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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예수 ·속죄

그가 살아나셨느니라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2. 24.

는 어디를 가든 그 지역에 있는 공동 묘지를 방문하려고 합니다. 공동 묘지를 방문하는 시간 동안 인생의 의미와 피할 수 없는 죽음에 대해 깊이 명상하곤 합니다. 저는

유타 주 산타 클라라 마을에 있는 작은 묘지에서 비바람에 닳아버린 묘비에 새겨진 스위스 사람들의 이름을 발견하고서 받은 특별한 느낌을 기억합니다. 고인들 대부분은 “시온으로 오라”는 부름에 응하여 푸른 숲이 우거진 스위스에 집과 가족을 남겨 두고 지금 그들이 “편안히 휴식”하고 있는 이 마을로 이주해 와서 살았습니다. 봄에는 홍수,여름에는 가뭄과 흉작과 고된 노동을 견뎌냈습니다. 그들은 희생의 유산을

남겼습니다.그 나라에서 가장 큰 공동 묘지나 여러 가지 면에서 연민을 자아내게 하는

묘소들을 보면 조국의 군복을 입고 전쟁이라는 격전장에서 전사한 사람들이 안장되어 있습니다.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산산이 부서진 꿈과 이루지 못한 소망과 비탄에 젖은 마음, 전쟁이라는 날카로운 낫에 베여 끊어진 삶에 관해 생각합니다.

프랑스와 벨기에의 여러 도시에 세워진 희고 아담한 수많은 십자가는 제1차 세계대전이 낳은 엄청난 희생자를 말해 줍니다. 프랑스 베르덩 지방은 그 지역 자체가 엄청나게 큰 공동 묘지입니다. 봄이 되어 농부들이 땅을 갈 때면 녹슨 철모와 총을 발견합니다. 그것은 말 그대로 수많은 사람들이 피로 땅을 적셨다는 것을 알려 줍니다.

 

죽음, 삶의 새로운 장

수년 전에 저는 사경을 헤매는 한 젊은이 곁에 서 있었습니다. 두 자녀의 아버지인 그는 제 손을 잡고 제 눈을 바라보면서 애원하듯 말했습니다. “감독님,제가 곧 죽는다는 것을 압니다. 제가 죽으면 제 영이 어떻게 되는지 말씀해 주십시오.”

저는 기도를 드리며 하늘의 인도를 구했습니다. 저는 침대 옆 탁자에 놓인 몰몬경에 눈길이 갔습니다 저는 소리 내어 읽기 시작했습니다.

“이제 죽음과 부활 사이의 영혼의 상태에 관하여 …… 모든 사람의 영은 이 죽어야 하는 육신을 떠남과 동시에, ……그들에게 생명을 주신 그 하나님께로 데려감을 입느니라.…… 의로운 자들의 영은 낙원이라 일컫는 행복의 상태, 곧 안식의 상태, 평화의 상태로 영접되어, 그 곳에서 그들의 모든 곤경과 모든 염려와 슬픔에서 놓여 쉬게 되리라.”(앨마서 40:11~12) 그 젊은 친구는 눈을 감고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면서 조용히, 우리가 말하고 있던 낙원으로 들어갔습니다.

 

죽음에 대한 승리

의사인 누가는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동산 무덤에 다가갔을 때 겪은 일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돌이 …… 굴려 옮겨진 것을 보고 들어가니 주 예수의 시체가 보이지 아니하더라

이로 인하여 근심할 때에 문득 찬란한 옷을 입은 두 사람이 곁에 섰는지라…… 두 사람이 이르되 어찌하여 살아 있는 자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여기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누가복음 24:2~6)

이것은 기독교계의 분명한 외침입니다.부활은 개인과 모든 인류에게 상상할 수 없는 화평을 가져다줍니다. 이것은 플랑드르 들판에 누워 있거나 바다 속에 수장되었거나 산타 클라라에서 쉬고 있는 고인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될 것입니다. 이것은 보편적인 진리입니다.저는 그분의 가장 작은 제자로서 그분이 죽음을 극복하시고 무덤을 깨뜨리셨다는 것을 간증합니다. 이 일을 이루신 분이 하신 성스러운 말씀이 우리

모두에게 산 지식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그 말씀을 기억하고 소중히 아끼고

존중하십시오. 그분은 살아나셨습니다.

 

(토마스 에스 몬슨 201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