러 해가 지나고 은퇴한 다음엔 선교사로 봉사했다. 사라는 자주 우리에게 고맙다는 말을 했고, 나에게 참 많이 배웠다고 했다. 특히 내가 아이들이 집보다 더 중요하다고 말했던 걸 기억했다. 사라는 나에게 배운 대로 자기도 애니에게 그렇게 했다고 했다. 사라는 정말 특별한 여성이다.”(2013-04,디 토드 크리스토퍼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