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종교/선택의지

수영 금지 구역에서 파도타기를 함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2. 27.

나는 최근 남아프리카 에르마누스로의 여행에서
선택의지의 중요성을 배웠다. 바닷가에 근접한 이
조그만 마을은 케이프타운에서 차로 약 90분 되는 곳에 있으며
해안을 따라 위치한 많은 아름다운 해변 마을 중
하나이다. 내가 친구와 함께 서핑하기 위해 해변가로 향하고
있었을 때 파도가 밀려오고 있었다.
서핑보드를 내려놓자마자, 나는 따뜻한 백사장에 서서 햇빛
때문에 눈을 가늘게 뜨고 믿을 수 없는 마음으로 해변을
바라보았다. 구조요원이 이미 수영 구역 깃발들을 달아 놓았는데,
깃발 간의 간격이 불과 50미터도 채 안 되었다. 해변은 몇 백
미터는 되었고 탈 만한 파도는 모두 수영 구역 밖에 있었다.
어떻게 그 두 개의 빨간색과 노란색 줄무늬 깃발 사이에서
수영하라는 말인가? 구조요원이 해변가 전체를 지켜보고 싶지
않기 때문에 게으름을 피우고 있는 것일까?
친구와 나는 수영을 잘했기 때문에, 깃발이 꽂혀 있는 구역
오른쪽으로 나가기로 했다. 흰 물 속을 걸을 때 바닷물이 내
다리를 스쳐 지나면서 강하게 잡아당기는 것을 느꼈지만
그때까지는 조류에 맞서 설 수 있었기 때문에 계속해서 걸어갔다.
충분히 깊은 곳에 왔을 때, 나는 서핑보드를 타고 연달아 오는
파도가 있는 곳까지 물을 저어 갔다. 파도는 계속
밀려오고 있었으며, 우리는 파도를 타고 서로가 파도 타는
것을 지켜보면서 한동안 서핑을 즐겼다.
해변을 보려고 뒤를 돌아보았을 때 나는 갑자기 내가 출발해 온
곳에서 먼 곳으로, 빠른 속도로 밀려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깃발들이 아주 멀리 있었던 것이다!
나는 바다 바닥에 커다란 모래톱이 있다는 것은 알 수도 볼 수도 없었으며,
조수가 밀려올 때 바닷물은 깃발이 꽂혀
있는 구역 양 옆에 급류를 만들면서
모래톱을 휩쓸었다. 구조요원은 그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물을
지켜보면서 하루 종일 그곳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수영하기에
안전한 곳이 어딘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서핑보드의 방향을 돌려 수영 구역을 향해 다시 손으로
물을 젓기 시작했다. 나는 있는 힘을 다해 저었지만, 강한 조류를
거슬러 갈 수 있는 방법은 없었다. 나는 바다로 더 멀리 밀려
나가고 있었다! 당황한 나는 서핑보드에서 내려서 걸으려고 했다.
발이 겨우 바다 바닥에 닿았으며, 발가락이 아래의 모래 속으로
빠져 들어가는 것을 느꼈다. 내게로 밀려오는 수천 톤의 바닷물을
지탱할 수 없었기 때문에 나는 다시 서핑보드에 올라타야 했다.
나는 그 위에 누워 무기력한 상태로 표류했다. 도움을 구하기 위해
친구에게 손을 흔들었지만,그도 조류에 휘말려 있었다.
구조요원의 경고를 무시했는데도 나를 구조해 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수영 금지 구역 밖에서 수영하기로 결정을
내렸고 이제 그에 대한 결과, 즉 통제력의 상실을 받아들여야
했다. 나는 나보다 훨씬 더 강한 힘에 끌려가고 있었다. 나의
유일한 희망은 해변 끝에 있는 날카로운 바위 한가운데로
끌려가기 전에 파도를 타고 해변으로 다시 가는 것이었다. 마침내
파도가 밀려왔고, 나는 그 파도를 타고 해변가로 돌아가는 데
성공했고 친구도 해냈다.
우리는 부끄러워하며 수영 구역으로 다시 걸어가 깃발 사이에서
서핑을 하며 남은 시간을 보냈다. 한 명이 수영 구역 가장자리로
너무 가까이 갈 때마다, 우리는 돌아오라고 서로 경고하곤 했다.

우리의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위험 지역이 어디이며
우리가 그러한 곳에 가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계시기
때문에, 우리에게 수영하기에 안전한 장소를 볼 수 있도록
해변에 깃발을 꽂을 선지자와 교회 지도자들, 그리고 부모를
주셨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깃발 사이에 거하라고
명하신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우리가 수영하고 싶은 곳을
선택할 능력을 주셨다. 우리는 정해진 지역이 너무 좁거나
재미없다고 느낄 수 있지만, 그러한 깃발이 있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때때로 우리는 유혹의 강한 매력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수영 금지 구역으로 뛰어들기로 결정한다. 또
때로 우리는 자신을 충분히 주의 깊게 지켜보지 않기 때문에 위험
지역으로 표류하게 된다. 어느 쪽이든 우리는 우리 자신보다 더 큰
힘에 의해 끌려가게 되고, 우리의 선택의지는 제한된다. 즉,
우리는 덫에 걸려서 더 이상 무슨 일을 할지 선택할 수 없게 되며,
우리의 영적인 삶은 위험에 처하게 된다.
부모와 교회 지도자들은 우리가 죄의 강력한 조류에 휘말릴
경우 우리를 구하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다 하겠지만,
때로는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는 경우도 있다. 안전
지역에서 수영하는 사람들은 통제력의 상실이나 죽음의 두려움을
느끼지 않고 온종일 수영을 즐길 수 있다.
베냐민 왕은 그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경고했다. “만일 너희가
너희 자신과 너희의 생각과 너희의 말과 너희의 행실을 살피고
하나님의 계명을 준행하고, … 신앙 안에 계속하여 거하되, 실로
너희 생애의 끝까지 그리하지 아니하면, 너희가 반드시 멸망하리라.

그런즉 이제 오 사람아, 기억하고 멸망하지 말지어다.”(모사이야서 4:30)

 

(그레그 벌고인 200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