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문 1986년 7월 복음주의 기독교인들과 한 때 몰몬이었던 일부 사람들이 솔트레이크 시에서 기자 회견을 가진 후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The Church of Jesus Christ of Latter-day Saints)에 교회를 “기독교”로 부르지 말라고 촉구하는 진정서를 제출하였다. 이 진정서에는 미 49주와 31개국의 20,453명의 서명이 들어있었다.(Deseret News, 25 July 1986, p. A10을 보라) 유타 주민들은 대부분 경악을 금치 못했다. 이 사건으로 말미암아 후기성도들은 “우리 교회의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가 아니던가?” “우리가 그리스도를 숭배하고 있지 않는가?” “몰몬경은 예수 그리스도의 또 다른 성약이 아니던가?” 하고 자문하게 되었다. 유타 후기성도들은 “과연 그 누가 후기성도를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의심할 수 있을까?” 하고 의아해 하였다. 몇 주가 지난 후 유타의 주요 일간지의 편집란에 실린 독자들의 편지 내용을 보면 이 진정서가 양측에 얼마나 격한 감정을 불러 일으켰는지 알 수 있다. 비난과 변론, 헌신과 험담이 논쟁 가운데서 적나라하게 드러났으나 양측이 관련된 기본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었다는 증거는 거의 찾아볼 수 없다. 몰몬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비난은 이러한 비난을 거의 들어보지 못하고 설혹 듣는다 할지라도 말도 안되는 비난으로 간주하여 무시해온 유타주 후기성도들을 곤혹스럽게 만들런지 모르나 후기성도가 소수인 지역에서는 이러한 비난이야말로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와 교리에 대한 비난으로 가장 자주 듣는 비난이다. 대부분의 경우 후기성도의 수가 소수인 지역에 사는 후기성도도 이러한 비난을 이해할 수 없는 것으로 여긴다. 따라서 이러한 비난을 이해하지 못하고서는 일관성 있는 답변을 해주기가 어렵다. 본인은 본서가 두 가지 면에서 도움이 되길 바란다. 첫째는 본서가 후기성도는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비난을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데 도움이 되길 바라고, 둘째는 이 비난에 대해 지적이며 논리적인 답변을 후기성도들에게 제공해주는데 도움이 되길 바란다. 그러나 본서는 적몰몬과 말싸움을 하고 싶어하는 분쟁의 정신을 가진 사람들에게 탄약을 제공하기 위해 쓰여진 것이 아니다. 왜냐하면 분쟁의 정신은 언제든지 기독교인답지 못한 정신이기 때문이다.(교성10:63을 보라) 본인은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가 참되며 이 교회의 교리가 옳다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본서에서 이 두 가지 명제를 입증 하려거나 주장하려는 것이 본인이 의도하는 바는 아니다. 본서가 의도하는 바는 후기성도를 기독교 세계로부터 배제하기 위해 이용되는 주장에 결함이 있음을 보이는 것이다. 본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원리는 정확하지는 않으나 공정하다. 즉 본인의 주장은 갑에게 적용되는 것이면 을에게도 적용된다는 속담에 기초를 둔 것이다. 다시 말하자면 어거스틴이나 마틴 루터나 요한 바오르 이세가 기독교 주류와는 다른 믿음을 주장하거나 다른 견해를 보이더라도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간주된다면, 조셉 스미스나 브리검 영도 이들과 똑같은 견해나 비슷한 견해를 보이더라도 기독교인의 자격이 박탈될 수 없다는 뜻이다. 만약 주된 기독교파들이 신학적인 차이나 교파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서로를 비기독교인으로 비난하지 않고 아량을 보일 수 있다면 후기성도가 보여주는 비슷한 차이점도 아량으로 보아 넘겨야 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어떤 수준에서 게임을 하느냐 하는 정도의 문제다. 한 때 신교와 구교가 서로를 배도하고 상대방을 기독교가 아니라고 주장한 적이 있었다. 그러나 종교개혁이 있은 지 500년이 지나면서 신교와 구교는 서로에 익숙해져 일부 정통주의자들을 제외하고는 신교와 구교 사이에 존재하는 차이점에 아량을 보이려 한다. 신교와 구교는 지금도 상대편 교리에 동의하지 않으면서도 이러한 차이점을 “가족 내부의 차이점”으로 보며 넓은 의미에서 서로를 “기독교인”으로 부른다. 문제는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가 생긴지 160년 밖에 되지 않아 기성 교파들이 후기성도에 아직 익숙지 못해 그들 사이에서는 자동적으로 보이는 친절과 아량을 후기성도에게는 보이지 않는데 있다. 본인은 다음 장에서 후기성도는 단순히 표리부동한 신학의 희생자일 뿐이며 다른 기성 교파들 가운데서는 자유롭게 묵인되는 견해와 종교의식이 후기성도에게는 비기독교적이라는 낙인이 찍히게 되었다는 것을 밝히겠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본인은 이러한 비난은 공정치 못할 뿐만 아니라 논리적으로 결함이 있는 것임을 밝히겠다. 갑이라는 사람이 다른 기독교인과는 다른 의견을 고수하더라도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취급받는데, 을이라는 사람이 똑같은 의견을 가졌는데도 비기독교인으로 취급받는다면 논리에 맞지 않는다. 갑에게 적용되는 것이면 을에게도 적용되어야 한다. 정직한 사람이라면 기독교인이거나 몰몬이거나 비몰몬이거나를 막론하고 결과가 기준이 없는 놀음이나 표리부동한 신학에서 비롯된다면 이에 만족할 수 없을 것이다. 후기성도를 “기독교” 가족으로부터 배척하는 사람들은 여러 가지 복잡하고 상층되는 주장을 제시한다. 일반적으로 이 주장들을 다음 여섯가지 기본 범주로 분류해 볼 수 있다. (1) 단어 정의에 의한 배제: (2) 왜곡에 의한 배제: (3) 인신 공격에 의한 배제: (4) 역사나 전통에 의한 배제 : (5) 경전(성서)에 의한 배제: (6) 교리에 의한 배제. 이 광범위한 범주 하나 하나 마다 기독교의 본질과 역사 교리에 근거한 배제를 생각하기 전에 먼저 정의를 내리고 조사해야 할 미묘한 가정들이 있다. 이 가정들을 상세히 조사를 한 본인은 기독교의 본질과 역사 및 교리에 근거한 이러한 가설과 주장들이 비논리적이며 불공정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독자들은 본인이 고대의 글로부터 보기와 실례를 들 때면 이 실례들이 정통 기독교의 자료로 간주되는 것으로부터 나온 것이지 영지주의자나 마르시오니트파, 라니채니언파와 같은 비정통파의 글로부터 나온 것이 아님을 알아주기 바란다. 또한 본인이 권위 있는 현대 학자의 글을 인용할 때는 이들의 저서들이 널리 인정받는 존경받는 비몰몬 학자들, 즉 전문분야에서 인정받는 권위자들의 글만 인용하였다. 독자들은 본인이 고대나 현대의 별난 “권위자”의 글은 다루지 않았음을 알게 될 것이다. 다음 장에서 본인은 정통(ORTHODOX)이라는 용어를 주된 기성 기독교를 가리키는데 사용할 것이다. 이는 단순히 편의상 그렇게 하는 것이지 본인이 “정통” 기독교를 신학적으로 옳은 기독교로 인정한다는 뜻은 아니다. 마지막으로 독자들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 후기성도 교회의 교리와 브리검 영 대학교를 공식적으로 대변해 말하는 것이 아님을 알아주기 바란다. 본성에서 제시된 견해가 합당한 근거를 둔 것들이기는 하지만 혹 잘못된 견해가 있다면 그건 전적으로 본인의 책임이다.
1 단어 정의에 의한 배제 기독교인이란 누구인가? 이 용어는 신약 성서에 세 번 언급되어 있다(행11:26: 26:38 벧전4:16). 그러나 이 어느 성구에서도 용어가 정의되어 있지 않다.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기독교인이라는 용어를 여러 가지로 정의할 수 있으나 가장 일반적인 정의는 다음과 같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가르친 진리를 믿거나 공포하는 사람, 또는 그렇게 추정되는 사람: 기독교 추종자: 기독교 원리와 도덕적인 원리를 받아들인 사람: 그리스도에게 보여 진 것으로 간주되는 충성을 하나님에게 보이는 자: 자신의 생활이 그리스도의 교리와 일치하는 자.” 두 번째로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정의는 “그리스도 교리나 믿음을 공포하는 교회나 그룹에 속한 사람”이다. 가장 흔히 사용되는 이 두 가지 정의에 따르면 후기성도는 기독교인이다. 게다가 이 정의는 대부분의 후기성도 자신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용어를 다른 교파에 적용할 때 사용하는 정의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후기성도들이 자신들의 교회가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교회라고 확고히 믿으면서도 구교와 신교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서로 달리 해석한다 할지라도 예수를 그리스도로 믿으며 그의 가르침을 따르려 하기 때문에 여러 교파의 개신교인과 구교인을 여전히 기독교인으로 받아들인다. 기독교파 사이에는 교리의 차이점이 있는 게-어떤 경우에는 심각할 만큼- 사실이긴 하지만, 교인들은 일반적으로 자신이 속한 교파가 그리스도를 가장 잘 이해하는 가운데 그리스도를 따른다고 믿는다. 사전이 정의하듯 이것이 바로 대부분의 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용어를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이요 세상의 구세주로 믿는 사람들 가운데 존재하는 교리와 교파간의 차이점을 묵인하는 일반적인 명사로 사용하는 방법이다. 만약 기독교인이라는 용어가 이런 의미로 이해된다면 몰몬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비난은 참으로 심각한 비난이 아닐 수 없다. (비록 후기성도가 바른 표현이기는 하나 명확하게 밝힐 필요가 있을 때나 문맥상 필요할 때는 몰몬이라는 용어를 사용하겠다.) 비표준적인 정의 그러나 대부분의 경우 이런 비난을 하는 사람들은 이러한 정의를 마음에 두고 기독교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 않는다. 용어를 정의 하는 자가 용어를 좌지우지 한다. 예를 들어 후기성도들이(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정의에 근거해) 기독교인을 선지자 조셉스미스의 신성한 부름과 영감서인 몰몬경을 믿는 사람으로 정의하여 후기성도가 기독교인이라는 결론을 내린다면 이 정의는 기술적으로는 맞을 것이다. 그러나 나머지 세상 사람들이 이같이 편협하고 왜곡된 정의에 동의할 것 같지 않으며 후기성도들은 언어를 교묘하게 이용하여 부정한 방법으로 게임을 한다고 비난할 것이다. 예수를 믿거나 믿지 않는 것에 대해서는 전혀 고려해 보지 않고 기독교인을 몰몬이 믿는 것을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정의 하여 비몰몬들이 기독교인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는 것은 비몰몬이 몰몬이 아니라고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어떤 사람들은 이러한 말장난으로 후기성도를 기독교인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들은 기독교인을 일반적인 의미로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교리와 다른 사람들을 제외시키는 편협한 종파적인 의미로 정의한다. 다른 교파사람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용어를 배타적인 방법으로 정의해 자신들을 배제할 때 아량을 보이지 못하는 사람들도 위치가 바뀌어자기들이 다른 교파 사람들에게 속임수를 쓸 수 있다고 믿으면 왕왕 이와같은 전략을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표면상으로는 이들이 후기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로를 믿지 않는다거나 그의 가르침을 따르려고 하지 않는다라고 심각하게 비난하는 것처럼 보이나 실제로는 후기성도가 그들과는 다른 방법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이해하고 경배한다고 말하는 것에 불과하다. 어느 모로 보나 이런 식의 게임은 임시변통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기독교인을 보수적인 정통파 신교를 믿는 사람으로 정의한다면 오직 정통파 개신교인만이 기독교인이 될 것이다. 기독교인을 교황 요한 바오르 이세의 지도력과 권위를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정의한다면 오직 천주교인(로마 카톨릭)만이 기독교인이 될 것이다. 기독교인을 마키리오스 대주교나 쉐노다 교황의 권위를 받아들이는 사람으로 정의 한다면 희랍 정교나 콥트 교도만이 기독교인이 될 것이다. 이런 부류의 말장난은 마치 오리를 넓고 납작한 부리와 짧은 다리와 물갈퀴와 갈색 깃털을 가진 물새로 정의하고 물오리 암컷이나 숫컷은 깃털이 갈색이 아니므로 오리가 아니라고 우기는 거나 다를 바 없다. 인간을 “남성”이나 “백인” 또는 “앵글로 색슨족”으로만 정의하는 사람들이 있듯 바로 이런 식으로 후기성도나 깃털이 자신들의 깃털과 다른 교파 사람들을 배제하기 위해 기독교를 교파적으로 정의하는 사람들이 있다. 이런 자들이 자신들의 깃털에 맞는 교파뿐만 아니라 모든 부류를 받아들일 수 있도록 그들의 정의를 바꾸게 할 수는 없으나 이들이 배제를 목적으로 비표준적인 정의나 공공연하게 특정한 분류법만을 사용하고 있다는 논리적 허위를 지적해 줄 수는 있다. 웨인 에이 믹스(WAHNE A. MEEKS)에 따르면 신흥 종교를 미신으로, 그 종교에 속한 사람들을 무신론자로 왕왕 비난했던 이교도들이 고대 기독교인을 배척하기 위해 이와 같은 용어 정의 전략을 이용했다니 아이러니칼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Gods)을 예배하므로 이러한 비난은 공정치 못한 것이라고 항의했지만 박해자들은 기독교인이 신들(gods)을 섬기지 않으므로 즉 이교도 신들인 다신을 섬기지 않으므로 무신론자라고 몰아부쳤다. 무신론자를 이런 식으로 특정하게 정의를 내려 기독교인을 비난하고자 했던 의도는 기독교인은 이교도와는 다른 방식으로 신을 예배한다는 것이었으나 이와 같은 비난이 대중에게는 기독교인은 신을 믿지 않는 비종교인이라는 인상을 심어 주었다(물론 그렇게 의도된 것이기는 하지만). 이 일로 말미암아 기독교인에 대한 증오와 박해가 한결 더 손쉬어졌으며 기독교인이 공정하게 발언할 기회를 갖기가 매우 어렵게 되었다. 그리스도를 예배하는 후기성도의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아 후기성도를 비기독교인으로 매도하고 싶어하는 기독교인들이 이와 똑같은 계략을 후기성도에게 사용하고 있는 것이다. 후기성도를 포함한 다른 교파를 배제함 기독교인이라는 용어가 예수가 그리스도이며 하나님의 아들이자 세상의 구세주임을 믿고 구약과 신약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담고 있다고 믿는 사람을 뜻하는 것이라면 분명 몰몬은 기독교인이다. 후기성도가 이 모든 명제를 입증하는 것은 단순히 역사적인 문제다. 비록 후기성도가 교리상의 해석에서 다르다 할지라도(즉 다른 기독교인과는 깃털의 색이 다르다 할지라도)후기성도들은 근본적으로 분류학적인 유사성을 공유한다. 반면 기독교인이라는 용어가 교파적으로 정의되어 “우리가 믿는 것을 믿는 사람”을 뜻한다면 이 문제의 교파는(교파적이며 비표준적인 용어를 사용하여) 몰몬은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으나 이 모든 진술이 진정으로 뜻하는 바는 몰몬은 침례교인가 오순절 교인이나 다른 교파의 교인이 아니라는 뜻이며 이는 우리가 이미 알고 있는 바다. 이런 경우의 비난은 배척하는 사람이 일반적인 정의를 사용한다면 그렇게 심각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기의 편의에 맞추어 정의를 내린다면 몰몬에 대한 비난은 하찮고 쓸모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 비난은 후기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안믿고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자신이 믿는 교파에 상관없이 일반 “기독교인” 독자가 명심해야 할 것은 단어의 정의로 배제하는 사람들은 보통 후기성도만을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기독교인이라는 용어가 신교 정통파만을 뜻하기 위해 비표준적인 방법으로 정의된다면 후기성도는 분명 제외되지만 로마 카톨릭(천주교)과 희랍 정교 및 대다수의 신교-깃털 색이 다른 모든 오리-도 배제된다. 심지어 가장 보수적인 신교파가 적용하는 똑같은 배제가 팻 로벗슨, 로버트 슐러와 오랄 로버츠 등과 같이 편협한 종파적인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복음 전도자들을 “이단”으로 매도하기 위해 최근에 이용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배제하는 사람들에게는 기독교를 이루는 가족이란 대단히 적다. 그들이 정의하는 기독교인이란 “참된 교회에 속한 교인[우리 교회]”이거나 “우리가 믿는 것을 믿는자”인 것이다. 자신의 교회만이 참된 교회라고 확고하게 믿는 후기성도도 기독교인을 이와같이 편협한 방법으로 정의하지는 않을 것이다. 한번은 본인이 동부에서 여러 교파의 성직자들에게 강의를 한적이 있었다. 성직자 중 한 사람이 몰몬은 기독교인 아니며 이러한 이유 때문에 본인이 말한 모든 것이 가치없는 것이라고 계속 주장 하였다. 청중 가운데 천주교 사제가 있다는걸 알고는 그 성직자에게 천주교인은 기독교인이냐고 물었다. 그는 천주교인은 “구원 받았다”는 경험 하나만을 통한 구원이 아니라 천주교의 성사를 통한 구원을 믿기 때문에 기독교인으로 간주될 수도 있겠으나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대답했다. 청중 가운데 그리스 정교회 사제가 있다는 걸 알고 있던 저자는 그에게 동방 교회는 기독교인지 물었다. 성직자는 “그들이 기독교인이 믿는 것을 믿는다면” 기독교인이 될 수 있다고 대답했다. 나는 그에게 정통 신교의 이론을 받아들이지 않는 진보 신교는 기독교인지 아닌지 물었다. “절대 아니오. 그들은 그리스도의 대의를 배신한자들이오”라고 대답했다. 그 모임에 참석했던 많은 성직자들이 처음에는 몰몬이 기독교인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성직자의 말에 동의했을는지 모르나 똑같은 근거와 이유에서 나온 이 똑같은 비난이 자신들에게도 퍼부어지자 분노하게 되었다. 사실 이 성직자가 뜻했던 바는 다름이 아니라 몰몬과 천주교, 희랍 정교, 진보파 신교는 한결같이 정통 신교파가 아니라는 것이었다. 그의 주장 뒤에 숨어있는 명제는 사람들이 자신이 믿고 있는대로 믿지 않는다면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분명히 그것에 근거를 둔 숨겨진 명제와 논리가 다른 기독교파에 사용될 수 없다면 후기성도에게도 사용될 수 없다. 정통 신교와 다른 종파는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자신들이 원하는 대로 기독교인이라는 용어를 정의할 수는 있다. 나머지 기독교 세계가 그러한 정의가 그들이 기독교인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방법이라고 이해하고 그들로부터 나오는 “몰몬은 기독교인이 아니다”는 주장이 단순히 몰몬은 그들과 견해가 다르다는 것을 이해하는 한 그들은 자신들을 전 세계에서 유일한 진짜 기독교인으로 정의하고 나머지 기독교파를 배척할 수는 있을 것이다. 동의에 의한 기독교 비기독교적이라는 용어를 기독교 가족 가운데서 찾아볼 수 없고, 가르치지 않고, 믿지 않는 것에 적용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 있겠으나 이러한 주장은 어려움에 부딪치게 된다. 먼저 이런 주장은 문제점을 증명하지 않고 이론을 펴 나가는 꼴이다. 누가 “기독교인”인가 알아내기 위해 조사해 볼 수도 있는 기독교 가족의 일원으로 후기성도를 취급할 수 있을까? 이 질문에 예/아니오라고 대답할 수 있기 위해서는 이 조사의 결과를 미리 추측해 보아야 한다. 따라서 문제점을 증명하지 않고 이론을 펴 나가는 것은 시험해 보아야할 명제의 결과를 예측하는 것과 같다. 이 경우에 있어서 명제는 “후기성도는 기독교인인가?”이다. 둘째, 신약은 바울이 일부 기독교인과 함께 나눌 수 없는 것을(고린도 전서 3:1-2를 보라), 또는 어느 기독교인과도 절대로 나눌 수 없는 것을(고린도 후서 12:2-4) 확실히 알고 믿었음을 보여준다. 바울이 성서에서 가르치지 않고 다른 기독교인들이 몰랐던 것을 알고 믿었다는 이유 때문에 바울이 “비기독교인”인가“ 물론 그렇지 않다. 이런식으로 기독교인을 특별하게 정의하는건 통하지 않는다. 신약성서 자체는 누가 제자이며 누가 제자가 아닌지에 대해 매우 편협한 견해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사도행전 18:24-28에는 ”주의 도를 배웠으나“ 불완전하게 배운 아볼로에 대한 기사가 나와있다. 아볼로는 비록 말을 잘하기는 했지만 아길라와 프리실라가 하나님의 도를 더 완벽하게 자세히 설명하기 전까지는 그가 가르친 교리에는 결함이 있었다. 그러나 그의 교리가 바로 교정되기 전에 비기독교인으로 간주되었다는 암시가 없다. 이와 유사하게 바울은 에베소 근처의 ”어떤 제자들“이 불완전하게 복음을 배웠음을 알고는 그들에게 다시 침례 주겠다고 작정한다(행19:1-7). 그들이 비록 배운 바가 불완전하고 심지어는 그들이 교리적인 면에서 더 발전해야 했지만 그들은 아볼로처럼 제자로 불리웠다. 고린도의 기독교인들은 성숙지 못해서 바울은 그들에게 복음의 깊은 교리를 전혀 가르 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바울은 그들을 성도로 불렀다(골전3:2: 1:2). 바울의 서신은 모세 율법이 그리스도의 복음안에서 성취되었으므로 더 이상 구원의 필수조건으로 구속력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밝히고 있다. 따라서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것을 기독교 교리로 간주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도행전 21:20에서 야고보는 바울에게 ”형제여 그대도 보는바에 유대인 중에 믿는 자 수만명이 있으니 다 율법이 그리스도 안에서 어떻게 성취되었는지에 관한 기본적인 교리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교회에서 쫓겨나지 않았다. 오히러 야고보는 바울에게 유대 기독교인들의 민감함을 가라앉혀줄 섭외활동 방법을 제안해 주었다(행21:23-24). 비록 그들의 교리에 결함이 있기는 했으나 예루살렘 교회 안에서 그들을 믿는자”로 간주해 아량을 보였으며 심지어는 그들과 교제하기까지 했다. 자비의 옹호자인 바울 자신이 자신의 교리와 상층되는 유대 기독교인들을 위해 큰 노력을 했다면, 교리가 서로 다른 모든 현대 기독교파들은 교리상의 차이를 갖는 교인들에게 비기독교인이란 낙인을 찍는데 신중해야 되지 않을까? 요 약 요약해 보자면 후기성도가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비난은 후기성도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느냐 안 믿느냐 하는 문제나, 후기성도가 신약성서를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느냐 거부하느냐 하는 문제와는 하등의 상관이 없다. 기독교인이라는 용어가 표준 영어에서 사용되듯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의 아들과 세상의 구세주로 받아들이는 사람을 뜻하기 위해 사용된다면 몰몬이 기독교인이 아니라는 비난은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기독교인이란 용어가 특정한 교파의 견해에 따라 그리스도나 신약성서에 대한 믿음을 나타내기 위해 교파적인 의미에서 사용된다면 이 비난은 하잘 것 없으며 무익한 것이다. 왜냐하면 이런 식의 정의는 후기성도가 이런 비난을 하는 교파와 견해가 다르다고 말하는 것에 지나지 않기 때문이다. 전형적으로 후자의 의미로 기독교인을 정의 하는 자들은 몰몬 뿐만 아니라 개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신앙이 있든 없든 그들과 의견이 맞지 않는 사람이면 어느 누구라도 배척한다. 따라서 이런 편협한 공론가가 아니라면 단어 정의에 의한 배제와 관련된 논리상의 허위를 감지해 낼 수 있어야 한다. 저자 : 스테반 이 로빈슨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