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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거듭남

by 높은산 언덕위 2016. 5. 25.

모사이야서 27:25. 거듭남

• 에즈라 태프트 벤슨(1899~1994) 회장은 우리가 거듭나고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와 같이 되려고 노력할 때 상기해야 할 중요한 점을 말씀했다.

더욱더 하나님처럼 되고자 하는 과정에서 실망하거나 희망을 잃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처럼 되는 것은 평생 추구해야 할 과제이며 여기에는 거의 깨닫지 못할 만큼 느린 성장과 변화가 포함됩니다. 경전에는 삶이 순식간에 극적으로 변화된 사람들에 대한 놀라운 기사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앨마 이세, 다메섹으로 가던 바울, 밤늦도록 기도하던 이노스, 라모나이 왕 등이 있습니다. 이러한 놀라운 예에서 죄에 깊이 빠진 사람들까지도 변화되는 것을 보면 속죄가 절망에 빠진 사람들에게도 효력을 미칠 수 있음을 확신하게 됩니다.

그러나 우리는 이 놀라운 예에 관해 이야기할 때 주의하지 않으면 안 됩니다. 그 변화는 실제로 일어나며 강력한 힘을 일으키지만 그것은 특별한 경우에만 그랬습니다. 바울이나 이노스, 라모나이 왕과 같은 상황에 처한 수많은 사람들은 회개의 과정이 훨씬 더 미묘하고 깨닫기 어렵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매일 그들은 하나님과 같은 삶을 영위하고 있다는 사실을 미처 깨닫지 못하면서 주님께 가까이 다가갑니다. 그들은 조용히 선을 행하고 봉사하며 헌신하는 삶을 삽니다. 그들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바와 같이 ‘불과 성신으로 침례를 받은 것 같으려니와 그들이 이를 알지 못하였느니라.’(제3니파이 9:20)라고 설명된 레이맨인들과 같습니다.”(에즈라 태프트 벤슨, “마음의 큰 변화”, 성도의 벗, 1990년 3월호, 7쪽)

• 거듭남과 마음의 큰 변화를 경험하는 주제에 관해 더 알고 싶다면 모사이야서 5:2(143쪽 참조), 앨마서 5:12~14(177쪽 참조), 앨마서 36:17~21(233쪽 참조) 해설을 참고한다.

• 댈린 에이치 옥스 장로는 거듭난다는 의미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어떤 사람이 구원받았는가 하는 문제는 때로 그 사람이 ‘거듭났는가’ 하는 점에서 논의가 시작됩니다. 성경과 몰몬경에는 ‘거듭남’에 대한 친숙한 구절이 있습니다. 이미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예수님은 사람이 물과 영으로 ‘거듭나지’(요한복음 3:3) 않고서는 결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가르치셨습니다.(요한복음 3:5 참조) 몰몬경에는 ‘거듭[남]’ 또는 ‘하나님에게서 [남]’의 필요성에 대한 많은 가르침이 있습니다.(모사이야서 27:25; 또한 24~26절; 앨마서 36:24, 26; 모세서 6:59 참조) 이러한 성구를 이해할 때, 우리가 거듭 났는가에 대한 우리의 대답은 확실히 ‘예’입니다. 물과 영으로 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받듦으로써 우리 구주와 성약 관계를 맺었을 때 우리는 거듭났습니다. 우리는 그 거듭남을 매주 안식일에 성찬을 취함으로써 새롭게 할 수 있습니다.

후기 성도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영적으로 난 예수 그리스도의 아들과 딸임을 증언합니다.(모사이야서 5:7; 15:9~13; 27:25 참조) 그러나 우리는 거듭났을 때 받게 되는 예비된 축복들을 실현하기 위해서 여전히 자신이 맺은 성약을 지키고 끝까지 견뎌야만 합니다. 그러면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새로운 영적 부자 관계와 영광스런 상속을 기대하는 새로운 피조물로 거듭납니다.”(댈린 에이치 옥스, 성도의 벗, 1998년 7월호, 60쪽)

 “ 교회 회원들은 단지 침례를 받는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거듭 나지 않습니다. 물론 침례 받지 않고는 어떤 사람도 거듭 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침례와 성신의 은사 그 자체가 사람이 거듭 나도록 보장하는 것은 아닙니다.

"...  거듭 나는 것은 순식간에 일어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의 과정입니다. 실제로 성신의 은사 혹은 성신의 동반을 기뻐하고 온전히 개심하였으며 거리낌 없이 자신을 주님께 바친 사람만이  새로이 거듭 태어납니다. 이렇게 하여 실제로 거듭나면 축복 받고 총애 받는 상태에 있게 됩니다. 그들은 단지 교회에 속함으로써 만이 아니라, 신앙, 의, 사랑 및 세상을 이김에 의해서 자기 위치를 잡습니다.

" ‘ 하나님에게서 난 자는 누구든지 죄 안에 계속 머물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영이 그 안에 머무심이라. 또 그는 죄 안에 계속 머물 수도 없나니 이는 그가 하나님에게서 나서 저 약속의 성령을 받았음이니라. ’ (조성 요일 3:9) ”   - 브르스 R 맥콩키 장로 -

모사이야서 27:25.“ 거듭남” : 우리는 지금 거듭남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태어나고 가족 관계를 이룬다는 것은 순전히 규정상의 문제입니다. 우리는 먼저 하나님 아버지의 영의 자녀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무한히 오랫동안 하나님과 함께 살았습니다. 우리의 삶은 이 지상 생활을 시발점으로 해서 시작된 것이 아닙니다. 이 지상에 있는 인간이란 하나님 아버지의 면전에서 무한히 오랫동안 살던 영원한 영의 형태가 바뀐 것일 뿐입니다. 태어난다는 것은 형태가 바뀌는 것입니다. 즉 새로운 삶의 형태입니다.

“우리는 죽을 수밖에 없는 몸으로 여기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에게 나아가 그의 율법에 따라 살고 우리의 생존의 방법을 바꾼다면, 우리는 다시 태어나게 됩니다. 바울은 죄 지은 옛 사람을 십자가에 못박는다는 말로 이것을 표현했습니다.(로마서 6:6과 에베소서 4:22 참조) 이 지상에 속한 것으로 볼 때는 죽는 것이지만,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살게 됩니다. 우리는 그의 가족이 됩니다.

“앨마 이세가 영광스러운 경험을 하고 거듭났을 때-그가 어려서 침례 받았으나 거듭나지 않았음은 틀림없는 사실이지만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행사하지 못하였습니다-그는 주님으로부터 모든 인간, 모든 나라의 족속과 방언의 민족과 백성들이 이 세상에서 평화의 상속자가 되고 내세에서 영생을 얻기 위해서는 거듭나야 한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 다음 앨마는 그들은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권고를 받았습니다. 그들은 성신의 권능에 의해 새로운 사람이 되어야 했습니다. 그들의 삶은 변화되어야 했습니다.(모사이야서 27:24~31과 앨마서 5장 참조) 그때의 변화란, 사람들이 그 안에서 의로운 것에 따라 살게 되는 것입니다. 그들이 육욕적이고 세상적인 것에 속하여 우리 주 하나님 아버지로부터 멀어지고, 반대로 나아가게 될 때 죽게 됩니다.”(브루스 알 맥콩키, 브리검 영 대학교, 올해의 말씀, 신앙의 세대, 1970년 12월 1일, 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