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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말씀·경전

이스라엘이 정복했을 때 약속의 땅의 백성은 정치적, 종교적으로 어떤 상태였는가?

by 높은산 언덕위 2015. 12. 1.

“이스라엘이 정복할 당시의(기원전 1250~1200년) 팔레스타인
의 정치적, 종교적 상태를 이야기하려면 근동이 그 이전의 1세기
동안 혼란스럽게 들끓었다는 것에 유의해야 합니다. 미타니, 메소
포타미아에 있던 애굽의 동맹국의 힘이 붕괴되었습니다. 애굽도 처
음에는 지중해 동쪽 지역을 잃었다가 다시 회복했습니다. 북쪽으
로부터 후리안과 아리안 사람들이 거의 팔레스타인까지 내려왔고,
앗수르가 세계적인 힘으로 부상하기 시작했고 소아시아의 힛 제국
과 애굽은 대등하게 근동을 지배할 위치에 올라 있었습니다.”
“팔레스타인은 주로 애굽이 다스렸습니다. 가나안 땅은 수많
은 도시 국가로 이루어져서 각기 독립해 있었으며 명을 받으면
애굽에게 조공을 바쳐야 했습니다. 가나안은 이스라엘의 먼 친척
인 히브리 지파들이 대부분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가나안 백성은
이스라엘이 정착하기 전에 베니게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전해져
영어의 조상이 된 알파벳을 만들었다는 점에 유의해야 합니다.”
“가나안의 물질적인 문화와 국제적인 상거래는 매우 발달해 있었
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종교적인 관습은 이스라엘과 정반대였습니
다. 바알 신이 인도하는 신령제에 기초를 둔 가나안의 종교는 … 매
춘 동성애 및 난잡한 의식이 포함된 부도덕한 우상 숭배였습니다
.”
“가나안 주민은 혼혈아였습니다. 구약전서에서는 바닷가 근처
의 가나안 백성들과 히브리 씨족 이외에 아모리인에 대하여서도
언급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 세멕 사람들의 후손이었습니
다. 성경상의 이 땅의 주민으로 나와 있는 수많은 다른 종족은
(힛, 히위, 호릿, 여부스 족속) 그들의 지파 이름이 먼 기원을 보
존하고 있지만 세멕 족속이 아니면서 가나안 땅에 살고 있었다
는 것을 나타냅니다. 이들은 이스라엘이 침입할 무렵에는 완전히
가나안의 종교와 생활 방식을 취하고 있었습니다.”(에스 켄 브라
운, “질문 있습니다”, Ensign, 1973년 10월호, 58쪽)