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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궁금한 이야기

스펜스 더블류 킴볼의 유산

by 높은산 언덕위 2017. 10. 27.

스펜서 더블류 킴볼 회장의 가족은 회복된 교회에서 깊은 뿌리를 갖고 있었다. 그의 모계나 부계, 양가의 조부들은 후일의 교회 사업 초기 역사에서 유명한 분들이었다. 히버 시 킴볼은 1835년에 십이사도 정원회가 조직되었을 때 그 정원회에 부름을 받았다. 훗날 그는 20년 이상 브리검 영 회장의 제1보좌로 봉사했으며 성역을 행하는 동안 주님의 충실한 종이었다. 스펜서의 외할아버지 에드윈 디 울리는 펜실베이니아의 퀘이커 교도였으나 조셉 스미스 시대에 복음을 받아들였다. 그는 솔트레이크 밸리에서 존경 받는 감독이었다. 또한 그는 여러 번 브리검 영의 개인 업무 관리자로 봉사했다. 궁핍한 사람들에 대한 울리 감독의 관심과 복음에 대한 확고부동한 헌신은 그의 후손들에게 영속적인 유산이 되었다.

스펜서의 할머니 앤 앨리스 그힌 킴볼은 “충실한 여성으로 … 사람들 앞에서 수줍어하고, 키가 크고 평범하게 생겼으며, 약하고 아픈 사람에 대해 깊은 동정심을 지닌 사람이었다.”3 앤드류 킴볼은 그녀의 셋째 아들이었다. 스펜서의 외할머니인 매리 앤 올핀 울리는 영국 출신으로, 열한 자녀의 어머니였으며 여섯째 아이의 이름을 올리브라고 지었다.

앤드류 킴볼은 1882년 2월 2일에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올리브 울리와 결혼하여, 그곳에서 가정을 꾸몄다. 약 3년 후에 앤드류는 집을 떠나, 오늘날의 오클라호마 주에 위치한 인디언 특별 보호구 선교부에서 봉사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2년 반 동안 전임 선교사로 봉사한 후에 그는 다시 그 선교부를 감리하라는 부름을 받았다. 하지만 그는 집에서 생활하면서 새로운 부름을 수행하도록 승인되었기 때문에 그후 10년 동안 가족과 함께 유타에 거주하면서 편지를 통해 또는 그 지역을 방문하면서 선교부를 이끌었다.

인디언 특별 보호구 선교부에서 12년 동안 봉사한 이후에 앤드류에게 또 하나의 부름이 왔다. 이번에는 애리조나 중남부의 힐라 밸리에 정착하는 것이었다. 그곳에서 그는 세인트 조셉 스테이크라는 명칭으로 조직된 후기 성도 정착촌들을 스테이크 회장으로서 감리해야 했다. 1898년에 앤드류와 올리브는 (세 살 된 스펜서를 포함하여) 여섯 자녀들과 함께 가재 도구를 꾸려 솔트레이크시티에서 남쪽으로 965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이사했다.(스펜스 더블류 킴볼의 가르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