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때때로 다른 사람들에 대해 속단하며, 그에 따라 그들과 맺는 관계가 바뀌거나 달라집니다. 우리가 판단을 잘못 내리는 일은 보통 우리가 상황을 다 알지 못하거나 당장 눈 앞에 비춰지는 모습 너머에 있는 다른 면을 보지 못하기 때문에 생깁니다.
많이 인용되는 예로, 예수께서 마리아와 마르다를 방문하셨을 때 일어난 이야기가 있습니다. 두 자매는 오빠인 나사로와 함께 베다니에 살았고, 주님께서는 이 의로운 가정을 즐겨 방문하여 휴식을 취하셨습니다. 어느 날, 마르다가 바삐 음식을 준비하는데 마리아는 주님의 발치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마르다는 준비하는 일이 많아 마음이 분주한지라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주여 내 동생이 나 혼자 일하게 두는 것을 생각하지 아니하시나이까 ……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마르다야 마르다야 네가 많은 일로 염려하고 근심하나
몇 가지만 하든지 혹은 한 가지만이라도 족하니라 마리아는 이 좋은 편을 택하였으니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여러 주일학교 공과에서 이 이야기가 다루어지는 과정에서 마르다가 신앙적인 면에서 약간 부족한 사람이라는 인상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이 마르다라는 여인의 이해력과 간증을 제대로 보여 주는 다른 이야기가 있습니다. 구주께서 그녀의 오빠인 나사로를 죽음에서 살리기 위해 도착하셨을 때 있었던 일입니다. 이때 예수께서 “오신다는 말을 듣고 곧 나가 맞은” 이는 마르다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나자 마르다는 “주께서 무엇이든지 하나님께 구하시는 것을 하나님이 주실 줄을 아나이다”라고 말합니다.
그러자 그리스도께서 마르다에게 부활이라는 위대한 교리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이에 마르다는 강한 간증으로 대답합니다. “주여 그러하외다 주는 그리스도시요 세상에 오시는 하나님의 아들이신 줄 내가 믿나이다”
마르다가 영적인 가르침보다 부엌일을 더 염려하는 사람으로 오해를 받는 일이 얼마나 잦습니까? 그러나 오라비의 죽음이라는 시련 속에서 보여 준 간증은 마르다의 이해와 신앙이 얼마나 깊은지를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많은 자매님들이 첫 번째 이야기를 들을 때 자신이 마리아에 속하는 사람인지 마르다에 속하는 사람인지 고려해 볼 것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에 담긴 진리는 올바른 판단력으로 한 사람을 제대로 아는 데에서 나옵니다. 마르다에 대해 더 많은 것을 배우면서 우리는 그녀가 영성이 깊고, 생명을 지배하는 구주의 신성한 권능과 그분이 짊어진 사명에 대해 훌륭한 간증이 있었다는 점을 알게 됩니다. 마르다에 대한 잘못된 판단 때문에 우리는 이 훌륭한 여인의 진정한 성품을 보지 못했을지 모릅니다.(2010,04,그레고리 에이 슈바이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