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제 아버지는 어린 시절을 보내신 목장 부지 한쪽에 작은 오두막을 지으셨습니다. 초원 너머로 펼쳐지는 풍경이 정말 멋있는 곳이었습니다. 오두막집에 벽을 세울 무렵 저는 그곳에 한 번 가 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두막집 창문이 집에서 가까운 곳에 있던 전신주를 향해 나 있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저에게 그 전신주는 멋진 풍경을 가로막는 거대한 방해물이었습니다. 저는 아버지께 “전신주가 창문 바로 앞에서 풍경을 가로막는데 왜 그냥 두셨어요?”라고 여쭤 보았습니다. 평상시에 제 아버지는 유난히 현실적이고 차분한 분이시지만 이때는 조금 감상적인 어조로 이렇게 외치셨습니다. “쿠엔틴, 내겐 저 전신주가 이 목장 전체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란다! 저 전신주를 볼 때마다, 이제는 내가 자랄 때와는 달리, 요리하고, 손을 씻고, 목욕할 물을 샘에서 길어올 필요가 없다는 것을 실감하게 되거든. 밤에 책을 읽으려고 초나 등잔에 불을 붙일 필요도 없지. 그래서 나는 창문의 정중앙에 저 전신주가 보였으면 한단다.” 전신주를 바라보는 아버지의 관점은 저와는 달랐습니다. 아버지에게는 전신주가 풍요로워진 삶을 의미했으나, 저에게는 멋진 풍경을 가로막는 걸림돌일 뿐이었습니다. 아버지는 심미적인 풍광보다 전기, 빛, 청결함의 가치를 더 높이 사셨습니다. 저는 그때 저에겐 단지 걸림돌에 지나지 않는 전신주가 아버지에게는 대단히 실용적이고 상징적인 의미였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걸림돌이란 “어떤 것을 믿거나 이해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 또는 “진보를 가로막는 장애물”입니다.영적으로 걸려 넘어진다는 것은 “죄나 그릇된 일에 빠지는 것”입니다.우리가 의로운 목표를 달성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든 걸림돌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그의 아들에 대한 우리의 간증이 이런 걸림돌 때문에 혼란스러워지고 복잡해지면 안 됩니다. 걸림돌 때문에 간증에 혼란이 생긴 채 지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과 구주에 대한 우리의 간증은 제 아버지가 목장에 있는 그 전신주를 옹호하셨던 것만큼이나 순수하고 단순해야 합니다. (쿠엔틴 엘 쿡 장로 십이사도 정원회 201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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