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2:10~20. 왜 아브라함은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했는가? 위대하고 의로운 사람인 아브라함이 자기의 생명을 건지겠다 고 고의로 거짓말을 한 것 같다는 개념은 구약전서를 공부하는 반원들에게 난해하게 느껴진다. 사라의 미모 때문에 그의 생명이 위험했다는 것은 분명하다. 좀 특별하게 보이지만 애굽의 바로는 다른 사람의 아내와 간음하는 것을 매우 싫어했으므로, 배우자가 재혼할 수 있게 남자를 죽이는 일에 가책을 느끼지 않았다. “그 당시 왕가에게서는 아내를 얻기 위해 남편을 죽이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었던 것 같다. 어떤 파피루스에는 바로가 왕자의 부탁을 받고 무장한 사람을 보내어 아름다운 여인을 데려오고 그 녀의 남편을 없앴다고 되어 있다. 또 어떤 제사장은 바로가 죽은 후에도 블레셋의 족장들을 죽이고 그들의 아내를 후처로 만들어 주겠다는 약속을 비석에 새겨 넣었다.(카쉬어, 성경 해석 백과 사 전, 2:128) 또 다른 고대 풍습에는 여인이 더 큰 법적, 사회적 지위를 얻 을 수 있는 결혼을 하면 남편의 누이로 삼는 것을 허용했다.(유 대 백과 사전, “사라”, 14:866) 또한 하란이 죽자 데라는 하란 의 자녀를 자기 자녀로 입양하여 사라가 아브라함의 누이가 되 게 했다. 아브라함은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러나 사라를 누이라고 한 것이 외형적으로 옳지만 사실은 애굽인들을 속였던 것이다. 어떻 게 이러한 행위가 정당화될 수 있을까? 답은 매우 간단하다. 하 나님이 그렇게 하라고 하셨으므로 그의 행위는 정당했다.(아브라 함서 2:22~25 참조) 선지자 조셉 스미스는 다음과 같이 가르 쳤다. “어떤 상황에서는 잘못된 것이 다른 상황에서는 바른 일이 될 경우가 흔히 있다. 하나님께서는‘살인하지 말지니라’고 말씀하셨으나, 또 어떤 곳에서는‘너희는 온전히 멸망시키라’고 말씀하셨다. 이러한 원 리에 의해 하나님의 정부가 다스려졌다. 곧 왕국의 자녀들이 처 해 있는 상황에 따라 적절하게 계시를 적용하는 것이다. 비록 우 리가 사건 발생 후 오랜 시간이 지날 때까지, 그와 같은 사건이 일어난 원인을 알 수 없을지라도 하나님께서 요구하시는 것은 무 엇이든지 옳은 것이다.”(선지자 조셉 스미스의 가르침. 249~250쪽) 하나님은 완전하시며 옳지 않은 일은 행하지 않으시므로(신명 기 32:4; 사무엘상 15:29; 앨마서 7:20; 교성 3:2 참조) 아 브라함의 행위는 그릇된 것이 아니었다. 어떤 학자들은 아브라함이 합법적으로 사라를 자기 누이라고 할 수 있었다고 말한다. 우선 히브리말의 형제자매라는 말은 다 른 혈연 관계를 나타낼 때도 사용된다.(창세기 14:14 참조, 여 기에서 아브라함의 조카 롯을“동생”이라고 불렀다.) 사라의 부 친인 하란과 아브라함은 형제였기 때문에 사라는 아브라함의 조 카딸이었으며, 따라서 누이(sister)라고 부를 수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