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에게는 … 뉴질랜드에 어머니와 같은 분이 계셨습니다. 청년이었던 저는 선교사로 나가 처음 그 자매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당시 자매님은 저를 아들이라 부르셨고 세월이 흘러 감리 역원이 되어 돌아갔을 때는 아버지라 부르셨습니다. … 그 날도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키는 작지만 훌륭한 인품을 지니신 자매님이 사시는 동네를 지나는 길에 방문했습니다. 그 자매님은 80이 넘은 연세에 앞을 못보시는 맹인이셨습니다. 자매님이 사시는 곳에는 지부가 조직되어 있지 않았기 때문에 선교사들만 방문을 할 뿐 다른 신권 소유자들과의 접촉은 거의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선교사들이 많지 않았으며, 대부분은 멀리 전쟁터에 나가 있었습니다. … 자매님은 뒤뜰 조그만 화롯가 옆에 계셨습니다. 저는 팔을 뻗어 손을 잡아 악수를 하고 코를 비비려고 [마오리 식의 인사] 했습니다. 하지만 이제 할머니가 되신 자매님은“저와 악수하지 마세요, 장로님.”이라고 말했습니다. 저는“자매님 손에 묻은 흙은 깨끗합니다. 저는 정말 자매님과 악수하고 싶습니다. 꼭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자매님은“아직은 안 돼요.”라고 말하고는 손과 무릎으로 그 조그마한 집을 향해 기어가셨습니다. 그러더니 집 한쪽 모퉁이에서 삽을 꺼내 들고 다시 반대 방향으로 거리를 재며 기어가셨습니다. 잠시 후 어떤 지점에 멈춘 자매님은 땅을 파시기 시작했습니다. 무엇인가 단단한 것이 삽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습니다. 그러자 두 손으로 흙을 긁어 내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 과일 항아리를 끄집어 내시고는 그 항아리에서 무엇인가를 꺼내어 저에게 내미시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상당한 액수의] 뉴질랜드 화폐였습니다. … “제 십일조입니다. 이제 저는 하나님의 신권 소유자와 악수할 수 있습니다.”라고 그 자매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저는“자매님께서는 이렇게 많은 십일조를 내시지 않아도 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자매님은“저도 알고 있어요. 지금은 이만큼의 십일조를 내지 않아도 되지요. 그러나 얼마간의 십일조를 미리 바치는 것입니다. 또 언제쯤 하나님의 신권 소유자가 다시 이 곳에 들를지 모르거든요.”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저는 저의 코와 이마를 자매님의 코와 이마에 대었습니다. 저의 두 눈에서 흐르는 눈물이 그녀의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성도의 벗, 1974년 12월호) (매튜 카울리 20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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