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교회의 모든 형제와 자매들은 우리 신앙의 선조들이 어떤 대가를 치렀는지 알고 있습니다. 저는 아내의 조모인 메리 고블 페이의 경험담을 읽을 때마다 그 점을 되새기게 됩니다. 13세 된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몇 말씀 나누고 싶습니다. 그녀는 영국 남해안에 있는 아름다운 도시 브라이튼에서 보낸 자신의 유년 시절에 대해 언급하고 있는데, 그 곳에는 서섹스 주의 부드럽고 푸른 언덕이 아래쪽으로 바다까지 이어져 있었습니다. 그 곳에서 그녀의 가족은 침례를 받았습니다. 그들의 마음속에서 영이 그것이 참되다고 속삭였기 때문에 그들의 개종은 자연스럽게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비판적인 친척과 이웃들, 그리고 심지어는 비웃고 그들에게 반대하도록 부추기는 폭도들까지 있었습니다. 일어서서 공개적으로 지지하고, 침례를 받아 몰몬으로서 인정 받기 위해서는 용기, 즉 도덕적 용기로 묘사되는 정말로 굉장한 용기가 필요했습니다. 그 가족은 리버풀로 여행했고, 그 곳에서 약 900명의 다른 사람들과 함께 호라이즌호에 탑승했습니다. 배가 출항하자 그들은“안녕, 나의 조국이여, 안녕”을 불렀습니다. 오늘날에는 제트 비행기로 여섯 시간이면 갈 수 있는 거리를 6주 동안 항해한 끝에 보스턴에 도착하여 손수레 부대와의 여행에 필요한 물품을 구하기 위해 증기 기차를 타고 다시 아이오와시티로 여행했습니다. 그 곳에서 그들은 황소 두 쌍, 암소 한 쌍, 마차, 그리고 천막을 구했습니다. 그들은 한 손수레 부대와 여행하며 돕도록 지명되었습니다. 그 곳 아이오와시티에서 그들의 첫 번째 비극이일어났습니다. 두 살도 채 안 된 막내 동생이 혹독한 날씨로 인해 동사한 뒤 가족이 다시는 찾아올 수도 없는 황량한 곳에 묻혔습니다. 이제 13세 된 소녀의 이야기를 나누면서 그녀가 남긴 기록을 들려 드리겠습니다. “우리는 하루에 15에서 25 마일[25~40킬로미터]을 여행하여 … 플래트 강가에 도착했다. … 그 날 우리는 여러 손수레 부대를 따라잡았다. 그들이 강을 건너는 것을 보았다. 강에는 많은 얼음덩이가 떠내려 가고 있었다. 몹시 추운 날이었다. … 우리는 야영지로 돌아와 기도를 드리고는 …‘성도들아 두려울 것 없다’를 불렀다. [그 날 밤] 어머니가 왜 우셨는지 궁금했다. … 다음날 아침 여동생이 태어났다. 9월 23일이었다. 우리는 에디스라는 이름을 지어 주었다. 에디스는 그 후 6주일만에 세상을 떠났다. … [그 아기는] 스위트워터 강의 마지막 건널목 지점에 묻혔다. “[우리는 폭설 속을 걸었다. 나는 눈속에서 길을 잃었다.] 발과 다리가 얼었다. [사람들이] 눈으로 내 다리를 문질렀다. 그들은 내 발을 물 통에 담갔다. 말할 수 없이 아팠다. … “데블스 게이트에 도착했을 때 날씨는 지독히 추웠다. 우리는 그 곳에서 많은 물건을 버렸다.… [그 날 밤] 오빠 제임스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잠자리에 들었다.다음날 아침 오빠는 죽어 있었다. … “내 발은 꽁꽁 얼었다. 남동생 에드윈과 언니 캐롤린의 발도 얼었다. 어디를 가나 눈 뿐이었다. [어디나 눈이었고 차디찬 와이오밍의 바람이 불었다] 우리는 천막용 말뚝을 박을 수가 없었다. …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될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사람이 우리 캠프에 와서는 … 브리감 영이 우리를 돕기 위해 사람들과 마차를 보냈다고 말해 주었다. … 우리는 노래를 불렀으며 어떤 사람은 춤을 추기도 했고 또 울기도 했다. … “어머니는 조금도 차도가 보이지 않았다. … 어머니는 어느 계곡에서 돌아가셨다. … 연세가 43세였다. … “우리는 1856년 12월 11일 밤 9시에 솔트레이크시티에 도착했다. 살아 남은 4명 중에서 세 명이 동상에 걸렸다. 어머니의 시신은 수레 속에 있었다. … “다음날 이른 아침 … 브리감 영이 … 왔다. … 어머니를 잃고 발은 꽁꽁 얼어 있는 우리의 상황을 보자 그의 뺨에는 눈물이 흘러내렸다. … “의사가 나의 발가락을 절단했다. … 그러는 동안에 자매님들이 어머니를 무덤에 안치시키기 위해 수의를 입혔다. … 발가락 치료를 마치자 그들은 … 어머니를 마지막으로 보여 주기 위해 우리를 옮겨 주었다. 아, 우리가 어떻게 견디어 냈는지! 그 날 오후 어머니의 시신이 매장되었다. … “[나는 영국을 떠나기 전에 어머니가 한 말을 가끔 생각했다.] ‘폴리야, 이 엄마는 너희들이 그리스도의 복음 안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너희들이 어릴 때 시온으로 가고 싶단다. 이 엄마는 이 교회가 참되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지.’” 저는 다음과 같은 질문으로 결론을 맺고 싶습니다. 우리의 조상들이 그들의 신앙 때문에 그토록 큰 대가를 치렀을진대 우리가 우리의 신앙 때문에 비판을 받는 어떤 작은 희생을 치러야 한다면 그것이 과연 놀랄 일이겠습니까? 논쟁이나 언쟁을 피하고, 감정을 상하지 않고 확고한 진로를 추구하면서 하나님의 왕국을 건설하기 위해 앞으로 나아갑시다. 문제가 있다면 조용히 이겨냅시다. 악을 선으로 극복합시다. 이 사업은 하나님의 사업입니다. 그것은 지상에서 계속하여 강화될 것이며, 무수한 사람들의 삶에 선한 영향을 미칠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의 마음은 진리의 메시지에 응답할 것입니다. 하늘 아래 어떠한 세력도 이를 막을수 없습니다. 이것이 저의 신앙이요, 저의 간증입니다. (고든 비 힝클리 2005-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