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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인생이라는 경주

by 높은산 언덕위 2017. 3. 23.

한인 지부 성찬식 말씀   2013.12.29

 

2012 4 연차대회에서 토마스 에스 몬슨 회장님은 인생이라는 경주라는 제목으로 하신 말씀에서 :

최근에 저는 2 이상 생명을 위협하는 질병과 싸워 자매님을 방문했습니다. 자매님은 아프기 전에 집을 완벽하게 청소하고 아름다운 가구들로 채우는 것과 같은 일로 바빴다고 합니다. 일주일에 번씩 미용실에 갔고, 옷장에 채워 넣을 옷을 사는 매달 돈과 시간을 썼습니다. 항상 자신이 소중하다고 생각했던 물건들이 작고 부주의한 손길 때문에 깨지거나 상하게 될까 염려해서 손주들을 좀처럼 초대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다 그분은 자신의 생명이 위태로우며, 이생에서의 남은 시간이 얼마 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습니다. 의사의 진단을 들은 순간, 즉시 남은 시간이 얼마나 되든 가족과 친구와 보내고 복음을 중심에 두고 살아야 함을 깨달았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비록, 모든 것이 극명해지는 순간이 항상 그렇게 극적으로 오지는 않을지라도 이러한 시간은 모두에게 분명히 번쯤은 옵니다. 그럴

 

보통 우리는 가차없이 진행되는 자신의 삶에서 우리 자신의 영혼을 향해나는 여기에 있는 것일까?’ 나아가서 나는 어디로 가는가?”라고 조용히 (때로는 애통하는 심령으로) 물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보이드 패커회장님께서 십이사도 보조로 부름받고 솔트레이크시로 이사를 해야했다. 마땅한 집를 찾아야했는데 찾는것을 도와 주라고 제일회장단에서(헨리 모일)해롤드 리장로를 보냈다. 아내와 당시  8명의 자녀가 살만한 위치가 괜찮은 집을 보았다. 장로님께서 세심히 둘러보시고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진행시켜야겠다... by all means, you are to proceed.

그렇지만 진척시켜나갈 방도가 없었다. 이제 금방 박사학위과정을 마쳤고 학위 논문dissertation 쓰고 있는 중이었고 교육에 모든 자원은 쓰여지고 없었다. 빌릴 있는 만큼 빌리고 가진 모두 털어서 집을 수는 있었다. 당장 다음 지불할 돈도 충분히 없었지만. 그래도 리장로님은 계속  진행해라. 이게 맞다는 것을 내가 안다….go ahead.  I know it is right.

갚아나갈  재원 방도도 대책 없이 계약에 사인하는 일을 평생 안해본 일을 하라는 권고를 조언을 받아서 깊은 혼란에 빠졌다. 리장로님께서 알아차리시고 데이비드 멕케이 회장님에게 보냈다. 멕케이 회장님께서 주의 깊게 패커장로님의 형편를 듣고난 뒤에 말씀하시길  진행해라 맞는 일이라고 하셨다….you do this. It is the right thing…그러나 가능케할 아무런 방도도 제시하시지 않았다. 다시 리장로님께 만난 이야기를 보고했을 리장로님은 말씀은 내가 너에게 말을 다시 확인하는 말씀이구만 하셨다…that confirms what I have told you….

그래도 평화롭지는 못했고 다음에 교훈이 왔다.

리장로님께서 너는 너가 무엇이 잘못되어 있는지 아느냐? 너는 항상 처음부터 끝까지 알려고한다. …do you know what is wrong with you? – you always want to see the end from the beginning.

패커장로님은 저는 적어도 걸음은 앞서 보기를 원합니다라고 조용히 대답했다… I replied quietly I  wanted to see at least a few steps ahead.

리장로님은 이더서 12 6절의 일부를 대답으로 말씀하셨다. “ 이제 모로나이는 이일에 관하여 얼마간 말하고자하노라. 내가 세상에 보이고자 하거니와, 신앙이란 비록 보이지아니하나 바라는 것임이라.

그러므로 너희는 보이지않는다하여 이를 논박하지말지니, 너희의 신앙이 시련을 겪기까지는 너희가 증거를 받지못함이니라.”(이더12:6)…wherefore, dispute not because ye see not, for ye receive no witness until after the trial of your faith….

붙여서 말씀하시길 ..자네는 빛의 가장자리에서 걷기를 배워야 겠네.  아마도 몇걸음 어둠속을 걷기를 배워야 지도 모르겠네, 그리고  자네는 빛이 앞에 나타나서 움직일 것이란 것을 알게 걸세.  ”My boy, you must learn to walk to the edge of the light, and perhaps a few steps into the darkness, and you will find that the light will appear and move ahead of you.”

“The Holy Temple”  page 183-184에서

 

우리도 인생이라는 경주를 하면서 패커장로님께서 발자욱만이라도 앞을 보기를 원하셨던 것처럼 어떤 때는 앞이라도 속시원히 수있다면 하고 바랬을 때가 있지 않습니까?

보통 우리는 가차없이 진행되는 자신의 삶에서 우리 자신의 영혼을 향해나는 여기에 있는 것일까?’ 나아가서 나는 어디로 가는가?”라고 조용히 때로는 애통하는 심령으로 물을 때가 종종 있습니다.

 

조셉 워스린 장로님은 인생이란 경주에서 우리가 높은 곳으로 여행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길이고, 그것은 궁극적으로 우리를 아버지와 아들이 계신 곳에서 우리 가족과 함께 승영에 이르게 하는 여행입니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높은 곳으로의 여행 /워스린장로님/2005/11 Ensign)

 

저는 오늘 우리는 어떻게  보이지 않는다고하여 이를 논박하지 않고(이더 12:6)  또한 두려워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고   높은 곳으로 여행할 있을지에 관해 조셉 워스린 장로님과 토드 크리스토퍼슨 장로님 그리고 앤드슨 장로님께서 하신 말씀을 참고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고  높은 곳으로 여행하기위해서:

 

첫째 살아계신 선지자의 권고를 따라야한다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2004 12 6, 강력한 지진이 인도네시아의 해변을 강타하여 치명적인 쓰나미 일으킴으로써 20 이상이 사망했습니다. 그러나 마을이 파괴되기는 했어도 어떤 희생자도 발생하지 않은 무리의 사람들이 있었는데,  태국과 버마(미얀마) 해안가 섬마을에 살고 있는 모켄 부족이었습니다. 그들은 쓰나미가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어업을 삶의 터전으로하는 그들은 조상들로부터 바다에대해서 가르침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들이 가르쳤던 특이한 가지는 바닷물이 빠져 나갔을 어떻게 해야하는가인데 그들의 전통에 따르면, 그런 일이 일어나면 Laboon, 사람들을 삼키는 파도가 이닥친다 했습니다. 놀라운 표적을 마을의 노인들은 모든 사람들에게 높은 곳으로 올라가라고 소리쳤습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것을 따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늙은 어부는“아이들은 아무도 말을 믿지 않았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사실, 그의 딸조차도 그를 거짓말쟁이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늙은 어부는 모든 사람들이 마을을 떠나 높은 곳으로 올라갈 때까지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앞으로 일에 대한 확신을 갖고 경고한 사람이 있다는 점에서 모켄 부족은 운이 좋았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말에 귀를 기울였기때문에 운이 좋았습니다.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면, 그들은 모두 죽었을 것입니다.

 

니후 25:9절에  “또 죄악으로 인하여 유대인 가운데 세대가 멸망당한 것같이 대대로 그들이 그들의 죄악에 따라 멸망당하였나니, 그들 아무도 주의 선지자들이 그들에게 예고함이 없이는 결코 멸망당하지 아니하였느니라.

아담의 시대 이후로 주님께서는 그의 선지자들에게 말씀하셨으며, 시대의 구체적인 필요 사항에 따라 그분의 메시지가 다르기는 했어도, 일관적이고 결코 변하지 않는 하나의 주제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죄악에서 떠나 높은 곳으로 가라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선지자의 말씀에 주의할 , 주님은 그들을 축복하십니다. 하지만 그분의 말씀을 소홀히 , 비탄과 고난이 자주 뒤따른다는것을 압니다.

주님의 길에서 벗어난 사람들에게 오는 자연적 결과는  . 힐라맨서 4:13 “그들의 간악함과 그들이 스스로의 힘을 자랑함으로 인하여 그들은 스스로의 힘에 의해 버려둔바가 된다는것입니다.  성공의 도가니 속에서 우리 자신의 힘으로 충분하다고 여기게 , 육신의 팔에 의지하는 사람들은 그것이 참으로 얼마나 약하고 믿지 못할 것인지를 알게 됩니다.우리는 요한 15:5..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들이라. 그가 내안에 내가 안에 거하면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이는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수 없기때문이라라는 말씀을 겸손하게 한번 생각해보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경전을 통해보면 사람들이 의로울 , 주님은 그들을 번성하게 하십니다. 번성은 종종 교만으로 이어지고 교만은 죄로 이어집니다.   죄는 간악함으로 그리고 영적인 것들에 대해 완악하게 되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결국 길의 끝은 비통과 슬픔 그리고 멸망으로 이어진다는 것을 압니다.

어리석게도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소홀히 여기고, 우리 자신의 힘에 의지하다가 결국에는 결과를 거두어들입니다.

베냐민 왕은 가지 선택과 가지 결과를 설명했습니다. 그는 주님을 버린 사람들은

“그들 스스로의 죄와 가증함의 참담함을 목도하게 되고, 이는 그들을 주의 면전으로부터 뒷걸음질치게 하여 비참과 끝없는 고통의 상태로 들어가게”한다고 말했습니다.(모사3:25) 그러나 높은 곳으로 가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킨 사람들은“현세적이거나 영적인 모든 일에 복됨이요, 만일 그들이 끝까지 충실히 견디면 하늘에 영접되나니, 그로 인해 하나님과 함께 결코 끝이 없는 행복한 상태에 거하게” 됩니다. (모사2:41)

워스린 장로님 :“ 높은 곳으로 가는 여행에는 주님의 성전이 포함되어야 합니다. 성전이 높은 , 신성한 곳을 나타내기 때문에 그리스도에게 나아와 높은 곳으로 , 우리는 그분의 성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고 싶어할 것입니다.” 라고 하셨습니다.

 

패커장로님은 성스러운 성전이란 책의 말미에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으로 오십시요.  그리고 와서 여러분의 축복들을 요구하십시요. (Come to the temple. Come and claim your blessings..)”

요구한다는 것은 어떤 것입니까?  우리가 어떤 조건을 충족했으니까 당연히 받을 것을 달라고하는 것입니다. 권리를 주장하는 아닙니까.

) 아브라함서 1장에 보면 아브라함은 우상을 섬기는 집과 주변에 살았지만 아브라함은 자신이 의의 추종자였으며 지식을 지닌 자였다고했습니다.  지식을 지니며 추종자가 되어 민족의 조상과 평화의 왕자가 되기를 원하였고 여러가지 가르침을 받으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기를 원했고 라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1:2  나를 위한 행복과 평화와 안식이 있음을 알고, 나는 조상의 축복을 구하고 축복을 베푸는 직분에 성임된 권리를 구하였느니라.” 아브라함은  자신의 권리 장자로서의 권리,  행복을 추구할 권리를 요구한 것을 있습니다.  

 성전으로 오십시요.  그리고 와서 여러분의 축복들을 요구하십시요.”라고 패커장로님께서 하신 말씀대로 높은 곳으로 가는 여행에 필요한 축복들을 요구할 있을만큼 합당하게 생활해서  지상에 있는 아버지의 , 성전에 가고,  가서 축복을 달라고 요구해야 합니다. 우리는 문자 그대로 그분의 아들과 딸이 아닙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고  높은 곳으로 여행하기위해서:

 

둘째..헌납된 삶을 사는 것입니다.

 

 크리스토퍼슨 장로님은 성별된 삶을 고찰함이란 제목으로 2012/10연차대회 에서 말씀하시면서

구원의 계획을 묘사한Mans Search for Happiness[행복의 추구] 라는 영화에 나오는 리차드 에반스 장로님의 해설을 인용하셨습니다.

 “여러분은 인생에서 가지 귀중한 선물을 얻습니다. 하나는 시간이며, 다른 하나는 선택할 있는 자유, 여러분이 얻은 시간으로 원하는 것을 있는 자유입니다. 여러분은 주어진 시간을 짜릿한 것과 교환하거나 저속한 욕망과 바꿀 있습니다. 탐욕스러운 것에 투자할 수도 있습니다. …… 선택은 여러분에게 달려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것에서는 영원히 지속되는 만족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현명한 선택이라 말할 수는 없습니다. 여러분은 필멸의 삶에서 흘려 보낸 매일, 매시간, 순간에 대해 언젠가는 책임을 져야 합니다. 여러분이 신앙의 길을 걷고, 악보다는 선을, 그릇된 것보다는 옳은 것을, 단순한 재미보다는 지속되는 행복을 택하여 스스로를 입증하는 시기가 이생입니다.

하나님의 선지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람이 존재함은 기쁨을 갖기 위함이니라. 기쁨에는 충만한 , 봉사로 헌신하는 , 사랑하고 조화를 이루는 가정과 정직한 노동의 대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에 따른 요건과 계명을 받아들이는 것이 포함됩니다. 이러한 것에서만 참된 행복, 조명이 꺼지고 연주가 끝난 관객들이 사라지더라도 결코 없어지지 않을 그런 행복을 찾을 있습니다.1

 

크리스토퍼슨 장로님은  우리의 삶이란 창조주께서 주신 시간과 선택을 관리하는 청지기 직분을 수행하는 것임을 나타냅니다.   또한    생에서 얻는 진정한 성공은 우리의  , 우리의 시간과 선택을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헌납할 옵니다.(요한복음 17:1, 4; 교리와 성약 19:19 참조) 그렇게 그분께서는 우리가 가장 높은 위치에 이르도록 들어 올려 주십니다.” 하셨습니다.

 

크리스토퍼슨 장로님은 헌납된 삶을 위한 다섯 가지 요소로 청결, , 육신을 존중함, 봉사, 고결함을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헌납된 삶이란 청결한 삶이라하셨습니다.

크리스토퍼슨 장로님은 예수님만이 죄 없는 삶을 사신 유일한  분이지만, 주님께 나아가 그분의 멍에를 메는 사람은 그분과 같이 죄 없고 흠 없는 사람이 될 수 있게 하는 주님의 은혜를 요구할 자격이 있습니다. “ 헌납된 청결한 삶은  “회개를 통해서 고집이나 반항, 자기합리화 같은 것은 버려야 마땅하며, 그 자리를 순종과, 고침을 받으려는 소망과,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모든 바를 받아들이는 것으로 대체해야 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너희 땅의 모든 끝이여, 회개하고, 내게로 와서 내 이름으로 침례를 받으라. 그리하여 성신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성결하게 되어, 마지막 날에 내 앞에 흠 없이 서도록 하라.(3니파이 27:20) 하셨습니다.

 

*헌납된 삶이란 일하는삶이라하셨습니다.

어린 시절부터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일에 관여하셨습니다.(누가복음 2:48~49 참조) 하나님께서도 사람에게 불멸과 영생을 가져다주는 그분의 일을 통해서 영광을 받으십니다.(모세서 1:39 참조) 우리는 자연스럽게 하나님과 더불어 그분의 일에 참여하고자 소망합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 나가는 가운데 우리는 모든 훌륭한 일은 곧 하나님의 일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저는 조셉 스미스가 기록한 짤막한 글을 상기시켜 드리고 싶습니다. “계속해서 일함으로써 [우리는] 편안한 생계를 유지할 수 있었다.(조셉 스미스-역사 1:55)일을 해야만 삶이 유지되고 풍요로워집니다. 일을 하면 필멸의 생에서 겪는 낙담과 비극에서 헤어날 수 있습니다. 힘들게 노력하여 일을 성취할 때 자긍심을 얻습니다. 일은 성품을 키우고 강화하며, 아름다움을 만들고, 타인과 하나님께 봉사하는 수단이 됩니다.

 

 

*헌납된 삶은 육신을 존중하는 삶이라하셨습니다.

우리는 몸에 문신을 새긴다든가, 마약으로 몸을 상하게 하거나, 간음, 간통, 음란한 행위 등으로 육신을 더럽히는 일을 해서는 안된다는 경고를 받아왔습니다. (2012/4연차대회.몬슨회장님)

헌납된 육신을 존중하는 삶에 대해서 크리스토퍼슨 장로님은 우리 몸은 우리 영의 도구가 되므로 육신을 최대한 잘 보살펴야 합니다. 또한 타인에게 봉사하고 그리스도의 일을 진척시키기 위해 육신의 힘을 성별해야 합니다.라고하셨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2:1에서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제물이 되게하기 위해서는 흠이 없어야 한다.

 

*헌납된 삶은 봉사하는삶이라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헌납된 삶이 봉사하는 삶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속죄를 위한 고통을 몇 시간 앞두고서 주님은 겸손히 제자들의 발을 씻겨 주시며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3:14~16에 “내가 주와 또는 선생이 되어 너희 발을 씻었으니 너희도 서로 발을 씻어 주는 것이 옳으니라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노라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종이 주인보다 크지 못하고 보냄을 받은 자가 보낸 자보다 크지 못하나니”

 

*헌납된 삶은 고결한 삶이라하셨습니다.

우리는 “결혼 서약을 완전하고 성실하게 지키는”5 남편과 아내에게서 그런 고결함을 발견합니다. 결혼 생활에 자양분을 공급하고 자녀의 신체적 영적 복지를 돌보는 일에 최우선순위를 두는 아버지와 어머니에게서 그런 고결함을 발견합니다. 또한 정직한 사람에게서 그런 고결함을 발견합니다.

헌납된 삶을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을 이용하려 하지 않습니다. 대신 오른편 뺨을 치면 왼편도 돌려 대며, 속옷을 가지고자 하는 사람에게 겉옷까지도 주는 사람입니다.(마태복음 5:39~40) 구주께서는 위선자들을 준엄하게 꾸짖으셨습니다.

 

헌납된 삶이란 때로는 되풀이되고, 때로는 하찮으며, 때로는 인정도 받지 못하지만 늘 무언가를 향상시키고, 정돈하고, 지탱하며, 들어올리고, 보살피며, 염원하게 하는 일들로 가득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고  높은 곳으로 여행하기위해서:

마지막으로 결단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지 않는 것입니다. (never leave him 닐 엘 앤더슨장로님 2010.10 연차대회)

앤더슨 장로님은 결단코 그 분을 떠나지 마십시요라는 연차대회 말씀에서 

삶은 영적 소풍이 아닙니다.  이 여정이 일시적인 영적 호기심에 불과하거나, 뛰어나지만 유한한 끝을 향한 것이기를 바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제자가 되는 길은 영적으로 나약한 사람들을 위한 길이 아닙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마태22:37)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가8:34)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구주를 따르는 길이 쉽지 않음을 이야기하고 또한 따르는 동안에도 의심할 여지없이 시련이 찾아 올 것을 이야기합니다.

세상의 방식으로 이해하려 하면 이러한  경험들은  우리의 시야를 흐리게하고 두렵게하고 우리의 결심를 약하게 만들지만 우리가 신앙으로 다가가면 이러한 경험들이 우리를 단련시키고 오히려 구세주의 실재하심에 대한 더 깊은 개종을 가져옵니다는 것을 압니다.

요한 복음 6장에서 제자 중 많은 자들이 교리가 어렵다고하여 예수님 곁을  떠났습니다. 이를 보시고 예수님께서는 12사도들에게 이렇게 물으셨습니다. “너희도 가려느냐”(요한 6:67) 이에 베드로가 대답하기를  “주여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오리까? 주님께는 영생의 말씀이 있나이다.  우리는 주께서 그 그리스도, 곧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으며  또 확신하나이다.(요한 6:68-69)

우리는 구주와 그분의 복음과 신권 의식에 충실하게 남을 수 있고,  결단코 그분을 떠나지 않을 수 있는 신앙과 힘을 키워야합니다.

 

힝클리회장님:

 저는 우리가 완전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을 압니다. 우리는 완전한 길을 알고 있지만, 항상 알고 있는 것에 따라 행동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가 대부분의 경우 노력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아버지께서 우리가 되기를 바라시는 종류의 사람이 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높은 목표이며, 저는 그 목표를 성취하려고 노력하는 여러분 모두를 치하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반면에 우리는 주님의 보호와 인도를 간구할 수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 그분의 계명을 기꺼이 지키지 않는다면 우리는 그분의 도움을 기대할 수 없습니다라고도 하셨습니다.

 

몬슨 회장님은

우리는 삶이 흘러가는 대로 떠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생각하고, 판단하며, 성취할 있는 능력을 가지고 세상에 옵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저는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높은 곳을 향해 여행하는 우리가  안전하게 목적지에 이를 있도록 그분께 인도를 받을 있는 방편을 주셨음을 압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자신의 종들의 입을 통하여 우리에게 제시하신 방편들 즉,

선지자를 따르고, 헌납된 삶을 살고 (헌납된 청결한 삶, , 육신을 존중함, 봉사, 고결함).

성전에 가고

거룩한 곳에 서서 움직이지 않으며(교리와 성약87:8)

영생으로 인도하는/ 길이요 진리인 예수 그리스도를 떠나지 않고

준비가 되어 있어 두려워하지 않게 되면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제자가 되고  궁극적으로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이 계신 곳에서 우리 가족과 함께 승영에 이르게 될 수 있다는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 아버지의 문자 그대로 아들과 딸이라는 사실을 압니다.

우리가 우리 자녀를 위해 눈물 흘리 때 하나님 아버지 또한 그 자녀를 위해 눈물 흘리신다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떠나지 않으시며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던지 그 분의 아들과 딸인 우리 어느 한 사람도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압니다.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아멘

 

 

 

교성 43;9-11…

또 이같이 너희는 나의 교회의 율법에 통달하게 되고, 또 너희가 이미 받은 것으로써 성결하게 될것인 즉, 너희는 내 앞에서 모든 거룩함 가운데 행하도록 스스로를 맬지니(성약에 맨다)- 그리하면 너희가 이를 행하는만큼 너희가 받은 왕국에 영광이 더하여질 것이라. 너희가 이를 행하지 아니하는 만큼 너희가 받은 것마저 거두어지리라. 너희는 너희 가운데 있는 죄악을 제거하라. 내 앞에서 스스로를 성결하게하라.

(한인 지부 성찬식 말씀   2013.12.29 김명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